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국 경제는 현재 엄청난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다름 아닌 신재생에너지 부족 문제다. 

한국은 2023년 기준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10%도 되지 않는다. 세계 평균 30%에도 크게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꼴찌다. 
 
[데스크리포트 7월]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엄청난 시한폭탄

▲ 현대건설이 진행한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 <현대건설>


우리나라에 전기는 충분한데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은 게 뭐가 문제냐고 생각할 수 있다. 오산이다. 

앞으로 신재생에너지를 제대로 확보해 나가느냐 여부는 우리나라의 먹고 살길을 좌우할 핵심 변수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 주요국과 기업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RE100' 달성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RE100은 늦어도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만 100% 사용하자'는 국제캠페인이다. 

캠페인이라고 해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 아니다. 여기에 동참하지 않았다가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될 수 있다. 수출 위주인 우리나라가 먹고 사는 길이 막힐 수 있다는 얘기다. 

일례로 애플은 2050년이 아닌 2030년까지 RE100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면서 애플의 공급망에 있는 기업들도 하루빨리 RE100을 달성하라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에 호응해 아이폰에 들어가는 핵심 칩(AP)을 위탁생산하는 대만의 TSMC는 RE100 달성 목표 시점을 최근 2040년으로 10년 앞당겼다. 

TSMC는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의 60%가량을 차지하는 독보적 기업이다. 그럼에도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 흘러가는 글로벌 경제의 기류 변화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기류는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을 중심으로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삼성이나 LG 같은 기업이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부족으로 RE100 달성에 차질을 빚는다면 메모리나 디스플레이를 팔지 못하는 상황과 마주할 수 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이상 시간이 남았는데 신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게 뭐가 어렵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살펴보면 신재생에너지 부족 문제가 한국 경제에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의 RE100 달성에 필요한 신재생에너지를 확보하기까지 갈 길이 너무나 멀다. 당장 정부의 정책 방향부터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는 글로벌 기조와 거꾸로 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조사에 따르면 2023년 세계 신규 발전 설비 투자금 가운데 약 80%가량이 신재생에너지 설비에 투자됐다. 신재생에너지 투자는 갈수록 확대되는 추세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를 기존 30.2%에서 21.6%로 낮췄다. 대신 대형 원전을 늘리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원전은 RE100에 포함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를 낮춘 데에는 직전 문재인 정부의 태양광발전 확충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비리 의혹도 주요한 명분으로 작용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태양광 확충 예산을 제대로 관리 못했던 부분을 조사해 시정하겠다는 것이야 말릴 수는 없다. 

하지만 태양광발전 정책에 문제점을 시정해 제대로 예산이 집행되도록 하는 대신 관련 업계를 때려잡는 데 머무르는 건 너무나 시대착오적이다.
 
[데스크리포트 7월]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엄청난 시한폭탄

▲ 경남 합천댐에 있는 수상 태양광 발전시설의 모습. <연합뉴스>


이보다 더 심각한 건 전력망 부족 문제다. 전기를 옮길 전력망이 모자라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속도가 붙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해상풍력으로 예를 들어보자. 윤석열 정부는 2030년까지 14.3기가와트 규모의 해상풍력 발전 시설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비정부기구 기후솔루션의 조사를 보면 해상풍력 발전사업 허가를 취득한 설비 규모는 2022년 기준으로 20기가와트가 넘는다. 이를 착실히 실행에 옮겨도 정부의 목표치는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생산된 전력을 운반할 수 있도록 송전 계약이 완료된 해상풍력 발전사업허가 비중은 전체의 25% 선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부분 해상풍력 발전사업은 지역민 반대 같은 우여곡절을 다 넘는다고 해도 송전망이 없어 전력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신재생에너지를 늘리겠다는 목표만 세웠을 뿐 이를 뒷받침할 송전망 확충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이런 점을 의식해 윤석열 정부는 국가 전력망을 2036년까지 1.5배 가량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를 실현하는 데는 50조 원이 넘는 돈이 든다. 

하지만 전력망 구축을 담당하는 한국전력의 부채는 현재 200조 원이 넘어간다. 더구나 동해안에 밀집된 석탄 발전과 원전에서 나오는 전기를 수도권으로 옮길 전력망 신설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망 확충과 관련한 장기 계획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보에는 뜻을 두었으나 실행에 꼼꼼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보다는 원전 확대에 좀 더 무게를 두며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모습이다. 

직전과 현 정부 모두 신재생에너지 확대 문제에 무능하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개인의 무능이야 죄는 아니다. 하지만 정부의 무능은 명백한 죄다.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어서다. 

글로벌 시장에선 자유무역의 큰 흐름이 지나가고 경제가 정치의 하위 개념이 되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정부의 역할이 이전보다 훨씬 더 중요해졌다. 

특히 에너지 문제에서 정부의 능력이 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삼성그룹, LG그룹, 현대자동차그룹처럼 세계적 기업들이라도 에너지 문제에서 정부의 뒷받침 없이는 제대로 뛰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 기업들은 큰 핸디캡을 안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의 각성과 대대적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 박창욱 정책경제·글로벌&기후에너지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