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는 이재용 바이오 투자 속내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진출 분기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미국 방문에서 바이오사업에 대한 투자방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2022년 10월 이 회장(오른쪽)이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 사장과 함께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비즈니스포스트] 삼성의 주력 반도체사업과 ‘제2의 반도체’ 바이오사업 모두 미국을 떼놓고서는 미래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분야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미국 방문이 반도체업계뿐 아니라 바이오업계의 시선도 끌어모으고 있는 까닭이다. 

삼성 바이오사업의 중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천 송도를 근거지 삼아 국내 투자에 집중해왔다. 미국에는 연구개발과 일감 수주를 위한 지점만을 두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급변하는 정책환경으로 인해 이 회장이 이번 방미를 계기로 현지에 대한 바이오 투자 보따리를 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4일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에 따르면 이 회장을 포함한 미국 경제사절단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에 동행해 30일까지 현지 일정을 소화한다.

경제사절단에는 다양한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도 참여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따로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그룹 수장인 이 회장이 삼성의 반도체사업과 바이오사업을 아우르는 논의에 나설 것으로 여겨진다. 

시장에서는 이 회장이 새로운 투자 로드맵을 발표할지에 관심이 크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미국 진출이 가시화할 가능성을 놓고 다양한 추측이 오가고 있다.

이 회장체제 삼성그룹은 바이오사업을 반도체에 이은 새로운 먹거리로 키우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3조2천억 원 규모 유상증자를 진행했고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가 여기에 합계 2조 원가량을 투입했다. 

이 막대한 지원을 기반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 개발기업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파트너사 바이오젠으로부터 완전히 인수하는 한편 대규모 생산시설 증설에 나섰다. 작년 10월 송도 4공장을 부분가동한 데 이어 최근에는 5~8공장을 포함한 ‘제2 바이오캠퍼스’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5공장 건설 예산만 해도 2조 원에 이른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국내 투자만으로는 글로벌 위탁개발생산(CDMO)사업 경쟁에서 승부하기 충분치 않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이 바이오 자급 기조를 다지며 자체 생산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미국은 세계 최대 의약품시장이자 CDMO기업들의 주요 고객인 글로벌 제약바이오기업이 밀집한 곳이다. 하지만 의약품 생산의 상당 부분은 중국이나 인도 등 해외 국가에 맡기고 있다. 이런 상황이 경제 성장은 물론 국가 안보에도 좋지 않다는 판단이 지난해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제조 이니셔티브’를 낳았다. 이 정책은 ‘미국에서 개발된 모든 것을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미국 생산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의 바이오 자급 정책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해외 기업들에 당장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원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다.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제조 이니셔티브의 전체 투자는 20억 달러 수준에 그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 하나를 올리는 데 드는 금액보다 조금 많은 수준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 정부가 바이오를 비롯한 첨단산업의 내재화를 정책방향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주요 경쟁 국가로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행보로 단기간의 일회성 정책으로 끝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에 거점을 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쟁 기업들이 지속적인 정부 지원에 힘입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이다. 장차 미국 고객사를 상대로 한 CDMO사업 수주에 미국 생산시설 보유 여부가 관계될 수도 있다.

삼성그룹을 지휘하는 이 회장은 수 년 앞을 가늠해 투자전략을 세워야 하는 만큼 미국의 정책 변수를 고려한 바이오 사업계획을 이미 수립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앞서 해외 매체와 인터뷰에서 미국 등 해외 지역을 대상으로 한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1월 보고서에서 “미국 행정명령의 기조는 어떤 정당이 의회와 행정부에 대한 집권을 강화하는가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자국 중심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고 미국시장의 규모 및 중요성을 감안할 때 국내 기업들이 미국의 바이오산업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보인다”며 “세계적 CDMO기업 생산시설이 유럽·미국에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삼성바이오로직스도 해외 생산거점 확보를 위한 플랜을 가동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 회장이 구체적인 바이오 투자계획을 내놓기 적합한 시기가 아니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투자를 지원하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업황 악화로 인해 실적 부진을 겪고 있어서다. 1분기 삼성전자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6천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약 96% 급감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송도에 제2 바이오캠퍼스를 조성하기 위해 장차 7조 원가량을 투입하기로 했는데 이와 동시에 미국에서도 투자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룹 차원에서 상당한 재무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