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 나스닥 상장 늦추면 ‘11조’ 빚더미, 매물로 나올 가능성 남았다

▲ 일본 소프트뱅크가 반도체기업 ARM 나스닥 상장을 적기에 이뤄내지 못하면 ARM의 지분을 넘겨야만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일본 소프트뱅크의 반도체 자회사 ARM이 9월까지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하지 못하면 거액의 빚더미를 떠안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ARM이 반도체 업황 악화로 기업가치를 유리하게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만큼 시장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20일 IT전문지 일렉트로닉스위클리 보도에 따르면 소프트뱅크가 ARM 지분을 담보로 여러 금융기관에서 85억 달러(약 11조3천억 원) 규모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렉트로닉스위클리가 입수한 계약조건에는 2022년 3월31일부터 18개월 안에 ARM이 상장하지 않으면 ARM이 소프트뱅크의 부채를 떠맡게 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즉 ARM의 기업공개가 올해 9월 이후로 늦춰지거나 무산되면 금융기관에 대규모 지분을 넘겨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는 셈이다.

소프트뱅크는 글로벌 증시 악화에 따른 투자 손실 확대로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한 상태다. 현재 소프트뱅크의 부채 규모는 1700억 달러(약 225조9천억 원)로 추산된다.

ARM의 상장을 통한 자금 확보는 소프트뱅크가 대규모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필수적 단계로 꼽힌다. 소프트뱅크는 ARM의 기업가치 목표를 약 600억 달러로 잡아두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반도체 업황이 장기간 침체되면서 증시 약세도 이어지고 있는 만큼 상장 시점에 기업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ARM의 가치는 300억~700억 달러 사이로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

손정의(마사요시 손) 회장은 올해 ARM의 미국 나스닥 상장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강조하며 이와 관련된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9월까지 유리한 조건으로 상장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진다면 금융기관에 ARM의 지분을 넘기는 등 대안을 검토하게 될 수밖에 없다.

소프트뱅크는 2021년까지 엔비디아에 ARM을 매각하는 계획을 추진해 왔지만 세계 각국 경쟁당국의 독점금지 규제에 부딪혀 무산됐다. 이후 ARM을 매각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상장 목표를 뚜렷하게 앞세웠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반도체 업황 및 증시 침체로 부정적 변수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ARM 매각을 다시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고려할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든다.

ARM의 재매각 추진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해까지 전 세계의 여러 대형 반도체기업이 관심을 보여 왔다.

퀄컴이 다른 대형 반도체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ARM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SK그룹도 SK하이닉스 등 계열사를 통해 인수 참여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논의해 왔다.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지난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ARM에 공동 투자 가능성을 언급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힘을 얻었다.
 
ARM 나스닥 상장 늦추면 ‘11조’ 빚더미, 매물로 나올 가능성 남았다

▲ ARM의 반도체 설계기술 안내 이미지.

소프트뱅크가 부채 상환을 시급한 과제로 안게 된 만큼 9월까지 상장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ARM 지분을 다른 반도체기업에 매각하는 쪽으로 대안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ARM은 삼성전자와 애플, 퀄컴과 미디어텍 등 기업의 모바일 프로세서 설계에 활용되는 핵심 기술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텔과 파운드리 사업에서 공식적으로 협력을 발표하며 입지를 더 키웠고 인공지능 반도체 등 신사업 분야에서도 기술 발전에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만약 ARM이 장기간 자금난에 빠져 연구개발 투자 여력도 낮아진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전 세계 시스템반도체기업에 모두 악영향을 미치게 될 수 있다.

신기술 발전 속도가 늦어지면 시스템반도체 시장의 성장 자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주요 반도체 설계업체들이 모두 새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고전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로벌 주요 반도체기업이 ARM 지분 인수 등 방식으로 자금 지원을 검토할 만한 이유도 충분한 셈이다.

엔비디아가 ARM 인수합병에 실패한 사례를 고려하면 다수의 반도체기업이 공동으로 지분을 매수하는 방식의 인수가 진행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손정의 회장과 오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이재용 회장이 소프트뱅크의 조력자 역할로 나서 삼성전자의 자금 지원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전망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ARM이 상장하기 전 소규모 지분을 매수해 소프트뱅크의 자금난을 일부 해소하고 기업공개 흥행에도 기여하는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소프트뱅크가 최근 중국 알리바바그룹 지분을 대부분 매각해 거액의 현금을 확보한 만큼 ARM 상장을 계속 추진하는 동시에 부채를 일부 상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고개를 든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