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 대서양 연안을 항해하고 있다. <연합뉴스>
23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럽연합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맺은 에너지 구매 계약에도 지난 4개월 동안 미국산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줄여왔다고 보도했다.
양측이 맺은 협정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2028년까지 미국으로부터 7500억 달러(약 1100조 원) 상당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해야 한다.
반면 에너지 컨설팅 업체 크플러의 집계에 따르면 9월부터 12월까지 유럽연합의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와 석유 수입액 합계는 296억 달러(약 43조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약 7% 감소했다.
질리언 보카라 크플러 선임이사는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이번 무역협정이 미국산 원자재 추가 구매를 유도하는 효과는 거의 없었다"며 "원자재 구매는 정치적 공약보다 운송비와 마진 등 경제적 요소를 바탕으로 이뤄지기에 이러한 약속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시장 정보 업체 아거스 미디어에 따르면 유럽연합이 러시아에서 수입하던 천연가스를 전량 미국산으로 대체해도 향후 3년간 수입 규모는 연간 290억 달러(약 42조 원)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유럽연합이 미국으로부터 구매하기로 합의한 규모의 약 23%에 불과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를 바탕으로 유럽연합이 미국과 합의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2028년까지 천연가스 가격이 4배 상승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이같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예측됐다.
아거스 미디어는 2028년 천연가스 선물 가격이 100만 BTU(에너지 용량 단위)당 약 10달러로 현재 가격인 8.7달러와 비교해 얼마 오르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보카라 이사는 "이번 무역협정이 미국의 관세를 낮추는 수단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타산이 맞지 않는 협의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천연가스는 미국, 캐나다, 카타르 등 생산국들이 모두 생산량 증대를 계획하고 있어 공급 과잉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종전 협정을 맺을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시장 전문가들은 천연가스 가격이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마틴 시니어 아거스 미디어 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유럽연합이 수입을 확대하려 해도 미국과 유럽연합은 모두 에너지 무역을 크게 늘리기 위한 수출입 인프라가 부족하다"며 "무역협정을 이행하려면 유럽연합은 수입 능력을 50% 이상 늘려야 하고 미국은 수출 능력을 두 배 이상 키워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취재한 전문가들은 결국 유럽연합이 이런 비현실적 협정을 맺은 이유는 2029년에 임기가 끝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을 회피하기 위한 단기적 임시방편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