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ARM 상장절차 본격화, 반도체 ‘최악의 상황’에도 늦추기 어려워

▲ 마사요시 손(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반도체 설계기업 ARM 상장을 위해 뉴욕증권거래소와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비즈니스포스트] 일본 소프트뱅크가 반도체 설계 자회사 ARM의 미국 나스닥 상장 절차를 본격화한다.

세계 반도체 업황이 10여 년 만에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어 기업가치를 유리하게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에도 소프트뱅크의 자금난 해소가 시급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1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손정의(마사요시 손) 소프트뱅크 회장은 이번 주 안에 ARM의 미국 나스닥 상장 계약을 체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ARM은 올해 안에 상장을 목표로 두고 이와 관련한 작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뉴욕증권거래소와 계약을 통해 기업공개를 위한 공식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소프트뱅크가 ARM 상장 시기를 가능한 늦추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게 나오고 있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위기와 인플레이션, 기술주를 중심으로 한 세계 증시 불안으로 ARM이 투자자들에게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받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 업황은 약 10여 년 만에 최악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침체된 흐름을 보이고 있어 ARM의 상장에 더욱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1분기 잠정 영업이익이 2009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진 점,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1위 기업인 TSMC 3월 매출이 약 4년 만에 감소세로 전환한 점이 대표적 근거로 꼽힌다.

반도체와 전자제품 업황이 하반기까지 부진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주요 시스템반도체 설계기업을 고객사로 둔 ARM의 실적 전망도 어두워지고 있다.

ARM은 반도체기업이 활용하는 아키텍쳐(설계 기반)를 제공하고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제품 판매량에 맞춰 라이선스 비용을 거두는 사업 구조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반도체 업황 변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ARM의 적정 기업가치를 두고 투자 전문가들의 의견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현재 시장에서 거론되고 있는 ARM의 가치는 300억 달러(약 40조 원)에서 700억 달러(약 93조 원) 사이로 매우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

그만큼 기업공개를 통한 자금 조달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손정의 회장이 이러한 상황에도 ARM의 상장 절차를 강행하는 것은 소프트뱅크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시도를 더 미루기 어렵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손정의 ARM 상장절차 본격화, 반도체 ‘최악의 상황’에도 늦추기 어려워

▲ ARM의 반도체 설계기술 안내 이미지.

소프트뱅크는 이른 시일에 회계연도 2022년 실적을 발표한다. 2년 연속으로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손 회장은 IT기업 및 플랫폼업체에 투자한 자금이 증시 악화로 소프트뱅크에 막대한 손해를 안기자 중국 알리바바 지분 등 자산을 매각하며 재무구조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지난 회계연도 3분기에도 7834억 엔(약 7조8천억 원)의 순손실을 내는 등 위기가 지속되면서 ARM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을 늦추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소프트뱅크의 운명이 ARM의 상장에 달려 있다”고 언급할 정도로 성공적인 기업 공개가 손 회장에 매우 절실한 과제로 남아 있다고 바라봤다.

ARM이 충분한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나스닥시장에 안정적으로 상장하고 자금 여력을 확보하는 일은 전 세계 반도체기업에도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현재 ARM의 반도체 아키텍쳐는 삼성전자와 애플, 퀄컴과 미디어텍 등 다수의 시스템반도체 기업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들의 반도체 성능을 ARM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ARM이 유리한 조건으로 상장하는 데 실패한다면 연구개발 등에 투자할 여력이 줄어들고 자연히 전 세계 시스템반도체 기술 발전 속도가 늦어지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퀄컴 등 일부 기업이 ARM의 아키텍쳐에 대안을 찾아 자체적으로 설계 기반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 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만큼 기술력을 낙관하기 어렵다.

SK하이닉스와 퀄컴 등 반도체기업은 ARM의 상장 실패가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지난해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ARM을 공동으로 인수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인텔과 삼성전자도 ARM 인수에 참여할 유력 후보로 거명됐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결국 구체화되지 않았고 소프트뱅크와 전 세계 반도체기업은 모두 ARM의 성공적 기업공개 여부에 촉각을 기울여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ARM은 최근 퀄컴 등 반도체기업에서 거두는 라이선스 비용을 인상하는 계획을 논의하는 등 상장을 앞두고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여러 방안도 검토해 오고 있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손정의 회장은 소프트뱅크 경영에서 당분간 물러나 있을 정도로 ARM의 상장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 왔다”며 “소프트뱅크에 매우 중대한 과제”라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