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대규모 국내 투자와 함께 부품 협력사들과 상생 경영에도 적극 나서며 재계 이목을 끌고 있다.

정 회장은 현대차와 기아의 수익성 개선이 시급한 상황임에도 1차 협력사들의 올해 관세 비용까지 부담하기로 하면서다.
 
"부품사 미국 관세도 떠안겠다", 정의선 현대차 최대 투자만큼 빛나는 상생경영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차 부품 협력사들의 올해 미국 자동차 관세 비용을 전액 지원하기로 하면서 상생경영 철학 실천에 나섰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현대차·기아와 40년 이상 거래해 온 업체 비중이 36%를 차지할 정도로 그룹 성장에 협력사들이 큰 역할을 해온 만큼 관세 위기도 함께 돌파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여겨진다.

17일 자동차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현대차그룹이 1차 협력사들의 올해 미국 자동차 관세 비용을 지원하기로 발표한 데는 정 회장의 상생 경영 철학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 회장은 2030년까지 5년 동안 국내에 역대 최대 규모인 125조2천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표 내용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현대차와 기아의 1차 부품 협력사가 올해 부담하는 미국 자동차 관세를 소급 적용해 전액 지원하기로 한 점이다.

현대차·기아가 올해 2분기와 3분기에 미국 자동차 관세로 지급한 비용만 4조6482억 원이다. 관세 영향으로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현대차는 14.4%, 기아는 27.3% 감소했다.

관세가 1일부터 25%에서 15%로 낮아졌다고는 해도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당장 수익성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정 회장은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협력사들과의 상생을 선택했다.

현대차·기아와 직접 거래하는 1차 협력사가 현대차그룹 미국 생산법인(HMGMA)에 부품 등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실제 부담하는 관세를 매입 가격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지원한다.

이 비용은 125조2천억 원에서는 빠져있다. 앞으로 1차 협력사 수출 실적 집계 후 지원 규모가 확정된다.
 
"부품사 미국 관세도 떠안겠다", 정의선 현대차 최대 투자만큼 빛나는 상생경영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1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김용범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정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연합뉴스>


현대차와 기아는 1차 부품 협력사와 함께 성장해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와 협력사의 평균 거래 기간은 35년이다. 국내 중소 제조업체 평균 업력인 13년6개월과 비교해 3배 가까이 길다. 40년 이상 거래해 온 업체 비중도 36%를 차지한다.

현대차그룹이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글로벌 자동차 판매 순위 3위를 차지하면서 부품 협력사들의 매출도 크게 늘었다.

2023년 1차 협력사들 가운데 중소·중견기업에 해당되는 237개 업체 매출은 90조2970억 원을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의 중소·중견기업 협력사 매출이 90조 원을 돌파한 것은 2023년이 처음이다.

협력사 매출은 2000년대 들어 크게 늘었다. 현대차·기아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려 있다.

2001년 1차 협력사 매출은 21조1837억 원을 기록했다. 2001과 비교하면 2023년 매출이 326.3% 증가한 것이다. 매출 1천억 원 이상 협력사 비중도 2001년 21%(62개)에서 2023년 68%(160개)로 늘었다.

유가증권시장(KOSPI) 및 코스닥시장(KOSDAQ)에 상장된 협력사 수는 2001년 46개에서 2023년 70개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시가총액은 1조5천억 원에서 17조4천억 원으로 11.6배가 커졌다.

정 회장은 1차 협력사뿐 아니라 직접 거래가 없는 2·3차 중소 협력사 5천여 개까지 챙기기로 했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국내 자동차 산업 생태계 안정화를 위한 신규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원 규모를 확대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재계 3위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현대차와 기아 영업이익이 미국 자동차 관세로 크게 감소한 상황에서 협력사들의 관세 비용까지 부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며 “기업이 잘 될 때뿐만 아니라 어려울 때도 협력사와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앞으로 관계를 이어나가는 데 있어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