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주총대전] 고려아연-영풍 경영권 다툼 표대결, 국민연금 손에 승부 달려

▲ 고려아연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19일 고려아연 주총에서 영풍과 고려아연 가운데 어느쪽 손을 들어줄지 업계의 시선이 쏠린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영풍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기점이 될 오는 19일 고려아연 주주총회를 10여 일 앞두고 영풍 장형진 고문 일가 측과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일가 측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양측이 비슷한 우호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영풍에 이은 2대 주주 국민연금공단의 선택에 시선이 쏠린다.
 
7일 비철금속업계에 따르면 최근 고려아연과 영풍은 각각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업무 위탁 법인을 선정하고 일일이 개인주주를 찾아 설득 작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치열한 장외 설전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달 19일 3월 주총 안건으로 1주당 5천 원의 결산 배당안과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외국의 합작법인'뿐 아니라 국내 법인에게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관 제17조(신주인수권) 및 제17조의 2(일반공모증자 등) 조항 변경안 등을 제안했다.

이에 영풍은 지난달 21일 입장문을 통해 주당 1만 원으로의 결산 배당 확대 요구 및 정관 변경안에 관한 반대 의사를 밝히며 사상 첫 주총 표대결을 예고했다.

주총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고려아연의 최 회장 일가 측과 영풍의 장 고문 일가 측 사이에 날마다 반박과 재반박이 오가며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정관 변경안을 놓고 "사실상 무제한적 범위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허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한다. 이는 기존 주주들의 보유 주식 가치를 희석해 전체 주주 권익을 침해할 수 있고, 현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라는 사적 편익 도모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아연은 정관 변경안이 현행 표준정관에 따라 상법과 자본시장법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개정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 영풍 역시 2019년 동일한 목적으로 기존 정관의 신주인수권 관련 규정을 개정한 점을 들며 당시 고려아연은 큰 반대 없이 동의한 반면 영풍은 개정 관련 반대를 넘어 고려아연 경영진까지 고려하며 경영간섭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영풍은 자사 정관에는 애초부터 "외국의 합작법인에 한해서"만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없었기에 영풍이 변경한 정관과 고려아연이 변경하려는 정관 규정의 핵심이 전혀 다르다고 즉각 반박했다.

배당금을 놓고 영풍은 고려아연이 자금 여력이 충분한데도 이번 결산 배당을 주당 5천 원으로 결정하면서 작년 주당 현금 배당금이 총 1만5천 원으로 전년보다 5천 원 줄어든 점을 지적했다. 

고려아연은 배당금과 자사주 소각금액을 고려한 주주환원율은 76.3%로 높은 수준으로 영풍은 96%에 달하는 과도한 주주환원율을 요구하고 있다고 맞섰다. 이익금을 모두 주주환원에 쓰면 장기적 관점에서 주주권익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또 영풍은 4조 원에 가까운 잉여금을 보유하고도 2022년 연간 배당금은 170억 원 대, 배당 성향은 고작 5%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각각 사실에 기반해 주주가치 훼손 여부를 중심에 놓고 각각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업계에선 물밑에 있던 경영권 분쟁이 이번 표대결을 통해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고려아연이 속한 영풍그룹은 창업주인 고 장병희 명예회장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할아버지 고 최기호 명예회장이 함께 세웠다.

3세 경영에 들어선 고려아연은 최 회장이 경영을 총괄하고 있으나, 고려아연의 최대 주주는 장병희 명예회장의 아들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이 이끄는 영풍이다. 

우호지분을 포함한 지분율에서도 장 고문 측이 앞서왔다. 하지만 최 회장 측이 2022년부터 한화, LG화학 등과 자사주 맞교환 방식으로, 현대자동차 그룹과는 해외 법인을 통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우군을 확보하며 지분율을 끌어올렸다. 업계에선 현재 최 회장 측 지분율이 33%로 장 고문 측 지분율(32%)을 소폭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장 고문 측은 이 과정을 놓고 고려아연이 기존 정관 아래서도 사실상 국내 기업이나 다름없는 외국 합작법인에 대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전체 주식의 약 10%에 달하는 신주 발행과 자사주 매각, 상호지분투자 등으로 약 16% 상당의 지분을 외부에 넘겨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를 훼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이번 주총 표대결은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쥘 것으로 관측된다.

국민연금은 최대주주 영풍(24.81%)에 이은 고려아연의 2대 주주로 2월22일 기준 고려아연 지분 7.69%를 들고 있다.

국민연금은 2021년과 2015년, 2022년 과다 겸직을 이유로 장형진 고문의 고려아연 이사 연임에 반대한 이력이 있어, 주총에서 고려아연 쪽 손을 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투자 관점에선 고려아연의 배당금 축소안이 통과되면 국민연금 입장에선 손해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은 단기 이익뿐 아니라 정관 변경에 따른 주주이익 훼손 여부와 배당의 장기적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영풍에 힘을 보탤 수도 있다는 관측 또한 제기된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