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로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노사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특별채용하는데 합의했지만 당사자인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특별채용의 전제 조건을 문제 삼아 철회를 요구하며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기아차,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갈수록 꼬여 곤혹

▲ 기아차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이 26일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특별채용의 전제 조건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근속기간을 모두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불법파견으로 판단된 기간에 덜 받은 임금 등을 보상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28일로 기아차 비정규직 지회가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9일째 점거농성을 이어가고 있지만 기아차 노사 모두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김수억 기아차 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22일부터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데 “사측과 정규직 노조로부터 특별채용과 관련한 어떠한 진전된 의견도 받아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아차는 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가 일단락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비정규직의 반발이 거세자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기아차와 정규직 노조는 19일 비정규직 노동자 1300명을 2019년까지 모두 정규직 노동자로 특별채용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사가 합의한 특별채용 방식이 기아차에게만 유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며 철회와 고용노동부의 직접 고용 시정명령을 요구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채용’에 반발하는 이유는 노사가 합의한 특별채용의 전제 조건 때문이다.

기아차 노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특별채용 방식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대신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동안 일한 기간의 일부만을 근속기간으로 인정한다는 데 합의했다. 

근속기간은 향후 퇴직금 산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인 만큼 이를 줄이면 기아차로서는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취하하는 것도 전제 조건에 넣었다.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취하도 비슷한 맥락에서 기아차에게 유리한 조건이다.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아차의 불법파견과 관련해 근로자 지위 확인을 위한 집단소송을 제기해 1심과 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2017년 2월 2심 판결을 내리면서 기아차에 “사내하청 입사시점(또는 입사 2년 뒤)부터 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함은 물론 임금 차액까지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이 취소되면 기아차로서는 법원 판결에 따른 각종 부담을 모두 덜 수 있게 된다.

비정규직지회는 고용노동부가 기아차에 직접 고용 명령을 내리는 방식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8월1일 행정개혁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에 대한 직접 고용 시정명령을 내리고 원청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직접협의를 적극적으로 중재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가 한 기업에 직접 고용 시정명령을 내리면 사업주는 평일 기준 25일 안에 불법파견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노동자 1명당 1천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두 달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고용노동부는 기아차의 불법파견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기아차는 비정규직지회의 직접 대화 요구에도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난색을 보이고 있다.

사실상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와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상대들이 모두 대화나 논의 진전에 소극적 모습을 보이면서 농성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새 고용노동부 장관에 오른 이재섭 장관이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면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장관은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식을 한 뒤 기자들과 만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직접 고용 시정명령 요구와 관련해 “노사의 대화를 통해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교섭 틀을 만드는 데 그동안 집중해왔고 작업해왔다”며 “연휴 기간 비정규직분들과 얘기하고 회사와 얘기하고 교섭 틀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아차는 현재까지 고용노동부의 중재 아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소통할지 여부를 정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