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테슬라의 1분기 수익성이 크게 후퇴했음에도 전기차 가격 인하 정책을 지속할 뜻을 시사했다. 현대차그룹이 내연기관차에서 갖춘 강한 이익체력은 테슬라발 전기차 치킨게임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테슬라의 1분기 수익성이 크게 후퇴했음에도 전기차 가격 인하 정책을 지속할 뜻을 시사했는데 현대차그룹이 갖춘 강한 이익체력은 테슬라발 치킨게임에 대응할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25일 현대차는 올해 1분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37조7787억 원, 영업이익 3조5927억 원을 냈다고 밝혔다. 2022년 1분기와 비교해 매출은 24.7%, 영업이익은 86.3% 늘었다. 영업이익은 역대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이다.
현대차는 "판매량 확대, 제네시스와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중심의 판매 믹스 개선, 환율 효과로 매출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기아 역시 올해 1분기 수익성을 크게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정보회사 FN가이드에 따르면 기아는 1분기 영업이익 2조3173억 원을 낸 것으로 추산됐다. 1년 전보다 44.3% 증가하는 것이다.
현대차가 호실적의 원인으로 꼽은 주요 요인들은 모두 미국 시장에서 가장 도드라진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는 글로벌 권역(한국 제외) 가운데 가장 많은 차를 판매하는 미국 시장에서 가장 높은 판매 증가세를 보였다. 1분기 미국에서 25만8천 대를 팔아 1년 전보다 24.1% 늘었다. 이는 유럽의 판매 증가율 10.5%(15만5천 대)의 2배를 넘어선다.
고부가가치 차종인 현대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와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판매도 미국에서 호조를 보이고 있다.
제네시스는 올해 1분기 미국에서 1만3644대가 팔려 전년 동기보다 판매량이 16.4% 늘었다. 제네시스가 지난해 미국에서 5만6410대가 팔리며 사상 처음 5만 대 판매를 넘어선 점을 고려하면 호조세를 이어가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수익성이 높은 SUV 라인업을 지속해서 확대해왔는데 SUV 판매 비중은 글로벌 자동차 판매 시장 가운데 미국이 가장 높다.
현대차의 1분기 미국 시장에서 SUV 판매 비중은 75.1%를 기록했다. 기아도 1분기 미국 판매량 가운데 SUV가 66.9%를 차지해 70% 수준에 육박했다.
2015년까지만 해도 현대차그룹이 미국에 판매하는 SUV는 투싼, 싼타페, 스포티지, 쏘울, 쏘렌토 5차종뿐이었지만 현재는 모두 18종으로 늘었다. 이에 2015년 36%였던 현대차그룹의 미국시장 SUV 판매 비중은 2019년 절반을 넘긴 뒤 2021년 62.6%, 지난해 69.9%까지 올랐다.
현대차그룹이 미국을 중심으로 크게 키운 이익체력은 IRA 시행으로 전기차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테슬라가 주도하는 전기차 가격 경쟁에 대응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은 1분기 미국에서 전기차 1만4703대를 팔았는데 이는 2022년 1분기보다 판매량이 6.5% 줄어든 것이다.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최대 7500달러(약 990만 원)의 보조금(세액공제)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지난해 8월 시행되면서 대부분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들이 모두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점을 고려하면 선방한 것으로 여겨진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시장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전기차 판매 순위 3위 자리를 지켰다. 전기차 판매 톱5에 오른 1위 테슬라, 2위 GM, 4위 폭스바겐, 5위 포드는 모두 현지에 전기차 생산체제를 갖추고 보조금 혜택을 받고 있다.
최근 미국 정부는 자동차 자체의 북미 조립 요건뿐 아니라 배터리 부품 및 핵심 광물 제조·가공 요건을 추가하는 세부지침을 발표하면서 현대차그룹이 빠진 전기차 보조금 지급대상 전기차 16종과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6종 등 등 모두 22종을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으로 예정됐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전용공장 준공 시점을 내년 말로 앞당기는데 그룹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배터리 관련 요건까지 모두 갖춰 미국에서 본격 전기차 보조금 수혜를 받을 수 있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서강현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 부사장은 이날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현대차가 생산하는 모든 차종이 IRA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때는 2026년 정도로 예상한다"며 "그 이전까지 단계적으로 보조금 혜택이 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테슬라는 최근 수익성을 내주고라도 가격 인하를 지속하겠다는 태도를 보여 미국에서 보조금 없이 전기차 판매 경쟁을 벌여야 하는 현대차그룹은 테슬라발 치킨게임에도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테슬라는 올해 초부터 전기차 판매 부진에 따른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해 6차례나 가격을 내렸다. 이에 올해 1분기 테슬라는 현대차와 반대로 수익성이 크게 후퇴한 1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공격적 가격 인하의 여파로 올해 1분기 테슬라는 매출 233억2900만 달러를 올려 2022년 1분기보다 24% 증가했지만, 순이익은 25억1300만 달러로 같은 기간 24% 줄었다. 이에 영업이익률 역시 같은 기간 19.2%에서 11.4%로 8%포인트가량 크게 떨어졌다.
그럼에도 머스크 테슬라 CEO는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낮은 마진으로 차 판매량을 늘리고 (가격)자율성을 갖춘 미래에 그 마진을 거두는 것이 낫다"며 "경제 불확실성 여전하지만 테슬라는 차량 주문이 생산량을 넘어선다"고 말했다.
기아의 1분기 전기차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30%가량 줄었지만 현대차의 올해 1분기 미국 전기차 판매실적을 따로보면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지난해 1분기보다 판매량을 25%나 늘렸다.
현대차 관계자는 "아이오닉5와 아이오닉6가 세계올해의차(WCOTY)를 2년 연속 석권하는 등 우수한 경쟁력을 갖췄다"며 "가격 인하 경쟁에 노출돼 있음에도 미국 전기차 판매가 줄어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만 보면 우수한 상품성으로 확보한 단단한 수요를 바탕으로 미국 시장에서 IRA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의 전기차가 1천만 원 가까운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테슬라가 추가적 가격 인하에 나선다면 현대차그룹을 향한 전기차 수요가 장기간 유지되기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IRA에 따른 보조금 제외 적용을 받지 않는 리스 등 상업용 판매비중을 기존 한자릿수에서 30% 이상으로 크게 늘려 최대한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늘리는 단기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미 올해 상업용 판매 비중이 35%를 넘어섰다.
다만 여전히 현대차그룹 전기차의 60% 이상은 보조금 없이 치열한 미국 전기차 판매 전선에 노출된 상황이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미국 전기차 점유율을 반드시 끌어올려야 할 때는 직접 차 값을 깎아주는 '최후의 수단'도 동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도 역대 최대치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올해 들어서도 현대차그룹은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수익성을 높이고 있어 미국 전기차 공장이 건설되는 1년 반가량의 시간 동안 현지 전기차 점유율을 지키는데 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성국 기아 IR담당 상무는 1월 지난해 4분기 콘퍼런스콜에서 테슬라 가격 정책에 관한 대응 방안을 묻는 질문에 "탄력적 인센티브(판매장려금) 전략을 펼쳐 북미시장 전기차 점유율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인센티브를 활용해 전기차 가격 할인에 나설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서강현 부사장도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미국 전기차 경쟁에서 밀리는 상황이 펼쳐진다면 전체 판매 중 전기차에 해당하는 부분은 인센티브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