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국내 건설주 주가가 꿈틀대고 있다.

중동을 중심으로 한 해외사업 확대 기대감이 주가 상승의 원동력으로 꼽힌다.
 
건설주 '제2 중동붐' 기대감에 꿈틀, 해외수주로 10년 전 주가 되찾을까

▲ 건설주 주가가 해외사업 확대 기대감에 상승세를 타고 있다. 사진은 현대건설이 건설한 아부다비 합샨-5 가스공장. 


국내 주택사업 기대감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사업은 10년 넘게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 건설주 주가의 반등을 이끌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19일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KRX건설지수는 8월 들어 이날까지 8.70% 상승했다. KRX건설지수는 이 기간 한국거래소가 각 산업분야별로 산출하는 28개 KRX지수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KRX건설지수는 국내 주요 건설사를 모아놓은 지수로 현대건설, 삼성엔지니어링, GS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등이 포함돼 있다.

대형 건설사 개별종목의 주가 흐름을 봐도 상승세가 뚜렷하게 보인다.

8월 들어 이날까지 삼성엔지니어링 주가는 14.54%, 현대건설 주가는 9.25%, DL이앤씨 주가는 4.69%, GS건설 주가는 3.86%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는 1.68% 오르는 데 그쳤다.

최근 건설주 주가 상승은 해외사업 기대감이 이끄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건설주 주가는 11월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상회담이 추진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10일 크게 올랐다.

코스피지수가 0.90% 내렸음에도 현대건설 주가가 7.54% 뛴 것을 비롯해 삼성엔지니어링 3.74%, GS건설 2.75%, 대우건설 2.46% 등 대형 건설사 주가가 상승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현재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주도로 추진하고 있는 친환경 신도시 건설사업 ‘네옴시티’ 프로젝트에서 한국과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호재로 작용했다.

네옴 프로젝트는 사우디 북서쪽 타북(Tabouk)지역에 서울시보다 44배 큰 규모의 친환경 신도시를 짓는 사업으로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경제 중심을 첨단산업으로 바꾸기 위해 추진된다.

사업규모는 5천억 달러(약 650조 원) 수준으로 사업 규모가 큰 만큼 한국과 협력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면 국내 건설사의 해외사업 확대에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시장에서는 네옴 프로젝트를 필두로 중동 건설수주가 크게 늘며 ‘제2의 중동붐’이 일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나온다.

중동 산유국들은 유가 상승으로 인프라와 교통 등 대규모 공사를 발주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강경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 상승세에 힘입어 중동의 맏형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수지는 두 분기 연속 흑자를 보이고 있다”며 “나라 살림이 나아지면 미래발전을 위한 투자에 눈을 돌리기 마련이고 이에 따라 중동에서 시공경험 많은 국내 건설사의 수혜가 기대된다”고 바라봤다.

한국 정부도 국내 건설사들의 중동수주 확대를 적극 지원할 준비를 하고 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차관회의를 열고 국토교통부와 해외건설 수주 동향과 대응방향을 논의했다.

방 차관은 모두발언에서 “최근 중동 산유국의 발주증가가 예상되는 등 해외건설 수주 확대의 기회요인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번 회의를 비롯해 관계부처가 함께 정책과제를 구체화해 해외건설 수주 활성화 방안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중동은 국내 대형 건설사들에게 애증의 지역으로 평가된다.

중동은 1970~80년대 국내 건설사 성장의 원동력이 됐고 지금까지 국내 건설사에 가장 많은 일감을 준 지역이지만 2010년 이후 저가 수주와 납기 지연, 대금 납부 지연 등으로 대규모 손실을 안겨준 지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2010년 이후 중동사업에서 큰 손실을 본 뒤 중동사업을 줄이기 시작했는데 이는 국내 전체 해외건설 수주 감소로 이어졌다.

국내 건설사의 해외건설 수주는 2010년 716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줄어 2019년 223억 달러까지 낮아졌다. 2020년과 2021년 조금 회복됐지만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 규모는 306억 달러에 그쳤다. 2010년 수주 규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형 건설사들은 중동사업에서 손실을 입고 해외 수주가 줄면서 주가도 10년 넘게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삼성물산, 현대건설, DL이앤씨, GS건설, 대우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등 상장한 10대 건설사 가운데 현재 10년 전보다 주가가 높은 곳은 한 곳도 없다.
 
건설주 '제2 중동붐' 기대감에 꿈틀, 해외수주로 10년 전 주가 되찾을까

▲ 국내 건설사들은 중동수주가 줄면서 전체 해외수주도 크게 감소했다. 사진은 삼성물산이 아랍에미리트(UAE)에 지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부르즈 칼리파’. <삼성물산>


대형 건설사들은 해외사업에서 줄어든 실적을 만회하기 위해 아파트 등 국내 주택사업에 매진했지만 좁은 국내에서 펼치는 경쟁만으로는 주가 회복을 이끌지 못했다.

더군다나 올해 들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아파트 건설 공기 확대 가능성, 신축 분양시장 침체 우려, 시행사 사업수지 압박에 따른 수주 둔화 흐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이 더해지며 투자심리는 더욱 얼어붙었다.

국토교통부가 16일 향후 5년 동안 270만 호 주택공급 계획을 담은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을 내놨지만 이 역시 건설사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배세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주택 공급을 늘리는 정책의 방향성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정책의 강도가 약하고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완화 등 주요 정책이 실제 적용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며 “이번 정책이 대형 건설주 주가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고 내다봤다.

이처럼 국내사업 기대감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중동시장이 다시 열린다면 국내 건설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과거 대규모 손실을 입은 경험이 있는 만큼 당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철저히 수익성을 따지며 중동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시선이 나온다.

중동 시장은 사업 자체의 위험성뿐 아니라 정치, 군사, 외교적 요인 등 다양한 변수를 지녀 사업 불확실성이 큰 곳으로 평가된다.

강경태 연구원은 “국내 건설사는 공사 리스크를 줄이고 기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인프라 공사 위주로 수주할 가능성이 높다”며 “당장의 수주 결과보다 수익성 있는 공사를 가려내 입찰하는 국내 건설사들의 안목이 중요하다”고 바라봤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