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CEO가 2023년 1월5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텔란티스는 최근 전기차 수요 둔화로 유럽에서 여러 차례 공장 가동을 중단했는데 북미에 배터리 합작공장을 세운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에까지 여파가 번질 수 있다.
1일(현지시각) 스텔란티스는 카를로스 타바레스 CEO의 사임안을 즉각 수리했으며 당분간 임시 위원회가 회사를 이끌고 2025년 상반기에 새 CEO를 들일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타바레스 CEO는 애초 2026년까지 보장됐던 임기를 마무리하고 은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었는데 돌연 사임한 것이다. 명확한 사임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스텔란티스가 최근 심한 재무 위기에 직면했다는 점이 CEO의 갑작스런 사임 배경으로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스텔란티스는 올해 상반기 매출이 급감하고 순이익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50% 감소했다.
같은 기간 현금 및 현금성자산마저 마이너스 73억4400만 유로(약 10조3057억 원)를 기록하며 현금흐름도 크게 악화했다.
이에 스텔란티스는 CEO를 공식 임기 전에 갈아치우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수익성 개선을 노리는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CEO 사임을 둘러싼 정황을 잘 아는 취재원 발언을 인용해 “스텔란티스는 미국과 유럽에서 매출 부진을 겪고 있으며 회사를 정상 궤도로 돌릴 방법을 두고 타바레스 CEO와 이사회 구성원 사이 긴장이 고조됐다”고 보도했다.
후임 CEO가 인선되면 그를 중심으로 스텔란티스가 당분간 수익성 중심의 경영 기조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스텔란티스가 전기차 중심의 투자 축소 기조를 가져갈 가능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
스텔란티스가 경쟁사인 GM이나 포드보다 이른 2038년에 탄소중립(넷제로)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전기차에 대거 투자했다. 그러나 중국산을 비롯한 저가 전기차에 경쟁력이 밀려 판매 부진으로 이어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스텔란티스는 이탈리아 미라피오리에 위치한 피아트500 전기차 공장에서 올해 12월2일부터 2025년 1월5일까지 일시적으로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미라피오리 전기차 공장은 올해 들어 여러 차례 가동이 멈춰 섰던 곳이다.
일부 공장에서 생산을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전기차 수요가 악화해 신임 경영진이 수익성 개선을 위해 가장 먼저 투자를 축소할 공산이 크다.
▲ 삼성SDI와 스텔란티스 임직원이 11월22일 미국 인디애나주 코코모에 위치한 합작사 스타플러스에너지 공장을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스타플러스에너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전기차 제조 및 구매에 재정적 혜택을 제공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폐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로이터는 “스텔란티스나 GM 그리고 포드는 수익성이 높은 내연기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픽업트럭 제조를 늘리는 식으로 유연하게 대비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자연히 스텔란티스와 합작해 미국 인디애나주 및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각각 대규모 배터리공장을 건설 중인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삼성SDI는 인디애나주 코코모에 ‘스타플러스에너지’라는 합작사를 세우고 연간 합산 생산능력 67기가와트시(GWh)인 공장 2곳을 신설하고 있다. 연간 33기가와트시 규모를 갖춘 1공장을 올해 안으로 조기 가동해 배터리셀을 생산하는 목표도 설정됐다.
LG에너지솔루션 또한 온타리오주 윈저에 만든 합작사 넥스트스타에너지의 공장에서 10월부터 배터리 모듈 양산에 공식 돌입했다.
스텔란티스가 이탈리아 공장 가동을 중단하기로 한 선택지와 같이 북미에서도 전기차 생산에 소극적으로 돌아서고 투자 속도를 늦추거나 축소하면 합작 공장을 세운 한국 배터리 기업 납품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구나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 스텔란티스가 중국 CATL과 협업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스텔란티스는 CATL과 유럽에 합작 공장을 세우고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제조하겠다는 방침을 2023년 11월 발표했는데 협업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 2025년부터 중저가형 전기차가 다수 출시된다는 점도 스텔란티스 신임 CEO가 배터리 원가 절감에 집중하게 만들 요인으로 지목된다.
닛케이아시아는 “스텔란티스는 가격 경쟁력이 높은 중국 업체의 전문성을 활용하고자 한다”라고 바라봤다.
결국 CEO의 예기치 못한 퇴임 이후 스텔란티스가 수익성 강화를 위해 전기차 투자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K배터리 기업으로까지 여파가 번질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다만 타바레스 CEO는 스텔란티스가 테슬라처럼 자체 기술에 기반한 배터리를 제조해 원가 절감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CEO 교체로 이러한 시도가 힘을 잃는다면 삼성SDI나 LG에너지솔루션과 같이 이미 합작사를 세운 외부 업체가 중장기 관점에서 오히려 입지를 단단히 할 여지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