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 ARM 상장 절호의 찬스, 엔비디아 AI 반도체 '돌풍' 올라탄다

▲ 르네 하스 ARM CEO가 인공지능 반도체 설계 기술의 중요성과 잠재력을 강조하며 ARM을 '인공지능 반도체 전문기업'으로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일본 소프트뱅크가 미국증시에 반도체 설계 자회사 ARM 상장을 추진하며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엔비디아 주가 급등이 미국 증시 전반에 인공지능(AI) 열풍을 주도하며 반도체주를 비롯한 여러 기술주 상승을 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1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ARM은 하반기에 기업공개(IPO)를 성공적으로 이뤄내겠다는 목표를 두고 ‘인공지능 반도체 전문기업’으로 이미지를 바꿔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르네 하스 ARM CEO는 대만에서 열린 IT전시회 컴퓨텍스에 참가해 “ARM의 기술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수많은 인공지능의 구현을 가능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 제프리스는 이를 두고 소프트뱅크가 ARM을 주력사업인 모바일 반도체가 아닌 인공지능 분야의 핵심 플레이어로 돋보이도록 하기 위한 전략을 쓰고 있다고 해석했다.

ARM은 삼성전자와 애플, 퀄컴과 미디어텍 등 전 세계 반도체 설계기업이 개발하는 모바일 프로세서의 핵심 설계기반(아키텍쳐)를 사실상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기업이다.

그러나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 수요가 둔화하고 관련 기술도 상향평준화돼 발전에 한계를 맞으면서 모바일 프로세서용 아키텍쳐를 성장 동력으로 삼기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ARM이 미국증시에 상장하며 기업가치를 유리하게 인정받으려면 중장기 성장성을 투자자들에 설득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모바일이 아닌 인공지능 반도체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미지 변신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ARM의 설계기반을 활용하는 인공지능 반도체는 슈퍼컴퓨터와 데이터서버, 통신장비 등 인프라는 물론 자율주행차와 로봇, 사물인터넷 기기와 음성인식 스피커 등 다양한 영역에 활용된다.

인공지능 기술의 적용 분야가 넓어질수록 ARM이 기대할 수 있는 수혜폭도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그러나 ARM이 인공지능 기술을 최근 더 집중적으로 강조하는 이유는 엔비디아의 가파른 주가 상승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엔비디아가 인공지능 반도체 수요 증가에 최대 수혜주로 지목돼 가파른 주가 상승세를 이어온 만큼 ARM도 이러한 흐름에 편승하는 일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증시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최근 5거래일 동안 25%, 올해 초와 비교하면 164%에 이르는 상승폭을 나타냈다.

이러한 주가 상승은 AMD와 마이크론, 인텔과 SK하이닉스 등 인공지능 시대에 수혜가 예상되는 다른 반도체기업 주가도 끌어올리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ARM은 인공지능 반도체의 설계기반을 제공하는 핵심 기업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이러한 흐름을 타고 기업공개 추진 과정에서 회사의 가치를 높게 인정받을 당위성을 갖추고 있다.
 
소프트뱅크 ARM 상장 절호의 찬스, 엔비디아 AI 반도체 '돌풍' 올라탄다

▲ ARM의 인공지능 반도체 홍보용 이미지.

더구나 ARM은 엔비디아에 인수가 추진되었던 기업이기 때문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엔비디아에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을 모두 인정받았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2020년에 소프트뱅크에서 ARM을 400억 달러(약 52조8천억 원)에 인수하는 데 합의했지만 세계 경쟁당국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인수가 무산되고 말았다.

소프트뱅크는 엔비디아에 ARM을 매각하려던 계획이 실패한 뒤부터 상장을 목표로 두고 관련된 작업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ARM의 기업가치를 엔비디아의 인수가격보다 높게 인정받겠다는 소프트뱅크의 의지와 달리 지난해부터 미국 등 세계 증시가 급락하면서 상장에 불리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경제 불확실성 확대로 주식시장에 자금 유입이 크게 줄어들고 특히 반도체주를 비롯한 기술주는 장기간 약세를 보이며 ARM이 성공적으로 상장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했다.

이런 상황에서 챗GPT가 촉발한 인공지능 열풍이 엔비디아 등 반도체기업 주가를 크게 끌어올리는 예기치 못한 현상이 나타나며 ARM에 중요한 기회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ARM이 유리한 조건으로 기업공개에 성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한다면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큰 폭의 순손실을 낸 데 따른 재무구조 악화를 일부 만회할 수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시장 전문가들은 ARM의 적정 기업가치를 최대 700억 달러까지 바라보고 있다. 엔비디아에 매각을 추진하던 가격보다 75% 높은 수준이다.

결국 소프트뱅크가 엔비디아에 ARM을 매각하려다 무산된 일이 ‘전화위복’으로 남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증권전문지 배런스는 “ARM은 다른 반도체기업과 완전히 차별화된 사업구조를 갖추고 있는 기업”이라며 “적정 기업가치를 측정하는 일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바라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