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 국제경제 톺아보기] 달러 강세 폭풍, 아시아를 직격하다

▲ 인도네시아 환전소 직원이 2024년 5월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미국 달러를 들어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인도네시아의 외환보유액이 2024년 4월 루피아 환율 방어 과정에서 전달 1404억 달러에서 1362억 달러로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인 인도네시아은행의 에디 수시안토 통화국장은 6일자 파이낸셜타임스 회견에서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네시아은행이 최근 자국 통화 루피아가 달러 대비 최저치를 기록하자, 강력한 외환 시장 개입을 다짐했다.

9일 루피아는 달러 당 1만6080루피아이다. 이는 아시아 외환위기 때이던 지난 1998년 7월의 달러 당 1만5100루피아, 코로나19 팬더믹이 발발하던 2020년 3월의 1만6080루피아를 능가하는 최저치이다.

외환위기와 코로나 팬더믹 때보다도 심한 루피아 폭락으로 인도네시아은행은 이미 지난달 23일 기준금리로 쓰이는 7일물 역환매채권(RRP) 금리를 연 6.00%에서 6.25%로 전격적으로 25bp(1bp=0.01%포인트) 인상했다. 인도네시아은행이 2016년에 7일물 역환매채권 금리를 기준금리로 삼은 이래 최고치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달러 강세로 인한 자국 통화 약세 및 자본 유출이 심각하다고 보고 금리 인상에 나섰다.

페리 와르지요 인도네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금리 인상 결정은 인도네시아 루피아 환율을 안정시키고 악화하는 글로벌 리스크 영향을 줄이기 위한 선제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지난달 예상을 깨는 금리인상에 이어 수시안토 국장이 다시 언론에 시장 개입을 다짐한 것은 인도네시아 외환 사정이 그만큼 심각함을 보여준 것이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기준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 경제인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말레이시아도 사정은 급박하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는 지난 1일 노동절 연설에서 1998년 이후 최저치에 근접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링깃화 가치 하락을 두고 “우려되지만 통제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링깃화도 달러당 4.4744링깃으로 최저치를 보이고 있다. 그는 이날 공무원 급여 13% 상승 등을 발표하며 링깃 가치 하락과 물가 상승으로 인한 민심 동요를 달래려 애썼다.

동남아에서 두 주요 국가의 환율위기는 아시아에 다시 외환위기를 부를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달러 강세 때문이다.

달러는 올해 들어 전세계 주요 통화에 대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가 추적하는 150개 통화 중 3분의 2가 올해 달러에 약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 강세는 미국 기준금리(5.25~5.5%)가 20년 만에 최고를 유지하는 데다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호조를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서 물가 오름세(인플레이션) 기조가 여전해, 금리 인하가 예상과는 달리 미뤄지면서 달러 강세는 더 힘을 받고 있다.

달러 강세로 일본 엔 가치는 지난달 29일 달러당 160엔대까지 추락하며 34년 만에 최저 수준을 보였다. 주요 통화들은 올해 들어서 적게는 -1%에서 많게는 -10%까지 가치가 떨어졌다.

외환 결제의 90%를 차지하는 달러 강세의 여파는 빠르고 전방위적으로 미친다. 달러 강세는 미국 외의 국가들에서는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수입 물가를 높인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수출 경쟁력을 낮추고 수입 물가를 낮추는 작용을 한다. 달러 강세가 진행되면 국제적인 물가 오름세를 부르지만 상대적으로 미국의 물가는 안정된다.

문제는 달러 강세가 잦아들지 않고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은 물가 때문에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고, 이 때문에 달러가 강세이지만 물가 오름세는 여전하다. 미국으로서는 고금리를 당분간 유지해야 하고, 이는 달러 강세를 유지시킨다.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말 낸 보고서에서 달러가 “더 오랫동안 더 강세가 되면서 문제를 주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달러 인덱스’는 여전히 추가적인 달러 강세의 여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급격히 금리를 올리고 있던 2022년 10월10일 110.31로 올라섰다가 지난 3일 105.03으로 내려왔다. 달러 인덱스 추이로 보면, 미국 경기 견조세와 고금리가 지속되면 달러 가치가 더 오를 소지가 충분하다는 점을 볼 수 있다.

지금의 달러 강세는 단기적으로는 코로나 팬더믹 이후, 길게는 2000년 닷컴버블 붕괴 이후 국제경제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미국 연준은 닷컴버블 붕괴 이후 시장을 살리려고 유동성을 불어넣었고, 이는 2001년 9.11테러 이후 극적으로 증가했다. 이렇게 시장에서 유동성이 넘치자, 연준은 통화긴축에 들어갔다.

