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리포트 2월] 이마트와 롯데마트에 봄이 오려면, 월마트 가는 길에 해답 있다

▲ 월마트를 상징하는 대표적 슬로건은  “People-led, Tech-powered.(사람이 이끌고 기술이 민다)”다. 2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월마트의 새 최고경영자(CEO) 존 퍼너(사진) 역시 이를 가장 중요한 철학으로 삼는다. <월마트>

[비즈니스포스트] “People-led, Tech-powered.”

월마트가 늘 강조하는 문구다. 우리말로 풀어내면 “사람이 이끌고 기술이 밀어준다”라는 문장이 적당할 듯하다.

이 슬로건이 매력적인 이유는 ‘기술은 그저 동력일 뿐, 핸들을 잡고 방향을 정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인간의 주체성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월마트를 위기에서 구한 남자’로 불리던 더그 맥밀런 최고경영자(CEO)의 뒤를 이어 12년 만에 새 수장에 오른 존 퍼너 또한 이 슬로건을 가장 중요한 철학으로 생각한다.

그는 월마트가 도입하는 최신 기술들을 놓고 직원들을 소외시키는 도구가 돼서는 결코 안 된다고 믿는다. 기술이 직원들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 만든다면 그 어떤 기술도 효용이 없다는 것은 이미 월마트 임직원 사이에 굳게 형성된 공감대다.

실제로 월마트가 조직 곳곳에 도입하고 있는 인공지능(AI) 비전의 종착역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운영의 정교화’에 닿아 있다.

월마트는 수년 전부터 생성형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수억 개의 상품 데이터를 관리하고 고객의 구매 패턴을 예측해 재고 회전율을 극대화하고 있다.

단순히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시도로 보면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무엇보다도 직원들을 단순 반복 업무에서 벗어나게 해 고객 응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돕겠다는 것이 월마트 경영진의 일관된 시각이다.

주목할 지점은 이러한 기술력이 월마트에 새로운 수익 모델을 안겨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월마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모여드는 막대한 고객 트래픽을 데이터로 만들어 광고주에게 판매하는 ‘월마트 커넥트’를 통해 해마다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물건에 일부 이윤을 붙여 남기는 이른바 ‘박리다매식 구조’에서 벗어나 데이터라는 무형의 자산을 수익으로 연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월마트가 스스로를 유통기업이 아닌 ‘리테일테크(유통기술)’ 기업이라고 정의하는 데 스스럼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월마트는 올해 초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나스닥으로 이전 상장하는데 성공했다. 이른바 '빅테크기업'이 즐비한 나스닥에 월마트가 입성한 것은 이 회사가 단순한 양판점이 아니라 아마존과 같은 기술 기반 상거래기업으로 거듭났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최근 월마트는 1972년 상장 이후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어서며 11번째 ‘1조 클럽’을 달성한 회사에 오르기도 했다. 시장에서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 모습에 그저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눈을 돌려 한국 대형마트 업계를 보면 표정이 어두워진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마트 가운데 2위였던 홈플러스는 맛이 가기 직전이다.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점쳐지지만 워낙 상권이 중복된 곳이 많고 심지어 적자만 보는 지점도 많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혜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많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지점은 주요 기업들 스스로 '우리는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기업'이라는 점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월마트는 스스로를 기술 기업으로 정의하면서 미래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스스로 미래를 만들기보다 그저 대형마트를 옥죄었던 ‘유통산업발전법’과 같은 낡은 규제가 풀리기만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월마트가 스스로 훈풍을 만들었다면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한국 대형마트들은 훈풍이 불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이들의 입에서는 혁신이라는 말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이들이 내는 자료 대부분은 ‘값싸고 신선한 제품’을 소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술에 기반해 고객 경험을 혁신적으로 바꾼다는 것은 남의 나라에서나 들을 수 있는 얘기다.
 
[데스크리포트 2월] 이마트와 롯데마트에 봄이 오려면, 월마트 가는 길에 해답 있다

▲ 국내 대형마트들은 기술 혁신에는 좀처럼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은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감귤. <연합뉴스>


사고를 180도 바꿔야 할 때다.

오프라인 매장은 더 이상 물건을 파는 곳에 그쳐서는 안 된다. 고객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브랜드 경험을 송출하는 ‘가장 강력한 물리적 데이터 공간’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월마트가 매장에 쏠리는 고객 발걸음을 데이터로 바꿔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을 주요 사업으로 배치한 것은 우리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커머스의 부상에 밀려 마트를 찾는 발걸음이 예전보다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가족들은 주말마다 삼삼오오 마트를 찾는다. 기회를 찾고자 한다면 분명히 찾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은 물건을 싸게 팔 것인지를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업의 본질을 다시 정의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

물론 이러한 체질 개선은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부터 시작돼야 한다.

시대의 화두가 된 AI를 단순히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대체재로만 봐서는 안 된다. 비용 절감을 위한 기술은 조직의 활력을 갉아먹는 독만 될 뿐이다.

기술을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할 '확장 도구'로 인식하고 사람이 그 핸들을 쥐고 방향을 잡을 때 비로소 오프라인 대형마트가 사양 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낼 수 있다.

'사람이 이끌고 기술이 민다'는 월마트의 철학은 역설적으로 가장 디지털화된 국가에 살고 있는 한국의 대형마트들이 되찾아야 할 유통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궤도 수정의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남희헌 유통&4차산업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