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이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15년 만에 원전 수출 성과를 거두게 됐다.

황주호 사장은 한전이나 관료 출신이 아니라 민간 원자력 전문가로서 처음 한수원 사장에 오른 인물로서 국내 원전산업사에 한 획을 긋게 돼 더욱 뜻깊다.
 
황주호 한수원 원전 수주 끝까지 챙긴다, "웨스팅하우스와 소송 합의 볼 것"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왼쪽)이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체코 신규 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관련한 브리핑에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과 함께 참가했다. <연합뉴스>


황 사장은 원전 수주전 승리를 위해 앞장서 뛰어왔는데 본계약 체결까지 남은 기간 우선협상대상자로서 좋은 조건으로 수주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협상에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직접 체코 신규 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관련한 브리핑을 진행했다. 애초 최남호 산업부 제2차관이 브리핑을 맡기로 했으나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안 장관이 황 사장과 나란히 브리핑장에 섰다.

황 사장은 브리핑에서 체코 원전 수주가 향후 추가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그는 "이번 2개 호기를 마치고 5년 후에 나머지 두 호기를 검토하는데 전력 수요 급증을 고려하면 기간이 줄어들 수 있다"며 "이번에 1개 호기당 12조 원인데 추가로 나오는 것도 이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업비 24조 원은 주로 건설과 관련된 것이므로 나중에 운영과 유지·보수, 핵연료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별개”라며 “60년을 운영한다고 보면 건설비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체코 원전 수주를 두고 일각에서 제기된 경제적 효과와 관련한 의구심을 불식하기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체코 정부는 17일(현지시각) 체코 중부 두코바니 신규 원자력 발전소 2기 건설 공사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수원이 주도하는 ‘팀코리아’를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체코 정부는 두코바니 외에도 테믈린에 원자력 발전소 2기를 추가로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번에는 두코바니 원전 공사만을 대상으로 계약이 진행됐으나 추후 테믈린 원전 공사 계획이 본 궤도에 오른다면 한수원이 우선협상권을 받게 된다.

한수원과 프랑스전력공사(EDF)가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이번 수주전은 2016년부터 시작됐다. 애초 체코 정부는 두코바니에 원전 1기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입찰 신청을 받았다.

체코 정부는 2016년 한수원을 포함해 6개 사의 입찰 예비 문서를 받았으나 2021년 안보를 이유로 삼아 러시아 로사톰(Rosatom)과 중국의 중국광핵집단(CGN)을 배제했다. 2022년 입찰 계획서를 제출하는 시점에서는 한수원과 EDF에 더해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삼파전을 벌이게 됐다.

다만 건설계획이 원전 4기, 입찰 규모 30조 원 수준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웨스팅하우스가 책임준공 확약, 일부 하자 보수 등 입찰 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해 탈락하며 최종적으로는 프랑스와 EDF의 맞대결이 벌어지게 됐다. 한전이 현재 EDF에 합쳐진 아레바와 최종 경쟁을 벌였던 2009년 UAE 원전 수주전과 비슷한 구도가 된 셈이다.
 
황주호 한수원 원전 수주 끝까지 챙긴다, "웨스팅하우스와 소송 합의 볼 것"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4월29일(현지시각) 체코 신규원전 건설사업의 발주사 EDU II를 방문해 최종 입찰서를 제출한 뒤 다니엘 베네쉬 체코전력공사(CEZ) 사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황 사장은 체코 정치권에서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EDF에 비해 저렴한 공사비를 제안했다.

체코 야당 ANO 부총재인 카렐 하블리첵 전 산업통상부 장관은 17일(현지시각)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 우선협상대상자) 결정이 마침내 내려진 것에 매우 기쁘다”라며 “한수원은 물가 상승을 고려한 좋은 제안을 했으며 이는 우리가 두코바니 원전을 짓기로 했을 때 예측했던 것과 일치한다”라고 말했다.

한수원이 바라카 원전을 지으면서 공사 기한 준수 능력을 선보인 것도 수주에 도움이 된 것으로 판단된다. 체코 현지 언론 트르제비치 저널(Třebíčský deník)에 따르면 한수원은 공기 지연과 관련한 보증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사장은 원전 사업에 체코 기업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점도 약속했다.

