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와 백악관이 기후위기 해법으로 주목하는 '지구공학' 무엇?

▲ 인위적으로 두꺼운 구름을 만드는 등 지구공학(Geoengineering)을 통해 지구에 들어오는 태양열 에너지를 줄임으로서 지구온난화에 대응하자는 주장이 조금씩 힘을 받고 있다. 사진은 지구공학의 기본 개요를 설명한 그림.  

[비즈니스포스트] “현재 시각 2014년 7월1일 오전 6시. 환경 단체와 개발도상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구온난화 대책에 고심하던 세계 정상은 오늘 79개국 대기권 상층에 CW-7을 살포합니다. 과학계는 인공 냉각물질인 CW-7 살포에 성공하면 효율적인 기온 관리가 가능해 지구온난화에 혁신적 해결책이 마련된다고 확신합니다.”

국내에서 2013년 개봉한 영화 ‘설국열차’의 도입부다.

영화처럼 지구에 인위적, 공학적 조작을 가해 기후를 조정해 보려는 기술적 연구를 지구공학(Geoengineering)이라고 부른다.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이 부각되면서 대응책으로 기후공학의 연구 성과를 실제로 적용하려는 시도가 점차 힘을 받고 있다.

27일 주요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미국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 Office of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는 ‘기후개입(climate interventions)’ 연구를 위한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백악관이 세운 지구공학 연구계획은 성층권에 에어로졸을 뿌리는(spray) 등 방법으로 지구에 들어오는 태양의 에너지량을 조절하려는 ‘태양 지구공학(Solar Geoengineering)’ 분야에서 실제 기후개입 가능성 및 결과 예측을 비롯해 연구 지침, 기준 등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올해 3월에 서명한 ‘2022년 연방 예산법(Federal Appropriations Act)’에는 지구공학 연구계획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해당 예산법은 미국 연방의회의 승인까지 거쳤다.

미국 연방정부가 직접 지구공학 연구계획을 수립하는 등 관련 움직임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사회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기만 해서는 파리기후협약을 통해 설정된 이른바 ‘1.5도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데 따른 대응으로 읽힌다.

기후개입을 통해 인위적으로 지구의 온도를 낮출 수 있다는 주장과 실증 시도는 비교적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과학자들에게 결정적으로 지구공학적 아이디어를 제공해 준 사건은 1991년 6월 필리핀 루손섬의 피나투보 화산 폭발이다. 피나투보 화산 폭발은 위력이 화산폭발지수(VEI, Volcanic Explosivity Index) 6에 이르는 매우 강력한 폭발이었다.

화산폭발지수 등급은 0~8로 나눠지고 한 등급 오를 때마다 화산의 위력이 10배 커진다.

화산폭발지수 6 규모의 화산 폭발은 평균적으로 50~100년 주기로 나타난다. 화산폭발지수7 규모는 500~1천 년 주기로, VEI 8 규모는 5만 년 주기로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빌 게이츠와 백악관이 기후위기 해법으로 주목하는 '지구공학' 무엇?

▲ 필리핀 루손 섬 피나투보 산 정상의 칼데라 호수. 피나투보 산은 원래 보통의 산과 같은 봉우리였으나 1991년 6월 이후 여러 차례 이어진 화산 폭발의 결과 현재와 같은 같데라 호수가 생성됐다. 피나투보 산의 화산 폭발은 1991~1993년에 걸쳐 지구 전체의 평균 온도를 0.5~0.6도 낮춘 것으로 추정된다.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상공 35km까지 치솟으며 강하게 분출됐다. 인근 지표면을 수 미터 상승시킬 정도였다. 루손섬 일대는 화산재가 태양빛을 가린 탓에 36시간 동안 암흑이 이어졌다.

후속 연구를 통해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분출된 화산재 및 아황산 등 분출물의 영향으로 두꺼운 구름이 생성돼 지구 표면에 들어오는 태양빛을 2.5% 감소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결과적으로 피나투보 화산 폭발의 결과 1991~1993년 사이 지구의 평균온도는 0.5~0.6도 낮아진 것으로 추정됐다.

이후 지구온난화 해법으로 지구공학적 방법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나타났다.

‘오존층 파괴의 화학적 메커니즘 연구’로 1995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네덜란드의 파울 크뤼첸은 학술지 기고를 통해 지구 상층부 대기에 황 입자를 뿌릴 것을 제안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응용물리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키스는 거대한 풍선으로 탄산칼슘 미세입자를 뿌리는 ‘스코펙스(SCoPEx, 성층권통제섭동실험) 프로젝트’를 미국 국립해양대기관리청(NOAA)와 함께 추진하기도 했다. 탄산칼슘 미세입자는 빛을 반사하는 성질이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역시 그의 저서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성층권에 에어로졸 살포, 구름 표백 등 지구공학적 방법을 지구온난화의 해법으로 제시한 바 있다.

스웨덴에서는 2021년 6월 우주국이 운영하는 이스레인지우주센터를 통해 탄산칼슘을 실은 기구를 성층권에 보낸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환경단체와 지역주민의 반발 등으로 무산된 사례도 있다.

그밖에 우주에 거울을 부착한 인공위성 발사, 인공구름 생성, 식물성 플랑크톤 대량 증식, 해양에 인공용승 시설 설치 등 방안이 지구온난화 해결을 위한 지구공학적 방법으로 거론된다.

다만 아직까지는 지구공학의 연구 성과를 실제로 적용하는 데는 많은 과학자들이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보인다.

지구의 기후시스템이 대기, 해양 등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따른 결과물인 만큼 모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 주요 반대 논거다.

또한 나비의 날개짓이 지구 반대편의 태풍이 된다는 ‘나비효과’처럼 걷잡을 수 없는 예상 외 결과가 발생했을 때 다시 되돌리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 만큼 지구공학적 시도는 너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네덜란드 위터레흐트 대학의 글로벌 거버넌스 전문가인 프랭크 비어만은 25일(현지시각)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지구공학 연구자들을 향해 “사람들은 연구의 자유를 이야기하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의 집 뒷마당에 앉아 화학 폭탄을 개발할 자유는 없다”고 비판했다.

아직까지 과학자는 물론 대중의 대다수가 납득하는 지구공학 실험의 결론 역시 비극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불확실성을 향한 인간 본연의 불안감을 근거로 지구공학적 실험의 실패와 그에 따른 세계 종말을 세계관의 주요 설정으로 다루는 영화, 소설 등 콘텐츠가 대중에 더욱 익숙하기 때문이다.

설국열차의 도입부 이후 상황 역시 다음과 같다.

“CW-7의 대량살포 직후 거대한 한파가 세계를 덮쳤다. 새로운 빙하기,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멸종됐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