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규제, 삼성전자·SK하이닉스 중국 투자에 영향 '제한적' 분석

▲ 미국 정부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우시에 위치한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법인.

[비즈니스포스트] 미국이 중국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반도체 산업 규제가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에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내 시설 투자나 고객사 확보 등에 제약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미 중국에 첨단 반도체 생산 투자를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있던 만큼 미국 규제에 따른 영향은 제한적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4일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한국과 대만, 일본 등 국가에서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와 관련해 부정적인 여론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바이든 정부가 미국 기업의 반도체 및 관련 장비 수출을 규제한 데 이어 미국의 주요 동맹국 소속 기업도 중국과 거래를 제한하도록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요 대상에 놓였다. 미국 정부는 한국 반도체기업이 중국에 사실상 첨단 생산설비 투자를 중단하도록 하는 규제를 시행한 뒤 1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했다.

반도체와 국제무역 전문가인 크리스 밀러 미국 터프츠대 교수는 닛케이아시아에 논평을 내고 “미국의 수출 규제가 강력한 반발을 낳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유력했다”며 “특히 한국과 대만에서 여론이 악화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 TSMC가 모두 중국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미국 규제로 투자가 위축되면 사업 경쟁력에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러 교수는 미국 수출규제 시행 뒤 6개월이 지난 지금 바이든 정부의 전략이 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규제에 영향을 받는 글로벌 반도체기업이 이와 관련해 우려하고 있지만 아직 사업 측면에서 심각한 타격을 받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밀러 교수는 TSMC가 중국에 수출할 수 없게 된 고성능 인공지능 반도체가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그리고 중국 파운드리업체인 SMIC가 미국 규제에 훨씬 큰 영향을 받게 되면서 TSMC가 고객사 주문을 빼앗아 오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미국의 수출 규제가 반도체사업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지만 이는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밀러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갈등이 5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한국 반도체기업은 이미 중국에 투자 확대를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며 “중국을 향한 한국 내 여론이 크게 악화한 것도 원인”이라고 바라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미 중국 내 반도체 투자를 점차 축소하는 수순에 들어갔던 만큼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가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투자 제한에는 유예기간을 부여한 점도 한국 반도체기업을 향한 우호적 태도를 보여주는 근거로 꼽혔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규제로 벌어질 큰 리스크를 피하면서 점진적으로 중국에 반도체 생산 의존을 낮추는 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밀러 교수는 중국이 미국 정부에 맞서 보복조치를 시행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바라봤다.

미국 기업의 중국 내 사업을 제한하는 등 조치는 결국 중국에 더 큰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글로벌 기업의 중국 이탈을 오히려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밀러 교수는 “미국의 주요 동맹국뿐 아니라 중국도 결국은 미국 정부의 전략을 받아들이는 일이 가장 현명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