황주호 사장은 18일 브리핑에서 “예전부터 체코 현지 기업 제작 분야 200개 기업, 시공까지 포함하면 700여 개 기업과 접촉을 마쳤고 기업들에 이번 사업에 입찰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을 확보하라고 안내했다”라고 말했다.

황주호 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해외 원전 수출을 목표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전방위 해외 영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2022년 8월22일 경북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기술도 없이 원전을 도입해 원전 강국으로 발돋움한 저력과 긍지로 새 역사를 쓰자”라며 “원전 수출 10기가 목표”라고 말했다.

취임하자마자 이집트 엘다바 원전 2차측 건설사업 계약을 마무리하며 성과를 거뒀던 황 사장은 황 사장은 2022년부터 2024년 7월까지 여러 차례 체코를 방문했다. 수주전이 본격화한 2024년에는 체코를 3번 방문하는 등 수주 활동에 온 힘을 기울였다. 

황 사장은 2024년 1월에는 체코 언론을 대상으로 사업 설명회를 진행했다. 4월에는 체코 신규원전 건설사업의 발주처인 EDU II를 직접 방문해 최종 입찰서를 제출했다. 6월 체코 방문에서는 요제프 시켈라 체코 산업통상부 장관을 면담하고 ‘한국·체코 원자력 및 문화교류의 날’ 행사에도 참가했다.

황 사장은 "이겼다고 느낀 순간은 한번도 없었다"며 "체코 고위 당국자와 아침 6시30분 약속에 1시간 일찍 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한국 사람 대단하다'고 말해 처음으로 '우리가 마음을 사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지속적 스킨십 노력을 기울였다는 방증이다.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 EDF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유럽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유럽에서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으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 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 사장은 브리핑에서 "네덜란드는 현재 타당성 조사 용역을 진행하고 있고 이후 입찰 준비를 할 것”이라며 "핀란드나 스웨덴과도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폴란드는 한수원이 원전 수주를 기대해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력하게 거론된다. 한국과 폴란드 정부는 2022년 10월 폴란드 퐁트누프 지역에 1400MW(메가와트) 규모의 원전 2기 건설을 위한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한 바 있다.

한수원 또한 2022년 폴란드 최대 민간 발전사인 제파크(ZEPAK), 폴란드국영전력공사(PGE)와 한국형 원전 건설을 위한 협력의향서를 체결했다. 황 사장은 2023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을 만나 원전 수주 활동을 벌였고 올해 1월에는 바르샤바 사무소 개소에 참석하는 등 사전활동에 나서고 있다.

황 사장 임기는 2025년 8월 끝난다. 체코 정부와 협상을 원만하게 진행한다면 2025년 3월 본계약 체결을 직접 마무리짓게 된다.

다만 협상을 통해 최종 계약 조건이 확정되는 데다 과거 한전이 영국 원전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가 중단한 사례도 있는 만큼 황 사장은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적 재산권 문제가 원전 수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므로 웨스팅하우스의 분쟁을 본계약 체결 전까지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한수원이 체코 신규 원전으로 제안한 APR-1000 원자로는 웨스팅하우스가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APR-1400를 기반으로 한다.

웨스팅하우스는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입장문을 통해 "한수원은 허가를 받지 않은 원자로 기술을 사용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안덕근 장관은 "지재권 문제는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풀어야 할 부분으로 지금 마지막 조율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국과 미국 정부 차원에서 원자력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부분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황 사장은 지난해 5월 "시간이 걸리겠지만 웨스팅하우스와 소송은 아마 합의를 볼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황주호 사장은 사용후핵연료 처리 분야의 권위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한수원이 한국전력공사에서 분리된 이래 처음으로 임명된 학계 출신 사장이다.

1956년 3월22일 부산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조지아공과대학교 대학원에서 원자핵공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1년부터 경희대 원자력 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다가 2010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원장을 맡았다. 이후 원자력진흥위원회 위원,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2019년 한수원 혁신성장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수원 사장에 임명됐다. 선임 과정에서 탈원전 반대 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2022년 8월20일 사장으로 취임했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