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시장에 흑연 공급난도 가중, 배터리 원가 상승에 부담 더해

▲ 전기차 배터리의 양극재와 음극재 구조 안내.

[비즈니스포스트] 니켈과 코발트 등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쓰이는 주요 소재 가격이 급등한 데 이어 흑연(그래파이트) 공급 부족사태가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며 전기차시장에 새 리스크로 떠올랐다.

흑연은 리튬 기반 배터리의 음극재에 쓰이는 핵심 재료인 만큼 공급 차질이 발생한다면 배터리업체뿐 아니라 세계 전기차시장 전체의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만한 잠재력이 있다.

1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앞으로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흑연 부족 사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로 평가받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 벤치마크미네랄인텔리전스는 올해 글로벌 전기차 생산량 전망치와 비교해 흑연 공급량이 약 4만 톤 부족한 수준에 놓일 수 있다며 생산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흑연은 리튬 기반 전기차 배터리의 음극재에 쓰이는 소재로 배터리 성능 효율과 안전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일반적으로 전기차 1대에 50~100kg 정도가 쓰인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흑연 자체의 공급량은 크게 부족하지 않지만 전기차 배터리에 쓰일 수 있는 고품질 흑연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 하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중국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흑연 공급량의 약 79%를 책임지며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점도 단기간에 공급량을 늘리기 쉽지 않은 이유로 꼽힌다.

다른 국가에서 흑연을 채굴하고 가공하려면 관련된 설비 투자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고 인건비 때문에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벤치마크미네랄인텔리전스는 흑연 공급 부족이 전기차의 대중화 시기를 늦출 수도 있는 중요한 변수라고 바라보며 당분간 배터리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로 주목받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다이와증권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를 통해 흑연 공급 차질이 최소한 올해 말까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흑연이 전기차 배터리에서 차지하는 원가는 5~15% 정도로 비중이 꽤 큰 편이다. 공급 차질에 따라 가격이 상승한다면 배터리 생산 원가에 부담을 키울 수밖에 없다.

주요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이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니켈과 코발트, 리튬 등 원재료 가격 급등에 취약한 상황에 놓였는데 흑연 공급 부족까지 추가로 악재를 맞게 된 셈이다.

벤치마크미네랄인텔리전스는 흑연 공급 부족이 단기간에 수요 급증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며 내년부터 점차 수급이 안정화되는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바라봤다.
전기차시장에 흑연 공급난도 가중, 배터리 원가 상승에 부담 더해

▲ 삼성SDI 전기차 배터리에 쓰이는 흑연 구조 안내.

흑연은 다른 소재와 달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직접적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점도 수급 개선을 예상할 수 있는 이유로 꼽힌다.

그러나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업체들의 생산 증설로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흑연 수급 부족을 충족할 만큼 생산 증가가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이 미국과 반도체에 이어 배터리 및 전기차산업 패권 경쟁을 이어가면서 배터리 핵심 원재료 공급에 주도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점도 부정적으로 꼽힌다.

흑연 최대 생산국인 중국이 CATL과 BYD 등 자국 배터리업체의 소재 수급에 도움을 준다면 미국 완성차기업을 주요 고객사로 둔 한국 배터리업체들은 자연히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시장 조사기관의 전망과 같이 계속된 배터리 원가 상승이 전기차 가격 인상과 수요 둔화, 생산 지연 등으로 이어져 전기차시장 전반의 위축을 이끌 가능성도 충분하다.

결국 흑연의 원활한 공급이 단기간에 재개되지 않는다면 배터리업체들에 중장기적으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다만 한국 배터리업체들은 선제적으로 흑연에 의존을 낮추기 위해 음극재에 흑연의 비중을 낮추고 실리콘으로 이를 대체하는 등 다양한 대응 방법을 이미 추진해오고 있다.

SK온은 실리콘 음극재 사용 비중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계열사인 SK머티리얼즈는 이를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실리콘 음극재 생산공장에 대규모 투자를 벌이고 있다.

흑연과 실리콘 음극재를 모두 사용하지 않는 리튬메탈 배터리 등 차세대 기술도 SK온에서 활밯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도 신형 전기차배터리의 음극재에 실리콘 함유 비중을 점차 높이면서 흑연에 점진적으로 의존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벤치마크미네랄인텔리전스는 전기차 배터리용 흑연 수요가 2030년까지 연평균 18%에 이르는 증가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