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1기 신도시(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 특별법이 공개된지 한 달이 넘게 지났지만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조합들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정부 규제 완화로 1기 신도시 주민들 사이에서 리모델링보다 재건축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아졌지만 현실적으로 규제완화 수혜 단지는 한정될 것으로 여겨져 리모델링이 현실적 대안이라는 의견도 떠오른다.
 
1기 신도시 규제완화 수혜 제한적, 대안으로 다시 떠오르는 리모델링

▲ 1기 신도시에서 용적률 500% 완화 등의 규제완화 정책이 소수 단지 적용에 그칠 것으로 예상돼 리모델링사업이 현실적 대안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사진은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연합뉴스>


24일 국토교통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최근 여당은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1기 신도시 특별법)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법안 내용은 지난 2월7일 국토부에서 발표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상지는 택지조성사업 완료 이후 20년 이상 경과한 100만㎡ 택지 등으로 한정했다. 면적 기준 100만㎡는 수도권 행정동 크기(인구 2만5천 명, 주택 1만 세대 안팎)로 도시 단위 광역 정비가 필요한 최소 규모에 해당한다. 

또한 용적률 규제는 종상향 수준(제2종 → 제3종·준주거 등)으로 최대 500%까지 대폭 완화한다. 현재 1기 신도시 용적률을 살펴보면 일산 169%, 분당 184%, 평촌 204%, 산본 205%, 중동 226% 등이다.

국토부 발표 이후 특별법 혜택이 재건축사업에 집중되면서 리모델링사업을 추진하는 단지들 사이에 재건축으로 사업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었다. 리모델링을 선호하는 주민과 재건축을 선호하는 주민 사이 갈등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 1기 신도시의 모든 아파트 단지에 적용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선 용적률 완화는 역세권 아파트에 한정돼 적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역세권은 지하철역에서 250m 이내인 초역세권과 500m 안인 역세권으로 구분된다. 

용적률이 증가하면 세대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인프라 부담이 가중된다. 비역세권 지역까지 용적률이 완화되면 교통 인프라 부담이 커져 출퇴근 시간에 교통 혼잡도가 더 높아지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1기 신도시는 계획도시로 지하철역 주변에는 상업지구가 조성됐고 역에서 떨어진 구역에 주거지구가 구축됐다. 역세권 단지 위주로 용적률 규제 완화가 적용된다면 사실상 수혜 단지는 소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택지조성사업 완료 이후 20년 이상 경과한 100만㎡ 택지 요건도 까다로운 것으로 분석됐다. 재건축 연한인 30년을 10년 이상 앞당겨 규제가 완화된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100만㎡ 택지 요건 충족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1기 신도시에서 통합 재건축을 추진해야 이런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지만 1기신도시범재건축연합회(범재연)에 따르면 분당의 경우 130여 개 노후단지들 가운데 통합 재건축이 가능한 단지는 20여 개에 불과하다.

이웃한 아파트 단지의 조합이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면 각 아파트의 필지를 하나의 필지로 활용해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함에 따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건설사 사이 수주경쟁을 유도해 좋은 조건으로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21일 고양 일산 백송마을5단지를 찾아 “전체의 이익과 방향에 맞으면 개별 재건축을 추진해도 불이익은 없지만 합치면 합칠수록 이익이 되도록 하겠다”며 “합쳐야 주차장도 더 나오고 공원·어린이집도 가능하고 공공기여는 통합으로 할수록 커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합 재건축을 장담하기 쉽지 않다.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면 조합 사이 의견을 조율하고 인·허가 절차 등이 추가로 필요해 시공사 선정이 늦춰지는 등 사업속도가 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백송마을5단지 재건축준비위원회 측은 “재건축사업을 할 준비가 돼 있는 개별 단지부터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며 “단지 5개 세대에서 천정이 내려앉아 재건축이 시급한데 통합으로 묶어서 가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사업이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1기 신도시들은 이미 허용 용적률을 거의 다 채워 재건축사업의 사업성이 떨어지는 만큼 리모델링사업이 대안이라는 것이다. 

용적률은 도시정비사업을 할 때 고려되는 중요한 사업요소 가운데 하나다. 용적률이 기존보다 높아질수록 일반분양 물량이 늘어나 사업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사업은 기존 아파트 단지의 용적률이 높더라도 증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리모델링은 주택법에 따라 기존 세대수의 15% 이내에서 세대수를 늘릴 수 있다.

정부도 재건축사업에 혜택이 집중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리모델링사업에도 혜택을 주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특별법에서 현행 15%보다 더 많은 세대수 증가를 허용하기로 했다.

원 장관은 10일 의원총회에서 “리모델링사업도 장점이 있어 이를 추진하는 경우에도 큰 불이익이 없도록 세심하게 지원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산본 율곡주공3단지, 개나리주공13단지, 무궁화주공1단지 등 9개 단지는 리모델링사업 절차를 밟으며 흔들림 없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시정비업계 관계자는 “재건축과 리모델링사업이 각각 유리한 아파트 단지가 있어 두 시장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며 “정비사업에서 사업속도가 가장 중요한 만큼 추진위원회나 조합은 각 사업방식에서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