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정부가 에너지저장장치(ESS) 투자 활성화 및 수익성 개선을 이끄는 정책을 잇따라 실시하며 내수 시장 규모를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는 현지 배터리 제조사들이 전기차에 이어 새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성과로 이어진다. 중국 CATL의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 홍보용 사진.
이는 전기차에 집중하던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의 공급처를 ESS 분야로 다변화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지속 성장에도 기여하는 효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로이터는 22일 “중국 ESS 및 배터리 업체들은 이미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며 “전력시장 개편은 이들의 성장세를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라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현지에서 새로 추진되는 ESS 프로젝트의 전력 공급 단가를 고정가격이 아닌 경매를 통해 시장가격으로 책정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ESS를 운영하는 업체들은 이에 따라 전력 수요가 많을 때 에너지를 비싸게 공급할 수 있고 이는 업체 전반의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졌다.
가동 효율성도 높아졌다. 중국전력협의회에 따르면 3분기 ESS 평균 가동 시간은 하루 3.08시간으로 1년 전과 비교해 0.78시간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정부는 350억 달러(약 41조8천억 원) 가까운 금액을 들여 자국 내 ESS 설치 용량을 대폭 늘리는 대규모 지원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자연히 ESS 프로젝트에 새로 뛰어드는 기업이 단기간에 급증했고 이는 공급 과잉으로 이어져 가동률 및 수익성 하락을 이끌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에서 ESS 전력 공급단가 경매 제도 의무화를 시행한 뒤에는 에너지 수요에 더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돼 실적 개선 효과가 뚜렷해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증권사 제프리스는 이를 두고 “지난 10년 동안 ESS 분야에서 이뤄진 가장 돋보이는 정책 전환 사례”라는 평가도 내놓았다.
중국 내 ESS 산업이 활성화되며 자연히 핵심 부품인 배터리 셀을 공급하는 현지 제조사들의 수혜도 갈수록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CATL과 BYD, 이브에너지 등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주요 공급처였던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로 ESS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데 주력해 왔다.
특히 중국은 ESS가 필수로 쓰이는 태양광 및 풍력 발전 분야에서 확실한 선두 국가인 만큼 이는 전기차를 대체할 수 있는 핵심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ESS도 전기차와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의 과도한 지원 정책이 공급 과잉을 불러 결국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져 왔다.
▲ 미국 애리조나에서 운영되는 오스테드의 에너지저장장치 참고용 사진. <연합뉴스>
조사기관 트리비움차이나는 “현재 중국 상위 배터리 셀 업체들은 사실상 주문이 포화된 상태”라며 “많은 기업들이 수요 대응을 위해 2교대 근무를 실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은 중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ESS 배터리 시장에서 상위 10곳 가운데 9곳은 중국 기업으로 파악됐다. 일본 AESC를 제외하면 중국이 사실상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 중국 업체들의 ESS용 배터리 셀 글로벌 출하량 증가율은 75%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중국 기업들이 전기차보다 ESS 시장에서 더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구축했을 뿐만 아니라 가파른 성장세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로이터는 “ESS의 배터리 매출 비중은 전기차와 비교해 낮은 수준에 그쳤지만 지금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ESS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증설 경쟁이 이어지고 있는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의 대규모 전력 공급에도 점차 필수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내수시장 성장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에 힘입어 성장한 뒤 글로벌 인공지능 전력 공급망에서 역할을 더욱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이는 현재 중국이 전 세계 전기차 공급망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상황과 유사한 점이 많다.
중국 정부가 전기차 내수 시장을 키워 관련 기업들의 성장을 이끈 뒤 글로벌 영향력을 키운 전략을 ESS 시장에서 재현하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 정부는 현재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하는 ESS 프로젝트에 세제혜택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무역 장벽을 높이고 있다. 이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업체들에 반사이익으로 돌아오고 있다.
다만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한국 배터리 업체들의 성장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로이터가 인용한 씽크탱크 엠버의 집계를 보면 올해 1~10월 중국의 전기차 및 ESS용 배터리 수출액은 667억6100만 달러(약 98조8천억 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 전기자동차산업기술혁신전략연맹에 따르면 중국의 1~11월 ESS 등 비자동차용 배터리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4% 늘었다. 이는 전기차용 배터리 수출 증가율인 40.6%를 웃돌았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