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명가' LG생활건강 흔들린다, 투자보다 '내실경영'에 갇혀버린 성장판

▲ LG생활건강이 2분기에도 실적이 대폭 악화되며 이정애 LG생활건강 대표이사 사장의 연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LG생활건강이 2분기 화장품 사업부에서 21년 만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한때 ‘K-뷰티 대표주자’로 불렸던 화장품 명가의 위기가 현실로 다가왔다는 평가이다.

일각에서는 단순한 시장 침체를 넘어, 그룹 차원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부진의 본질적 원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과감한 외형 확장 대신 내실 중심의 보수적 투자 기조가 오히려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이다.

1일 증권가에 따르면 LG생활건강의 실적 부진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날 보고서를 낸 8개 증권사 가운데 5곳이 LG생활건강의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했다.

LG생활건강은 올해 2분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1조6049억 원, 영업이익 548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9.0%, 영업이익은 65.0% 줄었다.

직격탄을 맞은 부문은 핵심 사업인 화장품이다. 화장품 사업부는 같은 기간 매출 6046억 원, 영업손실 163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19.4% 줄었으며 영업손익은 21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 6월부터는 시가총액에서도 체면을 구겼다. LG생활건강은 에이피알에 밀리며 화장품 업계 시가총액 3위로 내려앉았다. 1일 오후 2시30분 기준 LG생활건강의 시가총액은 4조5761억 원, 에이피알은 6조5854억 원이다. 시가총액 순위가 뒤바뀐 지 한 달여 만에 격차가 2조 원가량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LG생활건강의 부진 이면에 그룹 차원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팬데믹 이후 ‘내실 강화’ 기조에 따라 투자가 눈에 띄게 줄었고, 그 여파가 실적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정애 사장 취임 이후 LG생활건강은 공격적 인수합병(M&A)이나 대규모 투자보다는 효율화와 수익성 중심의 보수적 경영으로 방향을 틀었다.

2023년 9월 색조 브랜드 ‘힌스’를 보유한 비바웨이브를 425억 원에 인수한 것이 그나마 눈에 띄는 유일한 거래다. 차석용 전 대표 재임 시절 18년간 28건이 넘는 M&A로 외형 확장을 이어갔던 과거와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업계에서는 LG생활건강의 움직임을 단순히 이정애 사장의 개인적 경영 스타일로만 보긴 어렵다고 평가한다. 그룹 전략 변화에 따라 보다 보수적 투자 기조로 방향을 바꿨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2018년 구광모 회장이 LG그룹을 이끌게 된 이후, 전사적으로 ‘선택과 집중’과 ‘실용주의’가 경영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구 회장은 배터리와 전장 부품 등 미래 성장동력에 집중하는 동시에, 스마트폰·연료전지·조명용 OLED·전자결제·편광판 등 수익성이 낮은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며 체질 개선에 나섰다.
 
'화장품 명가' LG생활건강 흔들린다, 투자보다 '내실경영'에 갇혀버린 성장판

▲ LG생활건강이 이마트와 초저가 화장품을 출시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포트폴리오가 제한적이라고 평가된다. <이마트>


LG생활건강 역시 이 같은 방향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평가된다. 2022년 차석용 전 대표가 물러나기 전까지만 해도 더에이본컴퍼니, 더크램샵 등 북미 뷰티기업을 잇따라 인수하며 적극적인 M&A 전략을 펼쳤다.

하지만 기대만큼 성과가 따라주지 않자, 투자 전략도 점차 보수적으로 바뀌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자금 집행에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실제 투자활동현금흐름 추이를 보면 이런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LG생활건강의 투자활동현금흐름은 2020년 –7459억 원에서 2021년 –4651억 원, 2022년 –1974억 원, 2023년 –1408억 원, 2024년 –1522억 원으로 전반적으로 가파른 감소세를 그리고 있다.

브랜드 전략에서도 보수적 태도가 포착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중국 시장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더후’에 다시 힘을 싣고 있다. 최근에는 이마트와 손잡고 초저가 라인을 내놓았지만, 눈에 띄는 신제품이나 브랜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이 같은 행보는 아모레퍼시픽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아모레퍼시픽은 2021년 약 1조 원을 들여 ‘코스알엑스’를 인수하며 북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냈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영업이익이 세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반등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하반기에는 M&A를 포함한 공격적 투자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정애 사장이 올해 M&A 추진 의지를 공식적으로 밝힌 만큼, 실제 행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 사장은 신년사에서 “MZ세대와 알파세대 고객을 겨냥한 브랜드 M&A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내부 성장에만 의존하지 않고 외부에서 동력을 찾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여기에 임기가 내년 3월까지라는 점도 변수다. 아직 확실한 경영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상황에서, 하반기가 사실상 마지막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정체된 실적과 무거운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과감한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현재 운영 중인 사업의 성장과 M&A를 통한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등 근본적인 기업 가치를 개선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면서 “미래 성장을 위해 과거와 동일하게 M&A에 적극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