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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전쟁 확산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중동 국가에 미국 빅테크 기업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3월3일(현지시각) 이란의 공격을 받은 아랍에미리트의 한 산업단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중동에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하던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이를 계기로 투자를 대폭 축소하며 한국 반도체 기업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든다.
9일(현지시각) 경제전문지 포천은 “아마존 데이터센터를 겨냥한 이란의 공격은 인공지능(AI)이 새 전략자산으로 거듭난 데 따라 나타난 새로운 양상”이라고 보도했다.
이란군은 최근 미사일과 드론으로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에 위치한 아마존 데이터센터를 공격해 가동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아마존 데이터센터 일부는 미군의 인공지능 연산 작업에 활용된다. 포천은 데이터센터가 군사 분쟁에서 의도적으로 공격 대상에 놓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재커리 칼렌본 영국 킹스컬리지 교수는 “데이터센터 공격은 적국의 군사 활동과 민간 경제에 모두 타격을 입히는 수단”이라며 “이러한 리스크는 지금까지 크게 저평가됐다”고 말했다.
중동을 비롯한 전 세계에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지속될수록 데이터센터는 군사 공격 대상에 우선순위로 놓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번 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힘을 얻는다. 미국이 자국 내 여론과 경제적 타격을 고려하면 지상군 투입으로 전면전을 벌여 단기간에 종전을 이끌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 프랑스 등 사이에서는 휴전을 위한 중재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으나, 이란의 항전 의지가 강해 휴전 조건 합의까지 갈 길이 만만치 않다는 시각도 여전하다.
유럽안보연구소 등 연구기관의 분석을 보면 이란의 신정 체제가 유지된 상태에서 휴전 만으로 중동 내 세력 균형 재편이 이뤄질 수 없으며 지역 안보 리스크도 사라지기 힘들다는 견해도 많다.
결국 데이터센터 업체들이 중동 국가에 신규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어려워질 수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특히 미국 빅테크 기업을 비롯한 서방 국가 자본이 중동 지역에 추진하는 데이터센터 등 기술 투자 규모는 수 조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국가가 글로벌 AI 중심지로 도약을 목표로 두고 대형 IT기업의 시설 투자를 대거 유치한 결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중동 순방에서 인공지능 반도체 수출 규제를 완화하는 등 조치로 빅테크 기업의 진출 확대를 적극 지원했다.
오픈AI와 오라클은 아랍에미리트에 전 세계 절반 인구의 인공지능 연산을 책임지겠다는 목표를 두고 ‘스타게이트’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동 현지 자본으로 구축된 데이터센터도 대부분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의 서비스 운영을 위해 사용된다.
▲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위치한 아마존 데이터센터 참고용 사진. <연합뉴스>
그러나 아마존 데이터센터를 겨냥한 이란군의 공격으로 이들 기업이 향후 투자 계획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일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고개를 든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중동 데이터센터 신설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었지만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며 현실적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보도했다.
중동 데이터센터 투자 열풍이 힘을 잃는다면 세계 반도체 업황에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반도체 시장 성장이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분야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도 서버용 D램과 낸드플래시 저장장치,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인공지능 관련 제품의 수요 급증과 가격 상승에 큰 수혜를 보고 있었다.
미국에 데이터센터 신설이 가능한 수준의 전력 공급망을 갖춘 부지가 포화상태에 가까워질수록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시장 성장 전망도 더 밝아졌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빅테크 기업을 비롯한 데이터센터 관련 업체들이 중동 지역 프로젝트를 중단하거나 늦추기 시작하면 반도체 수요도 단기간에 급감할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중동 전쟁으로 국제유가를 비롯한 에너지 가격 상승에 직격타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를 받았다. 이는 가파른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중동 지역의 군사 충돌이 데이터센터 투자 위축에 따른 반도체 수요 감소까지 이어지면 한국 반도체 업계에 ‘이중고’가 불가피한 셈이다.
시장 조사기관 IDC는 중동 전쟁이 수 개월 지속된다고 가정할 때 현지에 데이터서버를 비롯한 인프라 투자 규모가 기존 예측보다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전쟁 장기화는 군사 분야의 인공지능 기술 활용 증가로 이어져 메모리반도체 수요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IDC의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이런 효과는 단기간에 나타나기 어렵다.
IDC는 “중동 전쟁이 메모리반도체에 미치는 영향은 결국 사태의 지속 기간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갈등이 오래 이어질수록 반도체 시장에도 큰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