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온라인에서 느닷 없는 논쟁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부가 일부러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을 밀어주기 위해 쿠팡을 단속하고 있다는 주장이 근거없이 나돌고 있다. 사진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레드에 올라온 일부 누리꾼의 주장. <스레드 화면 갈무리>
이재명 정부가 이른바 ‘친중’ 성향에 따라 알리익스프레스•테무와 같은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을 밀어주면서 의도적으로 쿠팡을 압박하고 있다는 말이 나돈다.
중국 국적의 전직 직원이 벌인 일로 알려지면서 ‘중국의 공작에 한국이 당했다’라는 근거가 희박한 음모론 주장도 확산하고 있다.
5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종합하면 쿠팡에서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이른바 이념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쿠팡 사태를 ‘의도적인 쿠팡 죽이기’라고 보는 쪽에서는 비슷한 종류의 사고들이 터졌을 때와 비교해 쿠팡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올해 주요 대기업에서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사태만 해도 SK텔레콤과, KT, 롯데카드, GS리테일 등이 있다. SK텔레콤에서 발생한 사고로 유출된 정보만 2700만 건에 이른다.
SK텔레콤 때도 보안 공백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긴 했다. 사장까지 앞장 서 정부와 소비자 앞에 머리를 숙였다. SK텔레콤에게 유례 없는 수준의 과징금 3천억 원대가 부과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쿠팡 역시 비슷한 사고를 낸 것은 사실이라는 점에 이견은 없다. 하지만 사건이 알려진 지 3일 만에 국회가 긴급 현안질의를 소집해 쿠팡을 질타하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나서 최대 과징금 부과를 검토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이는 것은 지나친 처사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보다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쿠팡의 군기부터 잡으려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나올 정도다.
일각에서는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플랫폼들이 한국에서 기를 펼 수 있는 판을 만들기 위해 일부터 쿠팡을 더 세게 터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제기한다.
이들은 올해 알리익스프레스가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인 ‘알리프레시’를 통해 익일배송을 일부 지역에서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다는 점, 민주노총과 국회가 쿠팡을 겨냥해 새벽배송 중단 논의를 펼치려 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쿠팡에서 일어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중국 플랫폼의 영향력을 높이는 불쏘시개로 쓰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쿠팡에 1조 원 이상의 과징금이 부과되거나 영업정지 처분이 나온다면 중국 플랫폼의 한국 공습이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덧붙여지고 있다.
쿠팡 탈퇴(탈팡)나 다른 플랫폼으로 갈아타기(갈팡)를 인증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움직임이 생겨나는 것도 이런 주장에 동조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쿠팡 탈퇴를 선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중국 자본을 도와주는 사람들”, “알리와 테무에 시장을 내어줄 수 없다. 쿠팡을 지켜야 한다”, “쿠팡 탈퇴하는 사람들은 통신사도 다 탈퇴했겠네, 카톡도 예전에 털렸으니 메신저도 쓰지 말고 살아라” 등의 말을 쏟아내고 있다.
▲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혐중 정서에도 불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회사라는 점이 정부의 표적 대상이 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재명 정부가 과거 우파정부만큼 미국과 친하지 않다는 전제를 깔고 미국기업인 쿠팡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다가 이번 기회를 맞아 혼쭐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혐중 정서에도 불이 붙었다.
쿠팡과 경찰은 모두 말을 아끼고 있지만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전직 중국인 개발자가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로 알려져 있다.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쿠팡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정보 유출자로 추정되는 전 중국인 직원은 인증 관련 업무 담당자였다.
쿠팡은 이 직원이 퇴사한 이후에도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인증키를 폐기하지 않았고 결국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이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문제는 이 사실이 엉뚱하게 혐중 정서로 번졌다는 점이다.
쿠팡이 계속 부인하고 있지만 “쿠팡 내부 IT 인력 절반이 중국인”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 계속 확산하면서 중국인이라 한국인의 개인 정보를 훔쳤다는 뉘앙스의 말들이 계속 퍼져나가고 있다.
이커머스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의 핵심은 쿠팡 보안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든 범죄자가 쿠팡이 고용한 중국인일 뿐이라는 것이지 중국인이라서 이번 사태를 일으킨 것이 아니다”며 “이런 사태가 날 때마다 중국 아니면 북한이 배후에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주장에 동조하면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