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미국 반도체 투자로 ‘선택과 집중’ 흔들려, 삼성전자 반사이익 기대

▲ TSMC의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 확대가 전문 기술인력 분산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만 TSMC 반도체 생산공장.

[비즈니스포스트] TSMC가 미국에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투자 규모를 대폭 확대하면서 대만에 위치한 생산공장 및 연구센터의 기술 전문인력이 대거 유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TSMC의 기술 역량이 미국 투자를 계기로 분산돼 악영향을 받는다면 최대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차세대 미세공정 상용화에 앞서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될 수도 있다.

23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TSMC 임직원들 사이에서 400억 달러(약 52조 원)에 이르는 미국 시설투자 계획에 관련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익명을 요구한 TSMC 임직원 11명과 인터뷰를 통해 이런 내용을 보도하며 TSMC의 기술 경쟁력에 관련한 부정적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TSMC가 파운드리시장에서 장기간 최고의 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던 배경에 첨단 공정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TSMC가 현재 계획하고 있는 대로 미국에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실행한다면 기술 인력이 미국으로 유출되거나 연구개발 역량이 분산돼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TSMC 임직원은 미국에 투자 확대가 잘못된 사업 전략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며 “미국 투자 결정에 얽혀있는 복잡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TSMC는 최근 미국 애리조나주에 신설하는 반도체 생산공장의 투자 규모를 기존 120억 달러에서 400억 달러까지 늘리기로 했다. 4나노와 3나노 미세공정 등 첨단 기술을 미국 내 생산라인에 도입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기술 난이도가 높은 파운드리 미세공정 특성상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것은 물론 양산 체계를 갖추고 반도체 수율 등을 안정화하기 위해 전문 기술인력의 역량도 필수로 꼽힌다.

자연히 TSMC가 기존에 대만 반도체공장 및 연구센터에서 근무하던 인력을 미국으로 이동해 이런 작업을 담당하도록 할 공산이 크다.

TSMC가 미국 투자 확대를 결정한 데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으로 대만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을 침공해 TSMC의 반도체 기술과 생산 설비를 확보하려 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이러한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대응 전략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에 첨단 반도체 생산공장을 설립하는 일은 생산 거점을 다변화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산하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TSMC 임직원들이 우려하고 있는 대로 회사의 역량이 분산되는 일도 자연히 현실화될 수 있다.

TSMC가 미국 현지에서 기술 인력을 채용하는 일도 쉽지 않다. TSMC의 조직 문화와 인사관리 시스템 등이 미국에서 자리잡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TSMC 미국 반도체 투자로 ‘선택과 집중’ 흔들려, 삼성전자 반사이익 기대

▲ 삼성전자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내부.

뉴욕타임스는 TSMC 출신 엔지니어의 말을 인용해 “미국 투자에 가장 큰 과제는 인력 관리가 될 것”이라며 “미국인들은 TSMC가 관리하기 가장 까다로운 대상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대만에서 근무하는 인력들은 대부분 관리자의 명령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미국 현지 인력들은 반대 의사를 나타내는 등 사례가 많기 때문에 효율적인 인력 운용이 어렵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TSMC의 관리자급에 해당하는 임직원이 미국 애리조나 공장으로 이동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는 언급도 이어졌다.

TSMC가 이처럼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 확대에 여러 불확실성을 안게 됐다는 점은 경쟁사인 삼성전자에 반사이익으로 돌아올 여지가 충분하다.

대만의 기술 전문인력이 미국으로 분산돼 최신 미세공정 기술 개발과 양산체계 구축, 수율 안정화 등 속도가 늦어진다면 삼성전자가 해당 영역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역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170억 달러를 들여 파운드리공장을 신설하고 있는 만큼 TSMC와 비슷한 고민을 안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이미 테일러 인근의 오스틴에 대형 반도체공장을 운영하며 충분한 경험과 노하우, 인력 등을 갖추고 있는 만큼 TSMC에 뚜렷한 우위를 보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 규모가 TSMC보다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과 비교적 유연한 조직문화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결국 TSMC의 무리한 미국 반도체공장 투자 확대가 삼성전자에 경쟁 우위를 내주는 중요한 패착으로 작용하게 될 수 있다는 전망도 고개를 든다.

뉴욕타임스는 “TSMC에 애리조나 공장 신설과 관련한 압박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사업적 관점에서 볼 때 거의 이득을 볼 수 없는 결정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나온다”고 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