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물산이 행동주의펀드의 주주환원 요구에 긴장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늘어난 데다 국민연금 등 주요주주들의 지지가 어디로 향할지 미지수라 주주총회 의결을 마무리할 때까지 삼성물산이 긴장을 풀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5일 서울 강동구 글로벌엔지니어링센터에서 개최되는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울프팩(늑대 무리)’ 전술로 공세에 나선 행동주의펀드와 삼성물산 사이의 치열한 표대결이 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계 시티오브런던 인베스트먼트, 미국계 화이트박스 어드바이저스, 한국계 안다자산운용 등 행동주의펀드 5곳은 2월2일 삼성물산에게 보통주 1주당 4500원, 우선주 1주당 4550원의 현금배당과 5천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요구하는 주주 서한을 보냈다.
▲ 삼성물산이 15일 서울 강동구 글로벌엔지니어링센터에서 개최되는 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펀드의 맹공에 시달리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물산 이사회가 의결한 배당안보다 주당배당금이 2천 원 높은 수준으로 전체 주주환원 규모는 1조2364억 원에 이른다. 삼성물산은 이와 관련해 "경영상 부담이 되는 규모"라며 "미래 성장동력 확보 및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재원 확보가 어렵게 된다"고 주주들에게 반대의결권을 행사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애초 주주제안 요구는 찻잔 속에 태풍으로 끝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행동주의펀드 연합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을 전부 합쳐도 1.46%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반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삼성물산의 지분은 33.63%에 이른다. 우호 지분으로 분류되는 KCC 지분9.17%를 합치면 약 43%이고 국민연금공단 지분 7.01%, 우리사주조합 지분 0.41%까지 더해지면 과반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가 고객들에게 행동주의펀드 연합의 주주제안을 받아들일 것을 권고한 것을 시작으로 분위기가 달라지는 모양새다.
ISS는 2월27일 고객들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삼성물산의 강력한 대차대조표, 실적 개선, 현금흐름 창출을 고려할 때 배당금 인상과 자기주식 취득을 지지하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글래스루이스 또한 3월3일 고객들에게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펀드 연합의 주주제안에 찬성표를 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권고했다.
삼성물산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주요 공적 연기금들도 행동주의펀드 연합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세계 최대 연기금인 노르웨이 국부펀드(NBIM)는 13일 의결권 공시를 통해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현금배당, 자사주 매입 등 행동주의펀드 연합의 주주제안에 찬성했다.
NBIM은 주주제안에 찬성하는 근거로 ‘효과적인 이사회 및 주주 보호와 관련한 우려’를 들었다. NBIM은 삼성물산 주식의 0.8%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인포맥스 등 보도에 따르면 이외에도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CalSTRS) 등 글로벌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행동주의 펀드 연합의 주주제안에 찬성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14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밸류업 기관투자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물산 주주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늘어난 부분은 삼성물산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대목 가운데 하나다.
2024년 3월13일 기준으로 삼성물산의 외국인 투자자 지분율은 23.75%에 이른다. 이번 주주총회 의결권을 가진 2023년 12월 기준으로 삼으면 20.08%로 1년 전보다 3.63%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개별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을 세부적으로 살필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일반적으로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의 권고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해외 주요 연기금이 행동주의펀드의 주주제안에 찬성 의견을 내놓은 영향으로 외국인 투자자, 소액주주들의 이탈이 이어진다면 삼성물산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공적 연기금인 국민연금기금을 관리하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어느쪽을 지지할지가 관심사로 떠오른다. 최근 정부가 기업에 주주가치 제고를 요구하고 있는 점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14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관련 기관투자자 간담회를 열고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원칙)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는 국민연금공단도 참석했다.
개정안에는 기관투자자가 투자 대상 회사가 기업가치를 중장기적으로 향상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시행·소통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이 새롭게 명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은 투자하는 기업의 밸류업 지원방안 참여 여부를 확인하거나 참여하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정책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주주환원 노력을 촉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정부의 기업 밸류업 정책을 위해 기관투자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장 기업의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투자자가 제대로 평가해 투자를 결정하고 주주권 행사에 반영할 때 상장기업들이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안의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영국계 행동주의펀드 팰리서캐피탈은 4일 삼성물산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를 예고하며 국민연금공단에 삼성물산이 주주환원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역할을 촉구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팰리서캐피탈은 "국민연금이 정부 밸류업 프로그램 성공에 요구되는 제반 조건과 기업들의 책임성을 담보하기 위해 수행하려는 역할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면 상당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여전히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에 등을 돌리고 행동주의펀드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국민연금공단은 과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ISS 등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의 합병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찬성표를 던져 회사 편에 선 적이 있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