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양1963 제품 이미지. <삼양식품>
60여 년 국내 라면 역사에서 프리미엄 라면이 본격 출시된 건 10여 년이 채 되지 않았다. 오래토록 부담 없는 한 끼의 대명사였던 라면의 고급화 전략을 펼치는 일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전에 비해 소득 수준은 크게 높아졌지만, 그렇다고 해도 주 평균 하나 먹던 라면을 2개를 먹지는 않는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제품 고급화를 통한 질적 성장은 라면 업계의 해묵은 공통 과제로 떠올랐다.
7일 관련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삼양식품과 오뚜기는 최근 프리미엄 제품군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삼양식품은 최근 삼양 브랜드의 첫 프리미엄 제품 ‘삼양1963’ 내놓고 내수시장 공략에 나섰다.
‘삼양1963’은 팜유보다 두 배가량 비싼 소기름으로 면을 튀기고 제조 단가가 높은 동결건조공법·후첨 방식의 후레이크와 액상스프를 적용했다. 가격은 1봉당 1538원으로 기존 대표 국물라면 제품 ‘삼양라면’의 2배에 이른다.
오뚜기는 지난달 프리미엄 라면 제품 ‘제주똣똣라면’을 기존 제주 기념품숍과 온라인에서 전국 온오프라인 유통채널로 확대 출시했다. 제주똣똣라면은 진라면의 매운맛에 제주 라면 맛집 ‘금악 똣똣라면’의 비법 양념장을 더하고, 건더기에 제주 특산물을 활용한 제품이다. 가격은 자사몰 기준 4개 묶음 8880원으로 1개당 2220원 꼴이다.
지난 3일에는 출시 10년 만에 ‘진짬뽕’ 제품을 새단장하고 출시했다. 유성스프 풍미를 강화하고 해물 풍미와 짬뽕 특유의 매콤·칼칼한 맛을 높였다. 가격은 자사몰 기준 4개 묶음 6180원으로 1개당 1545원이다.
오뚜기 관계자는 “업그레이드된 제품력을 바탕으로 프리미엄 짬뽕라면 시장의 혁신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삼양식품과 오뚜기는 앞서 프리미엄 라면시장에서 철저하게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
삼양식품은 2012년 당시 운영 중이던 외식 브랜드 호면당 메뉴를 활용한 프리미엄 제품 5종을 내놨다. 이어 이듬해에는 면발을 튀기지 않고 오븐에서 구워낸 ‘구운면‘을 출시했다. 가격은 각각 1800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높은 가격에 발목이 잡혀 이들 제품 모두 1~2년여 만에 조용히 사라졌다.
오뚜기는 2021년 1월 첫 프리미엄 라면 브랜드 ‘라면비책’을 출시했다. 첫 제품 ‘닭개장면’ 가격은 1개당 1827원이었다. 그해 4월 두 번째 제품 ‘고기짬뽕’을 선보였으나 라면비책 역시 가격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2023년 단종됐다.
국내에서 프리미엄 국물 라면 제품이 뚜렷한 성공을 거둔 경우는 거의 찾기가 힘들다.
대표 프리미엄 라면으로 자리잡은 농심 ‘신라면블랙’ 역시 현재의 입지를 다지기까지 큰 우여곡절을 겪었다.
농심은 2011년 4월 국내 첫 프리미엄 라면으로 여겨지는 신라면블랙을 1600원이라는 높은 가격에 출시했다. 하지만 신제품 출시를 빌미로 라면 가격을 올리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일었고,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허위·과장 표시와 광고를 했다는 혐의로 1억55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 오뚜기 '제주똣똣라면' 연출 이미지. <오뚜기>
국내 프리미엄 라면 출시가 본격화한 것도 이 때쯤부터다. 1963년 국내 첫 인스턴트 라면 ‘삼양라면’이 출시된 지 약 50년 만의 일이다. 출시 당시 삼양라면 가격은 10원이었다. 당시 곰탕 1그릇이 50원, 짜장면은 30원이었다.
신라면블랙은 현재 농심의 꾸준한 매출원으로 자리잡았고, 해외에서도 2020년 뉴욕타임즈로부터 세계 최고의 라면으로 꼽히는 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신라면블랙은 성공 사례인 동시에 국내에 프리미엄 라면이 자리 잡기 얼마나 힘든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라면업계가 프리미엄 라면시장의 문을 꾸준히 두드리는 것은 생활패턴 변화와 내수 침체에 따른 소비 위축 등으로 라면시장 성장속도가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라면 제품은 국내에서 필수재로서 정부의 강력한 가격 통제 아래 놓여 있다. 추가적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액상 소스와 차별화한 건더기 등으로 고급화한 신제품 출시를 통한 질적 성장이 필수적인 셈이다.
특히 삼양식품의 경우 삼양1963 판매량을 기존 국물 라면 주력 제품인 삼양라면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정했다. 삼양식품은 1989년 ‘공업용 우지를 썼다’는 익명 투서에서 촉발된 ‘우지 파동’ 여파로 80년대부터 내리막길을 걷던 국내 라면시장 점유율이 90년대 들어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다. 36년 만에 우지로 튀긴 라면 신제품을 내놓으며 국내 라면 업계 위상 회복을 위한 정면승부에 나선 것이다.
전사적 역량을 쏟아 부은 삼양1963의 성공 여부는 당분간 라면업계 프리미엄 전략의 가능성을 평가하는 지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2011년 출시한 신라면블랙이 국내에서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은 더 좋은 제품을 비싼 값을 지불하고 먹겠다는 소비층이 확실히 형성됐다는 뜻”이라며 “경기 침체 영향으로 프리미엄 라면시장이 힘든 상황인 건 맞지만 하나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했고, 경기가 나아지고 소비자들의 다양한 먹거리에 관한 수요가 커지면 충분히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