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일(현지시각)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 출석한 미국 대표단. 오른쪽이 마거렛 테일러 미국 국무부 법률자문. <연합뉴스>
이에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들은 한 목소리로 이미 충분한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어 이들의 기후 대응 의무를 확대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5일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열리고 있는 기후변화에 관한 국가별 법적 책임을 묻는 공개 청문회에서 주요국들이 의무 확대를 거부하며 한 목소리를 냈다.
이번 청문회는 앞서 지난해 3월 도서국 바누아투가 주도해 제기한 유엔 안건에 따라 시작된 심리 절차다. 오는 13일에 청문회가 종료되고 국제사법재판소는 청문회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해 향후 몇 달 내로 최종 판단 결과를 발표한다.
바누아투와 도서국들은 이번 청문회에서 기후변화를 일으킨 책임이 서방권 선진국들을 비롯한 경제 대국들에 있어 이들에게 더 큰 법적 책임을 물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이들 국가가 현재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과 파리협정를 중심으로 이뤄진 기후대응체제가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협정은 2015년 세계 각국이 글로벌 기온상승을 1.5도 아래로 억제하자고 합의한 조약이다.
국제사법재판소 청문회에 참석한 미국 대표부는 4일(현지시각) 유엔기후변화협약 체제는 주요국들이 이미 충분한 의무를 다하게 하고 있다는 성명을 내놨다.
마거렛 테일러 미국 국무부 법률자문은 “유엔기후변화협약 체제는 기후변화 대응을 향한 각국의 참여를 가장 명확하고 구체적이며 현대적으로 잘 나타내는 체계”라며 “국제사법재판소가 판단하는 기후변화 완화와 관련된 기타 법적 의무는 모두 파리협정 체제에 따라 국가가 갖는 의무와 일관적으로 해석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서국들과 환경단체들은 즉각 미국의 태도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랄프 레젠바누 바누아투 기후특사는 “우리는 미국과 다른 나라들에 실망했다”며 “이들 국가들은 가장 큰 온실가스 배출국이면서 이미 실패한 조약들을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애쉬팍 칼판 옥스팜 아메리카 기후정의 디렉터도 “바이든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국가들이 이산화탄소 오염을 줄여야 할 명확한 법적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칼판 디렉트는 “특히 트럼프 당선인과 같은 검증된 기후부정론자에게 행정부를 넘길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는 미국 기후조치에 심각한 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번 성명 발표로 기후변화 책임 확대를 반대하는 국가들 쪽에 힘이 더 실리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 마신민 중국 외교부 법률고문. <국제사법재판소>
마신민 중국 외교부 법률고문은 성명 발표를 통해 “중국은 국제사법재판소가 유엔기후변화협약 체계를 글로벌 기후 거버넌스의 주요 채널로써 지지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호주,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등 국가들도 동일한 의견을 담은 성명을 발표해 사실상 이번 청문회에 참석한 주요국들 대다수는 기후변화에 관한 책임 확대를 반대한 셈이 됐다.
여기에 더해 미국 대표단은 국제사법재판소가 국가별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따져 국가별 책임을 판단하는 행위도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테일러 고문은 “국제사법재판소에 법적 자문을 구하는 절차는 개별 국가나 집단이 과거에 기후변화에 관련된 의무를 위반하고 이를 배상해야 하는 책임을 지는지 여부를 판결하는 수단이 아니다”며 “그렇게 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