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의대 증원만이 의료혁신 정책의 핵심은 아닙니다. 정부가 의료계에 양보할 것은 양보하면서 대신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과 같은 당장의 현안 해결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의료계 한 종사자의 말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4월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의료 개혁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
이 말처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더해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공급망 불안이 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요 의약품 품절사태가 나타나고 있어 일선 의료계에서 의약품 부족을 향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22일 의료계의 말을 종합하면 의과대학 정원 확대 문제에 묻혀 정부가 의약품 수급 안정화 대책에는 별다른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대한아동병원협회가 최근 조사한 결과 소아청소년 천식치료제, 항생제 등을 비롯한 140여개 필수의약품이 현재 일선 병원에서 품절 상황을 맞고 있다.
더구나 항종양제와 응급항고혈압제, 혈장단백질 제제 등도 품절되면서 환자들의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료의약품 자급화가 10% 수준에 불과하다. 해외 원료의약품 의존도가 90%에 달할 정도로 높아 정부가 의약품 수급에 대책을 빠르게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하지만 '의대 증원'을 중심으로 한 의료개혁이 주요 이슈로 떠오르면서 의약품 공급불안정과 같은 현안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이 와중에 정작 정부가 발빠르게 해결해야 할 현안 과제가 표류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급작스런 의대 증원이라는 무리수를 두면서 의약품 공급 안정처럼 정작 풀어야 할 현안에는 별다른 조치를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의료갈등이 지속되면서 응급환자가 진료처를 찾지 못하고 사망하거나 상태가 악화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도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전공의 이탈에 따른 의료체계 마비로 일선 의사와 간호사 등 종사자의 피로도 극에 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의료개혁을 내세우며 핵심 정책으로 '의대 증원'에 강공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의사집단과 극심한 갈등으로 오히려 의료마비 사태를 불러왔다.
정부는 의료계의 반발에 부딪혀 '대학별 자율적 증원'으로 최근 한발 물러섰지만 의사단체에선 여전히 차가운 반응을 보인다.
정부는 지난주 한덕수 국무총리의 브리핑을 통해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분의 최대 절반까지 줄여 뽑을 수 있도록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이 역시 의사단체의 반대에 부딪혔다.
여기에 의료계는 정부가 제안한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 특별위원회'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지역의료 개선의 목표는 의대 증원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지역의사제나 공공병원 증대 등으로 점진적으로 개선할 수도 있었다.
여당인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런 의견은 있었는데도 정부가 의대 증원 만을 서둘러 밀어붙여 오히려 일이 크게 꼬여 버렸다.
▲ 윤석열 대통령(왼쪽)이 2024년 4월9일 경기 부천시 소사구의 심장전문병원인 부천세종병원을 방문해 중환자실을 찾아 의료진을 격려하고 있다. <대통령실> |
21대 국회에서도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국립공주대 의대 설치에 관한 특별법안'을,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경상남도 내 지역의사 양성을 위한 의대 설치 특별법안'을 각각 발의하기도 했다.
이제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국회 및 의료계와 대화해 ‘의대 증원’과 같은 첨예한 갈등 현안에서 한발 물러남과 동시에 의약품 공급망 안정화 등 현안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정책 노선을 바꿔야할 필요성이 크다.
윤 대통령은 ‘의대증원’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직접 내놓고 현재 나타나는 ‘의료체계 마비’ 사태를 서둘러 종식시켜야 한다. 급하게 밀어 붙여서 잘된 정책은 지금껏 없었다.
이제라도 난마처럼 얽힌 의료 계혁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풀어야 한다. 의료 정책은 사람들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