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란 갈등이 사이버전으로 확산되면서 안랩의 사우디 합작사 ‘라킨’의 사업 기회가 한층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사진은 강석균 안랩 대표(왼쪽)와 사드 알라부디 사이트 최고경영자(오른쪽)가 2024년 4월 합작법인 설립 계약 체결식에서 악수하고 있는 모습. <안랩>
군사 충돌이 물리적 전장을 넘어 디지털 공간으로 확산되면서 중동 각국 정부와 기업의 사이버 보안 수요가 빠르게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우디아라비아에 합작사를 둔 안랩의 중동 사업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수혜를 볼 가능성이 거론된다.
8일 보안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사이버 공간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을 보이면서 중동 지역에서 사이버 보안 역량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한층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현재 중동에서는 국가 기반시설과 금융, 에너지 시스템 등이 주요 공격 표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란은 오래전부터 사이버전을 비대칭 전력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해 온 국가로 평가된다.
이란 정보기관과 연계된 해킹 조직들은 중동과 서방 국가의 정부기관과 기업을 상대로 정보 탈취와 인프라 공격을 수행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안회사 라드웨어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2025년 이란을 상대로 군사 공격을 감행한 뒤 이스라엘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은 70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란이 사이버 공간에서 보복에 나설 것이라는 증거는 상당하다”며 “아직 특정 국가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위성항법시스템(GPS)과 자동식별시스템(AIS) 교란으로 걸프 지역에서 1100척이 넘는 선박의 항해 시스템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됐다”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도 영국 국가사이버보안센터(NCSC)를 인용해 중동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이란 연계 해커 조직의 공격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에너지와 교통, 데이터 인프라 등 핵심 산업을 중심으로 사이버 공격 위협이 확대되고 있어 기업들의 보안 대응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사이버 부문 부국장을 지냈으며 랜섬웨어 대응 기업 할시온의 수석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신시아 카이저도 이란 연계 해커들의 공격 활동 확대 가능성을 경고했다.
카이저는 6일 링크드인에 올린 글에서 “현재 10개가 넘는 활성 공격 그룹을 추적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한동안 의심스러울 정도로 활동이 잠잠했던 이란 정보기관 연계 의혹이 제기되는 한달라핵(Handala)도 포함된다”며 “공격 범위가 IT 영역을 넘어 산업제어시스템으로까지 확대되고 있고 공격 대상의 지리적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중동 정세 변화는 보안기업 안랩이 사업 기회를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부기관과 에너지·금융·통신 등 국가 기반시설을 중심으로 사이버 방어 체계 강화가 필수 과제로 떠오르면서 안랩의 중동 사업도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안랩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산하 회사인 사이버 보안·클라우드 전문회사 사이트(SITE)와 함께 2024년 10월 합작법인 ‘라킨(Rakeen)’을 설립해 중동과 북아프리카 보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라킨은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 본사를 두고 공공기관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통합 보안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다.
현지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네트워크 보안과 엔드포인트 보안 등 다양한 보안 제품을 제공하며 중동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 사우디 합작사 ‘라킨’을 기반으로 한 안랩의 중동 사업 확대와 이에 따른 해외 매출 성장은 국내 기반의 사업 체질을 변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안랩>
이 같은 성과는 안랩의 해외 매출 확대에도 기여하며 지난해 실적 개선 흐름에 힘을 보탠 것으로 파악된다.
안랩은 2025년 매출 2676억 원, 영업이익 332억 원, 순이익 514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2.7%, 영업이익은 20.2%, 순이익은 59.0% 증가했다.
안랩은 지난해 하반기 라킨을 통해 출시된 차세대 방화벽 ‘라킨 NGFW’와 차세대 네트워크 침입방지 솔루션 ‘라킨 IPS’ 등 네트워크 보안 제품군의 판매 성과가 매출 증가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라킨을 기반으로 한 해외 매출 확대는 안랩의 체질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 정보보호 시장은 군소 업체 난립과 해외 기업의 진출로 경쟁이 심화되면서 안랩으로서는 매출 확대와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해외 진출이 시급해지고 있다.
2025년 3분기 기준 안랩 전체 매출에서 해외가 차지하는 비중은 6.3%로, 2024년 3분기 3.5%와 비교해 2.8%포인트 늘어났지만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안랩 관계자는 “미국과 이란 갈등이 중동 사업 확대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단정하기 어렵다”면서도 “장기적 관점에서 현지 파트너와 고객과의 신뢰를 기반으로 중동 시장에서 사업을 꾸준히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