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정부가 주도한 EUV(극자외선) 반도체 장비 개발 프로젝트가 이미 시제품 가동 단계에 접어들며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는 미국의 기술 규제 극복에 중요한 업적으로 꼽힌다. ASML의 반도체 장비 홍보용 이미지.
해당 기술은 중국이 미국 정부의 규제를 넘고 고성능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자체 생산하는 데 핵심인 만큼 ‘맨해튼 프로젝트’ 수준의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로이터는 18일 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중국이 올해 초부터 EUV 시제품 가동을 시작했다”며 “미국 정부가 몇 년째 견제하고 있던 핵심 기술”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의 EUV 시제품은 올해 초 완성돼 현재 시험 가동 단계를 거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아직 실제 반도체를 생산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로이터는 중국이 이를 통해 고성능 반도체 자급체제를 구축하는 시점이 업계의 예상보다 몇 년 정도 앞당겨질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EUV를 공급하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 출신 엔지니어들이 중국에서 기술 개발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EUV는 7나노 미만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에 필수로 쓰이는 기술이다. 삼성전자와 TSMC, 인텔이 모두 ASML의 반도체 장비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과 네덜란드 정부는 중국의 반도체 기술 발전을 막기 위해 ASML이 EUV 장비를 중국 고객사에 판매하는 일을 금지하고 있다.
중국이 해당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한다면 이러한 규제를 사실상 무력화할 수 있는 셈이다.
로이터는 “중국의 EUV 자급체제 달성은 시진핑 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6년에 걸쳐 추진해 온 반도체 공급망 독립 프로젝트의 중요한 결실”이라고 전했다.
EUV 장비 개발 프로젝트는 중국 정부에서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국 1위 인공지능 반도체 기업인 화웨이가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웨이와 관련된 다수의 관계자는 로이터에 “반도체 설계와 장비, 생산 및 제품 통합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 화웨이의 엔지니어들이 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EUV 자급체제 구축은 이처럼 민관 협력으로 비밀리에 추진되면서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에 견줄 만한 중요성을 띠고 있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을 의미한다.
▲ ASML의 EUV 장비를 활용하는 반도체 공정 홍보용 이미지.
화웨이의 최신 인공지능 반도체는 현재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의 7나노 공정을 기반으로 생산된다. 이 때문에 성능과 전력 효율, 생산 수율 등에 큰 한계를 보인다.
만약 중국산 EUV가 제조에 활용된다면 이러한 약점을 모두 극복하고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의 기술력을 따라잡을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로이터에 “중국은 반도체 공급망에서 미국 기술을 완전히 배제하려 하고 있다”며 “자국산 장비로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일이 목표”라고 전했다.
다만 중국이 실제로 자체 EUV 장비를 활용해 고성능 인공지능 반도체를 제조하는 시점은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ASML은 EUV 장비 시제품을 2001년에 처음 구축했는데 이를 2019년 실제 반도체 생산에 적용하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과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내부 관계자들은 중국의 EUV 장비 상용화 가능 시점을 2030년 안팎으로 보고 있다.
중국이 EUV 장비 자체 생산에 필요한 주요 부품 공급망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난제로 꼽힌다.
현재 구축한 중국산 EUV 장비 시제품은 중고 시장에서 구매한 ASML 장비 부품이나 일본 니콘과 캐논 등 기업의 부품을 활용해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ASML에 이어 니콘과 캐논 역시 중국에 고성능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받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이러한 부품을 조달할 수 있는 경로는 제한적이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에 따른 여러 제약을 극복하고 EUV 장비 시제품 구축 및 가동에 성공한 것은 무시하기 어려운 성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시장 조사기관 세미애널리시스는 로이터에 “중국이 EUV 기술 자체 개발에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다는 점은 분명하다”며 “결국 실제 상용화는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