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이 공격적 증설로 AI 메모리 패권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제미나이 나노 바나나 프로>
용인 팹 하나는 청주 M15X 팹 6개와 비슷한 규모로, 1공장을 완공하면 삼성전자와 비슷한 규모의 D램 생산능력을 확보해 '규모의 경제'에서도 뒤처지지 않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수백조 원에 달하는 설비투자를 위한 차입금이 SK하이닉스의 재무 구조에 압박을 가할 수 있고, 전력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류성수 SK하이닉스 아메리카 최고경영자(CEO)는 15일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첫 번째 공장 신규 가동을 기존 계획보다 3개월 앞당긴 2027년 2월부터 가동할 것"이라며 "우리는 인공지능(AI) 인프라를 위한 메모리 소비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밝혔다.
급증하는 AI 메모리 수요에 따른 슈퍼사이클 시기에 용인 반도체 공장을 조기에 가동해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인 것으로 풀이된다.
용인 1기 팹이 완공되면 현재 월 50만 장(웨이퍼 기준) 안팎인 SK하이닉스의 메모리 생산능력은 월 70만 장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의 현재 D램 생산능력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11월 'SK AI 서밋 2025'에서 "용인클러스터에는 커다란 공장(팹)이 4개 들어가는데 1개의 거대한 팹에는 청주 M15X 팹 6개가 들어갈 수 있는 규모"라며 "용인 클러스터가 다 완성이 되면 24개의 청주 M15X 팹이 동시에 들어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용인 1공장은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서버용 D램 등 첨단 AI 반도체를 중심으로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최근 19조 원을 투자해 2027년 말 완공을 목표로 청주 반도체 패키징 공장 'P&T7'를 건설하기로 결정했으며, 올해 상반기 청주 M15X 팹3, 내년 상반기 M15X 팹4 가동도 앞두고 있다. M15X 팹3~4의 D램 생산능력은 합계 월 9만 장 수준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의 증설 움직임은 경쟁사와 비교해도 매우 공격적이다.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조성되고 있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예상 조감도. < SK하이닉스 >
마이크론의 D램 설비 증설 규모도 올해 1만5천장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된다.
SK하이닉스의 HBM3E 제품은 2026년 생산 예정 물량까지 대부분 선계약·완판된 상태로 사실상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다. 게다가 범용 D램 가격까지 폭등하고 있어 하루라도 빨리 수요에 맞는 공급량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해 12월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AI 메모리 수요는 상당 기간 증가할 것이고, 공급은 제한적 상황이라 선제적 생산능력 확보가 중요하다"며 "시장을 선점하려면 팹을 먼저 짓고 생산라인을 세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 사장은 용인 클러스터에 2046년까지 600조 원을, 청주에 올해 11조 원을 포함해 4년 동안 42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앞서 밝혔다.
이 같은 투자가 이뤄지면 최근 기술 우위를 갖춘 SK하이닉스가 '규모의 경제'에서도 삼성전자와 동일한 수준까지 올라설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이 같은 천문학적 설비 투자를 SK하이닉스가 혼자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당초 120조 원 규모였던 용인 클러스터 투자 예상 금액은 물가 상승, 건설비 증가, 첨단 장비(EUV 등) 도입 비용 상승으로 인해 600조 원 이상으로 수직 상승했다. 만약 이와 같은 자금을 SK하이닉스가 독자적으로 확보하려 한다면 막대한 차입금과 이자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곽노정 사장이 첨단산업 투자 규제 제도 개선을 통해 기존 자금 조달 구조의 한계를 넘으려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지주회사의 지분 규정을 완화하는 개선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보유해야 하는 증손회사의 의무 보유 지분율을 기존 100%에서 50%로 낮추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규제가 완화되면 SK하이닉스는 자회사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는 구조를 통해 외부에서 대규모 투자를 받을 수 있다.
AI 산업의 성장 둔화 가능성, 전력·용수 문제 등도 리스크로 거론된다.
정부가 추산하고 있는 용인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는 최대 15기가와트(GW)로, 원자력발전소 15기가 필요하고, 수도권 전체 전력 소비량의 4분의 1에 달하는 수준이다.
호남이나 동해안의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용인까지 가져오려면 대규모 초고압 송전망을 구축해야 하는데, 송전선이 지나가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를 넘어서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제다.
SK하이닉스는 최근 한국전력공사 사장을 지낸 정승일 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을 고문으로 영입했는데, 이는 반도체 사업에서 전력 확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곽 사장은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용인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를 물어보자 "전체적으로 14~15기가와트, SK하이닉스는 6기가와트가 필요한데 이미 절반 가량을 확보했고 나머지 절반이 남아 있다"고 답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