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차 관세 인상안을 시행했지만 11월 최종 결정 전까지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유럽연합 본부.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을 비롯한 친환경 목표를 달성하려면 이미 유럽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전기차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7일 로이터 등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유럽연합 관계자들은 중국산 전기차 관세 부과가 시장 불균형에 해결책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에 시행되는 수입관세 인상안을 최종 결정까지 밀어붙이기보다 중국과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는 방향에 무게를 싣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위원회 대변인은 “유럽연합이 원하는 것은 해결책”이라며 “관세 부과는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이 불공정한 경쟁 환경에 놓여 있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 가운데 하나”고 말했다.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유럽연합 수석부집행위원장은 “우리의 목표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며 “중국과 대화를 이어가고 있으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돔브로브스키스 수석부집행위원장은 유럽연합이 11월에 회원국 투표를 거쳐 관세 부과를 최종 결정하는 시점에는 수입관세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는 방안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산 전기차에 관세율 인상을 근본적 해결 방법으로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시각을 분명하게 나타낸 셈이다.
유럽연합은 4일(현지시각) 중국에서 수입되는 전기차에 최고 37.6%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관세율은 BYD 15.1%, 지리자동차 19.72%, 상하이자동차 34.4% 등 업체별로 다르게 적용된다.
이는 중국 정부가 자국 전기차 기업을 부당하게 지원해 저가에 수출을 확대하도록 유도하면서 유럽 내 제조사들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의혹을 두고 조사를 진행한 데 따른 것이다.
유럽연합이 지난 6월 관세 인상안을 결정한 뒤 중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관세 철회를 설득하기 위한 협상에 나섰다. 일부 회원국을 대상으로 무역보복 조치를 예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이 대응에 나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만큼 이번 추가 수입관세율 결정은 예상된 수순으로 꼽혔다.
유럽연합은 11월에 27개 회원국 정부의 투표를 거쳐 중국산 전기차에 수입관세 부과 여부를 최종적으로 확정한다. 앞으로 약 4개월의 협상 시간이 추가로 남아있는 셈이다.
▲ 독일 뮌헨에 전시된 중국 BYD 전기차의 모습.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과 유럽이 남은 시간 동안 심각한 ‘무역전쟁’이 벌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유럽연합이 관세 부과를 시행하며 해결 방법을 찾겠다는 점을 강조한 점이 중국과 완전한 대립각을 세우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도 유럽연합이 실제로 전기차 수입 관세를 인상한 데 강경하게 맞서는 대신 앞으로 꾸준한 대화를 이어가겠다며 다소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허야둥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유럽연합이 남은 4개월 동안 진정성 있는 태도로 대화에 참여해 양측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BYD를 비롯한 중국 기업의 전기차는 유럽에서 현지 제조사의 차량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 자동차 산업이 타격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2035년부터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중단하는 등 공격적인 친환경 정책을 앞세우고 있어 중국 전기차 기업에 의존을 낮추기는 쉽지 않다.
BMW 등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의 전기차 가격은 비교적 높은 수준이라 다수의 소비자층이 접근하기 어려운 만큼 저가의 중국산 차량이 대중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현재 유럽시장에서 중국산 전기차 점유율은 25% 안팎으로 추정된다. 2020년 3%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단기간에 상당한 비중으로 올라왔다.
결국 중국산 전기차에 지나친 수입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유럽연합의 전기차 보급 확대 목표에 큰 차질로 이어질 수 있고 소비자들에게도 큰 반감을 살 수 있다.
중국 시장에 의존이 높은 유럽 자동차 기업들도 중국 정부의 무역보복 조치로 사업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을 우려해 유럽연합의 관세 부과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꾸준히 높이고 있다.
AP통신은 유럽연합과 중국이 전기차의 판매가격 하한제도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대안으로 합의점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바라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