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 경제 충격파 먼저 온다, 5대 금융지주 내년 경영전략 '초비상'

▲ 5대 금융지주가 탄핵정국에 내년 경영전략을 놓고 비상을 걸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KB,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가 탄핵 정국 장기화에 대응해 비상경영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금융지주는 계엄 사태 여파로 촉발된 외국인 자금이탈이 이어지며 환율 및 주식시장에서 커지는 불확실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경제·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한 유동성 공급 역할 등 경영환경 관련 대내외적 변수에도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년 경영방향성을 구축하는 단계에서 보수적인 전략을 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으로 평가된다.

9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KB,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 회장과 시장 점검회의를 당초 예정일인 12일에서 이날 오전 8시30분으로 앞당겨 진행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관한 탄핵소추안 부결 뒤 정치 불확실성이 확대된 데 따른 것이다.

금융지주는 은행 등 주력 계열사 사업이 각종 경제정책의 직접적 영향권에 있는 만큼 계엄 사태 이후 급박히 변하고 있는 대내외 상황 변화에 긴장감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탄핵정국' 경제 충격파 먼저 온다, 5대 금융지주 내년 경영전략 '초비상'

▲ 김병환 금융위원장과 5대 금융지주 회장 등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금융상황 점검회의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현재 금융지주들은 연말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한창 2025년도 경영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시기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계엄 사태와 이에 따른 환율 급등, 대외신인도 하락 우려 등이 덮치면서 비상대응체제에 돌입했다. 

KB금융은 지주 및 계열사가 일제히 비상대응체제를 유지하면서 금융시장 동향과 리스크 관련 일일 점검체계를 구축했다. 

이날 금융위 회의 뒤에는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한 정부 기금 조성에 적극 참여하고 고유 운용자산뿐 아니라 채권 매입, RP매입 등을 통해 단기 유동성 공급에도 적극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우리금융도 계엄 사태 뒤 매일 오후 주요 경제지표를 모니터링하고 부서별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하나금융은 주말에도 외환부서 직원들이 모니터링 근무를 서면서 비상체제를 가동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밖에 신한금융과 NH농협금융 등 다른 지주들도 환율과 유동성 관련 점검체계를 강화하고 증시와 금리 등 시장 관련 영향을 살피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당장 시장 변동성과 그 여파를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위기 대응이 최우선 과제가 된 셈이다.

대형 금융지주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증시나 채권, 금리, 대외적 신인도와 관련된 부분의 변동성을 모니터링하면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적어도 2025년 시작에는 각 회사들이 상황이 안정화하기를 기다리면서 보수적 관점에서 계획을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작년, 재작년 은행지주들이 위험가중자산(RWA)을 늘려가면서 기업대출 등 부문에서 공격적 영업을 했던 것과 비교해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지주들은 은행 등 핵심 계열사의 대출 등 기존 영업전략뿐 아니라 비은행 강화나 신사업을 위한 인수합병, 투자 등에도 소극적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금리인하로 순이자마진(NIM)이 축소되는 가운데 환율 급등으로 건전성 관리 부담까지 커진 상황에서 ‘곳간’의 자금을 사용하는 데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탄핵정국' 경제 충격파 먼저 온다, 5대 금융지주 내년 경영전략 '초비상'

▲ 5대 금융지주가 계엄 사태 여파에 따른 환율, 금리 등 시장 변동성 확대와 관련해 비상대응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5대 금융지주는 금융당국의 증권시장안정펀드와 민생금융 지원 등 시장 안정화 조치 관련 비용 부담이 커질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사업자금 운용계획과 관련해 더욱 운신의 폭이 줄어들 수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계엄 사태가 발생한 다음날인 4일 아침 즉시 증권시장안정펀드 10조 원 규모 투입 가능성, 채권시장안정펀드 40조 원 규모와 회사채, CP매입 프로그램 가동 계획 등을 밝혔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날 오전 5대 금융지주 회장과 함께 한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도 증권시장안정펀드와 외화 유동성 공급 등 시장안정 조치를 적기에 시행할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증시안정펀드는 금융지주 등과 증권 유관기관 등이 기금을 마련해 운영한다. 연초마다 각 금융지주 등 출자금액을 설정한 뒤 당국에서 요청을 하면 실제 지급을 하는 방식이다.

앞서 2020년 펜데믹과 2022년 글로벌 긴축 우려 당시 증시안정펀드 조성 때를 살펴보면 5대 금융지주가 각각 1조 원 규모를 분담했다. 2020년에는 채권안정펀드 출자금까지 각 5대 금융지주 부담이 2조 원 규모에 이르렀다.

다만 당시에는 증시안정펀드 등이 실제로 투입되지는 않아 부담이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환율과 금리변동 등은 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지주들의 소상공인 등 민생금융 지원 관련 역할도 더욱 커질 수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날도 5대 금융지주 회장들에게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경제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자금운용에 만전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대통령 탄핵이 부결되면서 국내 정치 리스크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고 있다. 금융지주들은 불안정한 경영상황을 한동안 안고 가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당장 예산안 등 경제 및 정책현안 처리가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자본시장법 개정 등 법안들의 향방도 불투명해졌다”며 “또 정치 리스크 확대로 재정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빠르면 내년 1월, 늦어도 2월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인하 등 완화정책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은행은 환율과 금리 등에 영향을 받는 시스템산업인 만큼 거시경제 변동성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며 “밸류업 정책이 후퇴하지 않는다 해도 원/달러 환율 급등과 보통주자본비율(CET1), 은행 손익 등에 정치적 불확실성이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우려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최 연구원은 “은행업종 수급의 키를 쥐고 있는 외국인들이 정책 신뢰도에 상당한 의문을 지니고 있는 상황에서는 개선이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