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도심 물난리 방지 사업도 유찰, 기술형입찰 낮은 공사비에 건설사 주저

▲ 기술형입잘의 낮은 공사비로 건설사들이 주저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기술형입찰에 건설사들이 참여하지 않아 무더기로 유찰되고 있다. 문제는 공사비다.

건설사들은 공사비 증액을 원하지만 발주처들은 금액 변경을 하지 않고 재공고에 나서고 있다. 장마철 물폭탄 사태를 계기로 주목받은 서울시 광화문·강남 대심도 빗물터널 공사도 유찰돼 사업 진행이 차질을 빚고 있다.

29일 조달청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유찰된 기술형입찰사업이 최근 재공고를 내고 시공사 선정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강남역 일대 대심도 빗물배수터널(추정금액 3934억 원)은 지난해 12월15일부터 한 달간 입찰을 진행했으나 사업자를 찾지 못해 16일 재공고를 냈다. 마감은 6월20일까지로 5개월의 시한을 뒀다.

이 외에도 도림천 일대 대심도 빗물배수터널(3570억 원),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2공구 건설공사(3170억 원) 등이 유찰로 재공고된 기술형입찰사업이다.

기술형입찰 유찰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조달청에 따르면 2020년 4건, 2021년 9건, 2022년 11건, 2023년 17건으로 집계됐다. 유찰비중(유찰/공고건수)는 같은 기간 16.7%, 50%, 64.7%, 60.7%로 공사비가 급등한 2022년 이후 크게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건설업계 등에서 공사비 증액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발주처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행정안전부는 최근 공공공사 사업발주 때 적정예산을 확보해달라는 공지를 지방자치단체에 보냈다. 

지자체가 발주하는 공공계약은 지방재정법 등에 따라 합리적 기준으로 적정한 예산을 확보한 뒤 사업을 발주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아 유찰이 지속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사업이 늦춰져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이 늦어진다면 국민 불편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최소 1개 업체라도 참여했다면 수의계약으로 전환할 수 있는데 무응찰이란 점은 사업계획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라는 해석도 나온다.

해마다 물난리를 겪었던 강남 대심도 빗물배수터널 공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피해를 재발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강남역 일대는 지형상 언덕과 언덕 사이 저지대가 위치해 침수피해가 크다.
 
장마철 도심 물난리 방지 사업도 유찰, 기술형입찰 낮은 공사비에 건설사 주저

▲ 서울시 대심도 빗물배수터널 위치도. <서울시>

2013년 7월22일 강남역 일대가 완전히 잠기는 사건이 발생하자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은 2015년까지 (강남 일대) 침수현상을 완전히 해결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폭우가 올 때마다 강남 지역은 침수피해를 피하지 못했다. 2022년 8월9일에는 동작구, 서초구, 강남구 일대에 시간당 141mm의 115년 만의 기록적 폭우가 쏟아지자 강남역 일대 및 2호선, 신분당선 역이 모두 침수되기도 했다. 

이어 지난해 7월에도 강남 일대 집중호우에 주민들이 역류 침수 피해를 입었다. 

강남역 일대 침수는 물을 흘려 보낼 배수구가 적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강남 일대가 발달하면서 통신선·전력선 등 인프라 설비가 지하에 빽빽하게 들어차 물을 보낼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양천구 신월동 빗물터널과 같은 대심도 빗물배수터널을 만들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서울시는 2010년 9월 신월동 일대 주택 수천 채가 침수되자 대책으로 빗물터널 건립을 추진했다.

신월동 빗물터널은 1392억 원을 투입한 7년 공사 끝에 2020년 5월 준공됐다. 신월동에서 목동까지 4.7㎞ 구간 지하 40m에 지름 10m의 배수관 6개를 연결해 만들어졌다. 시간당 100㎜ 폭우에 대비해 설계됐으며, 최대 32만 톤의 빗물을 저장할 수 있다.

신월동 빗물터널 준공 이후 2022년 8월 기록적 폭우가 발생했지만 신월동 일대는 주택·상가·도로 침수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대심도 빗물 배수터널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침수 취약지역을 대상으로 빗물펌프장 등 빗물 처리시설 8곳을 확충하겠다”며 강조했다.

다만 대심도 빗물터널 등을 포함한 공사비 문제 해결 방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오 시장은 지난 17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공사비로는 더 이상 수익이 나지 않아 (건설사) 일을 못하겠다는 데 뾰족한 수가 없다”며 “기획재정부에서 국책 대형 토목공사 유찰이나 지연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공공사업에 관한 접근 방식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장마철 도심 물난리 방지 사업도 유찰, 기술형입찰 낮은 공사비에 건설사 주저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2년 8월23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빗물펌프장 내 대도심 빗물터널을 방문해 유수지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기술형입찰 입찰이 공사비 문제로 유찰되는 것은 서울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양 킨텍스 제3전시장 건립공사(추정금액 6169억 원), 충남미술관 및 공영주차장 건립공사(866억 원), 부산 진해신항 남측 방파호안 1단계 2공구(3516억 원) 등이 새해 첫 기술형입찰 주자로 나왔지만 시공사를 찾지 못했다. 

건설업계는 이들 기술형입찰의 공사비가 자체 견적 결과에 20~30% 정도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조달청은 심각성을 느끼고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건설회관에서 유찰사태 극복을 위해 공식 간담회를 열었다. 

강성민 조달청 시설사업국장은 “지난해 6월 1차 대응책을 내놨지만 사태가 진정되지 않아 중점적으로 업계 의견을 수렴해 2차 대응방안 마련을 준비하려 한다”고 말했다.

조달청은 지난해 6월 기술형입찰 유찰 사태와 관련해 △공고 전 물가변동 지수 증가율이 20% 이상인 경우 원칙적으로 수요기관에 공사비 재검토 요청 △무응찰사업 공사비 적정성 심의를 거쳐 수요기관에 총사업비 협의 진행 △단일 응찰로 2회 이상 유찰된 사업 수의계약 전환 등의 대응책을 마련했다.

다만 지자체가 발주하는 사업에서 조달청이 권고·요청하는 수준으로는 공사비 증액 조정이 사실상 어렵다는 데에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조기 집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공사비가 현실화하지 못한다면 주택경기 극복을 위해 공공공사 입찰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건설사도 참여가 어렵다”고 말했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