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차·배터리·태양광·철강·알루미늄 등 상당수 품목에 대한 관세를 대폭 높임에 따라 국내 산업계가 반사이득을 얻을 것으로 예상이 나온다. 하지만 소재·부품·장비 등 중국 의존도가 높은 업종은 타격이 받을 수 있다. 게다가 미·중 분쟁이 격화돼 글로벌 공급망에 문제가 발생하면 국내 산업 전체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주요국의 관세전쟁에 따라 한국 기업들이 맞이한 상황을 짚어보고 대응책을 모색하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상]미국 EU 관세폭탄에 중국 '맞불' 태세, 한국 산업 반사이익 낙관 금물
[중]배터리·태양광 글로벌 관세전쟁 한복판에, 중 보복시 공급망 차질 우려
[하]미국의 대중국 관세 폭탄, 자동차 "반사이익 크지 않아" 철강은 "우려"

[관세전쟁 격화-하] 미국의 중국 관세폭탄, 자동차 "반사이익 크지 않아" 철강은 "우려"

▲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대폭 인상키로 하면서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자동차 업계에선 기대감이, 철강 업계에선 우려가 나온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미국과 중국이 '관세 전쟁'을 재개한 가운데 국내 각 산업에 미칠 영향을 놓고 여러 관측이 제기된다.

미국 정부의 이번 관세 인상 조치가 11월 치러질 미 대통령선거 경쟁과 연관성이 깊은 만큼, 국내 관련 산업의 즉각적 수혜는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관련 영향을 놓고 국내 자동차 업계에선 기대감이, 철강 업계에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27일 산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의 중국 전기차 대상 관세 인상에 따른 단기적 수혜는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전기차와 철강을 포함한 180억 달러(약 24조6천억 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대폭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판매되는 중국산 제품 가운데 전기차에 부과되는 관세는 기존 25%에서 100%로, 철강·알루미늄의 경우 0~7.5%에서 25%로 오른다. 중국산 전기차와 철강 제품에 높아진 관세율은 오는 8월1일부터 적용된다.

다만 관세 인상에 해당되는 중국산 제품 180억 달러가 중국의 대미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6%, 중국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5%에 불과하다. 해당 품목에서 미국의 중국산 수입 비중도 높지 않아 관세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도 적다.

미국의 이번 관세 인상 조치가 중국에 대한 경제적 타격이 아닌 오는 11월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중국의 대미 수출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1% 수준에 그친다. 

작년 4분기 중국 내수 시장을 중심으로 테슬라를 제치고 첫 세계 전기차 판매량 1위에 오른 중국 BYD 역시 현재 미국에서 전기 버스와 트럭 등 상용차만 판매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 정부는 전기차 등 급성장하는 중국 제품의 수출을 줄이기 위해 동맹국들과 공조에 나서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23일 이탈리아 북부 스트레사에서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의 저가 수출 공세에 맞서 '반대의 장벽'을 세우자"고 말했다.

G7의 재무장관들 역시 이틀 동안의 회의를 마친 뒤 공동 성명을 통해 "중국의 비시장적 정책과 관행이 노동자와 산업, 경제 회복력을 훼손하는 데 우려를 표명한다"며 "과잉 생산의 잠재적 악영향을 모니터링하고, 세계무역기구(WTO) 원칙에 따라 공평한 경쟁의 장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은 중국 정부가 자국 전기차에 불법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조사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오는 7월4일 예비관세 부과 여부를 결정한다.

다만 G7 중 4개국이 소속된 EU가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관세 인상 조치를 단행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 전망이다. 

미국과 달리 유럽에서 중국산 전기차는 전체 전기차 수입량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관세 인상이 전기차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유럽 소비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또 EU의 대중국 자동차 수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 7년 동안 중국 자동차 수입에서 EU가 차지하는 비중은 45.5%에 달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측은 "유럽의 대중국 자동차 수출에 관한 잠재적 보복 공격은 감당하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EU가 중국 전기차에 미국 정책과 비슷한 제재를 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이를 종합하면 현재로선 미국의 중국 전기차 대상 관세 인상 조치로 현대차·기아가 미국 현지 시장에서 수혜를 입을 여지가 크지 않을 뿐더러, 중국 전기차 판매가 증가화고 있는 유럽시장 등으로 관세 인상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BYD 등 중국 전기차 브랜드의 미국 진출이 더욱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중국에서 생산된 테슬라 등 미국 전기차의 미국 수출길도 사실상 봉쇄됐다.

이에 따라 현대차·기아는 값싼 중국 전기차들의 미국 수입으로 인한 출혈 경쟁을 상당 기간 유예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철강 업계는 미국의 관세 인상 조치와 관련해 오히려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국산 철강 제품의 미국 수출이 줄어들면서 얻을 수 있는 수혜의 한계는 명백한 반면, 그로 인한 부정적 영향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한국은 2018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산 철강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물량을 제한하는 '철강 232조'를 적용했을 때 고율 관세 대신 '수출 쿼터 축소'를 선택했다. 

이에 따라 한국산 철강제품은 미국으로부터 2015~2017년 평균 물량의 70%인 263만 톤의 쿼터를 할당받아 관세(25%) 없이 수출하고 있다. 

그 뒤 할당 받은 쿼터 대부분을 채워서 수출을 진행해온 만큼, 중국산 철강 제품의 미국 수출이 줄더라도 한국산 철강 수출이 늘어나긴 어려운 상황이다.

또 이번 관세 인상이 미국 대선을 겨냥한 경향이 큰 만큼, 현 시점에서 미국이 한국산 철강 수입 규제를 완화해줄 가능성도 사실상 '0'에 가깝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수출길이 막힌 중국산 철강 제품이 한국을 포함한 다른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공급 과잉으로 인해 부진한 국내 철강 산업이 더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내수 철강 시장이 최근 건설 경기 악화로 위축된 상황에서 미국발 관세 인상을 계기로 다른 국가로 밀어내기식 저가 덤핑 수출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철강재를 수출할 만한 나라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수출길이 막히면, 국내 수입되는 중국 제품이 더 늘어날 것"이라며 "이로 인해 국내 철강 제품 가격이 하락하고, 저가 제품 유입 확대로 품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