2004년 6월부터 다시 금리 인상 사이클이 시작되고 2006년 6월까지 17번 연속으로 금리가 인상됐다. 저금리에 이은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불거지면서 2008년 금융위기가 강타했다.

연준은 다시 금리인하뿐 아니라 양적완화 정책으로 시장에 다시 대규모 유동성을 불어넣었고, 이런 저금리와 유동성은 10여년 이상 동안 지속됐다. 이런 과도한 유동성 와중에 2020년 코로나 팬더믹이 발발하자, 미 정부는 대규모 지출 및 대국민 직접 보조금 지급으로 시중에 돈을 더 풀었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한 공급망 병목 현상에 돈이 넘쳐나자, 잊혀졌던 인플레이션이 다시 찾아왔다.

미국에서는 2022년 중반에 연율 9%대 인플레이션이 몰아쳐, 40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연준은 급격한 금리인상을 단행할 수 밖에 없었다. 0~0.25%였던 연준의 정책금리는 2022년 3월부터 2023년 7월까지 무려 11차례나 인상돼, 5~5.5%까지 치솟았다.

코로나 팬더믹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놓고는 논쟁이 벌어졌으나, 장기적으로 보면 2000년 이후 축적된 미국 및 국제경제의 펀더멘틀이 만들어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펀더멘틀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고금리에 미국 경제의 견조세를 직조하면서, 달러 강세를 빚어내고, 각국은 환율 약세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달러 강세는 세계의 공장인 아시아의 각국 통화 및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사례에서 보듯이, 다시 아시아 외환위기의 악몽까지 자아내고 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아시아 경제의 두 거인인 중국과 일본은 제외됐는데, 이번에는 두 나라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 더욱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이 때문에 한·미·일 3국 재무장관은 지난달 말 워싱턴 회의에서 “외환시장의 사태 전개에 긴밀히 협의한다”며 “최근 일본 엔 및 한국 원의 평가절하는 일본과 한국에 심각한 우려”라고 밝혔다.

가장 우려스런 지점은 중국과 위안화이다. 중국 경제는 최근 부동산 위기와 국내 소비 저조로 디플레이션 조짐까지 보였다. 중국은 2008년부터 달러에 대한 위안 가치를 달러당 7위안 내외로 엄격하게 관리해왔는데, 현재 절하 압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현재 수출이 호조이고, 국제수지도 국내총생산의 2% 수준의 흑자를 기록해 위안화 절하가 바람직하지도 않은 상황이다. 국내 소비 수요를 강화할 분배 및 소득 정책이 필요할 때인데, 위안화 절하는 수입과 소비를 위축하게 할 것이다.

더구나, 미국 등 서방은 중국의 ‘과잉생산’을 문제 삼고 있다. 이는 달러 강세로 중국 제품들의 수출경쟁력이 더 강화됐기 때문이다. 중국 위안화가 추가적으로 절하되면, ‘과잉생산’된 중국 제품들이 수출 경쟁력을 더 갖추고 서방 시장에 더 많이 넘쳐나게 된다. 중국 국내적으로 수입이 위축돼 물가가 오르고, 소비는 더 위축되는 효과가 있다.

중국 지도부는 지난 4월 말 공산당 정치국 회의 뒤 은행의 지준율 및 금리를 낮추는 통화정책 완화를 계획하고 있다. 부동산이 침체되고, 국내소비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디플레이션 근처에서 머뭇거리는 경제상황에서 금리인하를 도모할 수밖에 없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향후 몇 주나 몇 달 내로 중국에서 금리인하를 예상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되면 자본유출은 악화하고, 위안화 약세가 불가피하다.

중국으로서는 이중, 삼중의 딜렘마에 처해있는 것이다. 현재,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65조 달러로 지난 2014년에 비해 20배나 증가했다. 중국은 환율관리로 이를 지키고 있으나, 한계에 도달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이 위안화 절하 압력을 용인한다면, 중국뿐 아니라 미국 등 서방 경제에도 큰 파장은 불가피하다. 위안화 약세가 중국 경제에 어떤 파장을 부를지는 예단이 힘들다.

중국 위안화 절하로 인한 중국 제품의 경쟁력 강화는 수출에 기대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를 더욱 곤경에 처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 또 중국의 과잉생산을 문제삼는 미국 등 서방의 강력한 대처로 인한 전례없는 무역전쟁이 벌어질 공산도 크다. 

이 모든 우려는 사실 중국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사태의 근원은 미국의 인플레이션이고, 그에 따른 고금리이다. 미국의 인플레가 잡히고 금리가 내려가야 모든 문제가 순리대로 풀린다. 하지만 당분간 그렇게 되기 힘든 상황이어서, 달러 강세의 폭풍은 세계경제를 다시 또다른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정의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