[비즈니스포스트] HD한국조선해양을 비롯한 국내 조선사들의 아성으로 여겨졌던 LNG(액화천연가스)선에서도 중국 조선사들의 추격이 본격화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정기선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은 현재 LNG선 시장 우위에 만족하지 않고 친환경선박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며 경쟁자들과 격차를 더 벌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HD한국조선해양 LNG선 중국 추격에 기술로 방어, 정기선 친환경선박 잰걸음

정기선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사진)이 주력 선박 LNG선에서 머물지 않고 친환경선박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며 다가오는 교체 수요를 잡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4일 조선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HD한국조선해양은 그동안 확보한 친환경선박 기술을 실제 적용하기 위해 국제적 인증을 비롯한 상용화 준비에 힘을 쏟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 자회사 HD현대중공업은 최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진행된 조선해양박람회 ‘노르시핑(Nor-shipping)2023'에서 프랑스 선급 BV(Bureau Veritas)로부터 초대형원유운반선과 LNG선에 적용할 수 있는 선박 풍력보조 추친체계(wind-assisted ship propulsion system)에 관한 기본설계 인증(AIP)을 획득했다. 

이번에 기본인증을 받은 풍력보조 추진체계 기술은 HD현대중공업이 HD현대글로벌서비스, 토털에너지, 미쓰이상선과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했다. BV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를 통해 풍력보조선박 추친체계 기술의 잠재력이 입증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이 공동개발한 풍력보조 추친 기술은 2가지 날개 돛(wing sail), 1가지 회전자 돛(rotor sail) 등 3가지 추진 체계로 가동된다. 

선박에 쓰이는 풍력보조 추진 기술은 탄소절감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선사들이 주목하는 핵심 기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에 따라 모든 해운사는 2050년까지 2008년 대비 탄소 배출을 70% 줄여야 한다. 신규 건조 선박에만 적용되던 탄소 배출규제는 현존 선박 전체로 확대되며 규제 대상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풍력을 통해 선박 보조 추진력을 얻게 되면 그만큼 연료를 절감할 수 있다. 화석연료를 쓰는 선박에 풍력보조 추진장치를 장착하면 탄소배출도 줄어들게 된다. 

HD한국조선해양은 이미 풍력보조 추진장치를 적용한 무탄소 선박도 수주한 경험이 있다. 

HD한국조선해양 자회사 현대미포조선은 지난달 유럽 선사에서 컨테이너선 5척을 수주했는데 해당 선박은 메탄올엔진과 풍력보조 추진장치를 함께 장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메탄올 연료와 풍력보조 추진장치를 함께 사용하는 무탄소 선박 건조는 현대미포조선이 세계 최초인 것으로 파악된다. 

HD한국조선해양은 노르시핑을 통해 풍력보조 추진체계뿐 아니라 액화이산화탄소(LCO2)·암모니아·액화석유가스(LPG) 등을 함께 운반할 수 있는 2만2천 ㎥급 다목적 가스운반선, 3세대 메탄올 저인화점 연료공급 시스템(LFSS) 등에 관한 기본설계인증도 획득했다. 

정기선 사장은 글로벌 선사, 에너지 기업들과 기술협력 외연을 넓히는 일에도 고삐를 죄고 있다.

정 사장은 최근 노르시핑 기간에 임기택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과 글로벌 선주들을 만나 조선·해운업계 친환경 전환을 비롯한 주요 현안들에 관해서도 다방면으로 논의한 것으로 파악된다. 

정 사장은 언론배포 자료를 통해 "HD현대가 만드는 선박과 HD현대의 기술이 대양의 친환경 대전환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HD한국조선해양 LNG선 중국 추격에 기술로 방어, 정기선 친환경선박 잰걸음

▲  현지시각 6월6일부터 9일까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르시핑 2023에 마련된 HD한국조선해양 부스의 모습. < HD현대 >

정 사장이 친환경 기술에 전념하는 이유는 다가올 조선업 슈퍼사이클(초호황)이 친환경선박 교체 수요가 급증하며 도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환경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선사들은 친환경선박을 도입해 탄소배출을 줄여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선사들도 이전까지는 선박을 교체하기보다 탄소저감 장치를 장착하는 식으로 환경 규제에 대응해 왔지만 시간이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환경 규제에 대응하려면 결국엔 친환경선박으로 교체를 추진해야 한다. 

HD한국조선해양을 비롯한 한국 조선사들로서는 친환경선박 기술력이 최대 경쟁 상대인 중국 조선소들의 추격을 따돌리는데도 주요한 수단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조선사들이 가격 경쟁력과 자국의 해운 역량을 기반으로 글로벌 선박 시장의 점유율 확대를 꾀하는 만큼 국내 조선사들은 기술력 초격차를 무기로 대응해 나갈 수밖에 없다.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이 집계한 1~5월 누적 세계선박 발주량을 보면 중국은 713만CGT(299척)를 수주하며 52% 점유율을 보였다. 한국은 35%인 474만CGT(104척)로 중국 뒤를 이었다.

조선업계에서는 물량으로 중국 조선사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고 보는 시선이 우세하다. 

한국 조선사들은 LNG선 등 고가 선박에서 중국 조선사를 압도하며 높은 수익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근래에는 중국 조선사들도 고가 선박 시장에서 수주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중국 조선사들은 지난해 1~11월 LNG선 45척을 수주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조선사와 비교하면 적은 양이지만 그동안 한국의 독무대로 여겨졌던 LNG선 시장에서 의미 있는 수주 성과를 거둔 것으로 여겨진다.

더구나 국내 조선사들의 LNG선 수주잔고 증가와 함께 도크(선박 건조 공간)가 가득 채워져 물량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면 선사들로서는 중국 조선사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중국 조선사들이 수주한 LNG선이 정상적으로 인도되고 무리 없이 운항하게 된다면 이들도 수주 이력과 신뢰를 쌓게 되고 이는 수주 경쟁력으로 다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HD한국조선해양으로서도 지금의 LNG선의 우위에 안주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LNG 역시 화석연료인 만큼 보다 까다로워지는 환경 규제에 대응하려면 보다 친환경성이 높은 선박기술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도 크다.    

이에 HD한국조선해양은 친환경 선박 연료인 메탄올과 암모니아로 가동되는 추진선 기술의 개선과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HD한국조선해양은 메탄올 추진선 시장에서 상당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주된 100여 척의 메탄올 추진선 가운데 HD한국조선해양은 절반 넘는 선박을 수주한 것으로 파악된다. 

HD한국조선해양은 암모니아 추진선으로 친환경 선박 외연 확장도 꾀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암모니아 추진선의 상용화 시점을 2025년으로 잡고 있다. 

조선·해운업계에서는 7월 열리는 국제해사기구의 MEPC(해양환경보호위원회) 80차 회의도 주목하고 있다. 이 회의에서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강화, 온실가스 배출에 관한 조치 도입 여부 등이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변용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가 강화되면 친환경 방식인 이중연료(D/F)엔진 적용을 이제껏 주저했던 탱커 선사들의 발주가 시작될 수 있다”며 “탱커 선사들은 높아진 자본지출(CAPEX)비용을 무릅쓰고서라도 이중연료엔진 도입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