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에서 최근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장기흥행에 들어간 영화 ‘쥬라기월드’에 흥미로운 아시아계 인물 두 사람이 등장한다.

쥬라기월드를 사들여 공룡왕국을 건설하는 인도인 마스라니 회장과 그의 지시를 따라 첨단 유전자공학으로 변종공룡을 만들어낸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 닥터 우다.

  마이크론 인수나선 칭화유니그룹, 반도체 공룡으로 등장할까  
▲ 자오 웨이궈 칭화유니그룹 CEO.
이 영화가 인종적 편견을 의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야기 전개상 악역을 맡은 것은 분명하다.

신흥부국 인도와 세계 최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을 바라보는 할리우드의 시선에 두려움이 담겨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영화에서 닥터 우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가공할만한 공룡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재미삼아 동종의 공룡들까지 먹어치우는 포식자의 최정점에 있는 공룡이다.

자오 웨이궈 칭화유니그룹 최고경영자가 반도체 공룡을 탄생시킬지 글로벌 IT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칭화유니그룹은 중국 최대 반도체업체인데 칭화홀딩스의 자회사다. 이 회사가 세계 반도체업계의 세 번째 공룡인 마이크론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세계 D램시장에서 국가대표 양강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기술력과 가격경쟁력까지 확보할 경우 D램업계의 판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칭화유니그룹은 1988년 중국의 손꼽히는 명문대학인 칭화대학이 설립한 회사다. 중국 지도층 인사들 가운데 시진핑 주석 등 상당수가 칭화대 출신이다.

칭화유니그룹은 중국의 반도체산업 육성정책의 적극적 지원을 받아 반도체업계의 공룡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중국은 수입규모가 연간 2천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대 반도체 수입국이다. 중국정부는 지난해 10월 반도체 수입물량을 자국산으로 대체하기 위한 전용 국부펀드 조성계획도 내놓았다.

칭화유니그룹은 중국 반도체기업인 스프레드트럼과 알디에이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2013년과 2014년 각각 인수했다.

칭화유니그룹은 또 지난해 인텔로부터 15억 달러를 투자받는 등 미국 IT기업들과 교배도 활발하게 진행해 왔다. 올해 3월 휴렛팩커드 자회사인 에이치쓰리씨(H3C)의 지분을 51% 인수했다.

칭화유니그룹이 이번에 손을 뻗치고 있는 마이크론은 미국의 D램업체라는 점에서 앞서 추진해 온 인수합병과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사업과 정확히 겹칠 수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칭화유니그룹이 마이크론에 제안한 가격은 한 주당 21달러이며 인수금액은 230억 달러에 이른다. 마이크론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3위, 종합반도체 5위를 달렸으나 지난해부터 D램가격 하락에 고전하고 있다.

칭화유니그룹이 마이크론을 손에 넣을지 확실치 않다. 하지만 인수가 성사될 경우 반도체업계에 초대형 공룡의 탄생을 예고한다. 중국정부의 지원을 입은 막대한 자본력과 미국의 기술이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증권전문가들은 인수 성사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고 있다. 칭화유니그룹이 제시한 주당 가격을 마이크론 주주들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인수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두 회사가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세철 NHN투자증권 연구원은 “흑자기조의 마이크론이 회사를 중국기업에게 매각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 “인수보다는 양사의 전략적 제휴가 더 유력하다”고 내다봤다.

자오 웨이궈 CEO는 반도체사업에 대한 애정과 의지를 강하게 보여 왔다. 칭화유니그룹을 국영기업이라는 틀에 안주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말한다.

웨이궈 CEO는 지난 4월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나를 정부의 '하얀 손(White glove)'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철저하게 시장지향적인 회사”라며 “반도체사업은 중국정부 뜻이 아닌 기술에 대한 개인적 관심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웨이궈 CEO는 앞으로 미국 IT기업과 여러 방식으로 파트너십을 구축하려고 한다.

칭화유니그룹의 기술력은 아직 세계반도체 업계에서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왕서방’의 돈이 반도체시장의 지축을 흔드는 일은 시간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