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트럼프 정부가 엔비디아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을 전면 통제하며 이를 다른 국가에 투자 압박용 협상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법원의 상호관세 무효 판결에 따른 대책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미국 대법원에서 트럼프 정부가 투자 유치와 무역협상에서 수단으로 사용했던 상호관세를 무효하라고 판결하자 이를 대신할 새로운 수단을 마련해 주요국의 대미 투자 이행을 압박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블룸버그는 6일 “미국 트럼프 정부가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 수출을 규제해 전 세계의 인공지능 ‘문지기’ 역할을 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앞세웠다”고 보도했다.
미국 상무부는 엔비디아나 AMD 등 기업의 고성능 인공지능 반도체가 정부의 승인 없이 다른 국가에 수출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규정의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미국은 약 40개 국가를 대상으로 엔비디아와 AMD 인공지능 반도체 수출에 사전 승인을 의무화했다. 이를 전 세계로 확대하려는 것이다.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는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주요 기업과 정부의 인공지능 인프라 투자 및 기술 발전에 필수로 쓰인다.
결국 미국 정부의 통제가 특정 국가의 기술 경쟁력을 좌우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인공지능이 군사 능력에도 갈수록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국방력 강화를 제한하는 역할을 하게 될 공산도 크다.
블룸버그는 “상무부의 조치는 엔비디아 반도체 수출 금지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각국 기업과 정부가 이를 구매하려면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만 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내부 관계자들은 상무부가 아직 이러한 정책을 조율하는 단계에 있어 최종 확정안이 나오니까지는 오랜 시간과 절차가 걸릴 수 있다고 블룸버그에 전했다.
블룸버그는 상무부에서 논의중인 이번 규제가 트럼프 정부 2기 들어서 가장 강력한 수출 통제 조치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정부가 인공지능 반도체 수출 제한을 검토하는 목적은 외교와 무역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트럼프 정부는 미국 대법원의 상호관세 무효 판결에 따라 기존의 관세 정책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였다. 이에 따라 행정명령 등 임시조치를 활용해 다른 명목의 관세로 대안을 찾고 있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다수 국가와 미국 내 투자 확대를 조건으로 협상을 이뤄낸 만큼 상호관세가 무효화되면 이러한 투자 유치를 장담하기 어렵다.
결국 트럼프 정부가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 수출 통제를 협상카드로 삼아 대상 국가들에 미국 내 투자 약속 이행을 압박할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든다.
인공지능 반도체는 미국 기업을 겨냥한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블룸버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실제로 유럽의 디지털 서비스세 도입에 반발해 반도체 수출 통제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 엔비디아 '블랙웰' GPU 기반 서버용 인공지능 반도체 제품 홍보용 사진.
싱크탱크 인스티튜트포프로그레스도 “수출 승인 의무가 지나치게 폭넓고 전 세계에 걸쳐있는 만큼 이를 협상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로이터에 전했다.
결국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를 수입해야 하는 국가들이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면서 미국 정부의 요구를 계속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의미다.
블룸버그는 미국 정부가 이러한 조치를 도입한 뒤에도 인공지능 반도체 수출 승인을 신속하게 내린다면 이는 단순히 행정상 절차가 늘어나는 수준에 그칠 수도 있다고 바라봤다.
그러나 승인 절차가 지연되거나 장기간 협상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각국 기업이나 정부의 인공지능 투자 계획에 큰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법원의 상호관세 무효화 판결이 나온 뒤 다른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무역이나 투자 유치 협상에서 대안을 찾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상무부의 인공지능 반도체 수출 통제 검토도 이러한 계획에 포함될 가능성이 충분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도 지난해 엔비디아에서 대량의 인공지능 반도체 공급을 약속받아 자국 내 인공지능 인프라를 구축하는 소버린(독자적) AI 프로젝트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규제가 현실화되면 향후 인공지능 투자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