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재계 관계자들이 2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간담회 시작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재계는 일반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자는 민주당의 상법 개정 취지에는 공감했지만 방법론에서 이견을 나타냈다.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 안으로 상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이라는 ‘투-트랙’을 완료한다는 방침을 정한 가운데 물적분할 관련한 논란을 비롯해 재계의 목소리를 어떻게, 얼마만큼 반영할지를 두고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과 오기형, 김남근 의원 등 '대한민국 주식시장 태스크포스(TF)' 위원들은 29일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청사 챔버라운지에서 재계와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는 오는 12월4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직접 참석하는 재계 측 대표와 주식투자자 측 대표들과의 상법개정안 정책토론을 앞두고 재계가 현장에서 느끼는 우려를 먼저 듣기 위해 마련됐다.
재계에선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박승희 삼성전자 사장, 이형희 SK수펙스 커뮤니케이션위원장,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 하범종 LG 사장 등이 참석했다.
민주당 의원들과 재계 관계자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함께 입장한 뒤 “한국경제 파이팅!”, “주식시장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사진을 촬영했지만 모두발언이 시작되자 각자의 입장차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한국은행의 경제성장률 전망도 하향되고 우크라이나 등 지정학 리스크로 기업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트럼트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첨단산업은 물론 대외충격에 취약한 중견기업과 소상공인들의 걱정이 많다”며 “국회 관점에서 보면 규제보단 적극적 산업 진흥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배구조 이슈는 2020년 상법 개정과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관련 규제가 많이 도입됐는데 4년 만에 다시 상법 개정 부분이 논의 되면서 솔직히 경제계에서는 걱정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뼈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이에 민주당 주식시장 활성화 TF 단장을 맡고 있는 오기형 의원은 후진적 기업의 지배구조에 따른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해 기업을 향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하며 상법 개정은 사회적 요구라는 점을 강조했다.
오 의원은 “잘못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으로 국민연금 손해액이 250억 원, 대민 국민 세금으로 보상해야 하는 게 2350억 원으로 추정된다”며 “이제는 그런 비용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를 방지해 그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 보완을 위해 이사의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 이후에도 두산밥캣과 두산에너빌리티 합병,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의 주식 공개매수 뒤 유상증자 등을 바람직하지 못한 의사결정이 반복됐던 사례로 들며 이제는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짚었다.
오 의원은 “모든 제도가 옳고 그르다고 고집할 수는 없는데 현재 문제를 풀기 위한 현재 가능한 해법이 뭔가에 대해 말씀을 제대로 듣고 해법들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재계도) 방향성에 공감이 있다면 열린 마음으로 함께 말씀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비공개로 1시간 넘게 진행된 간담회에서 재계는 민주당에 상법 개정보다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물적분할 또는 합병과정에서 소액·일반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규제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 오기형 민주당 주식시장활성화 TF 단장(왼쪽)과 김남근 간사가 재계와의 간담회가 끝난 뒤 백브리핑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오 의원도 “(재계가) 상법 개정 등으로 자본시장의 문제점을 해소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엔 공감의 말을 했다”며 “다만 방법론적 측면에서 우려 사항과 대안을 개별적으로 말씀 주셨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재계가 건의한 자본시장법 개정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일각에서는 일반 주주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으로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과정에서 대주주를 제외한 모회사 주주에게 공모 신주의 일정비율 우선 배정 △합병비율 산정 시 주식 시가가 아닌 기업의 실질가치를 반영한 공정가액으로 결정 등이 거론된다.
다만 민주당은 아직까지 상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이 모두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자본시장법 개정만으로 소액주주와 일반 투자자들의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계와의 이견을 좁혀나가는 과정이 더 많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 의원은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상징적 규정으로 존재하게 하고 자본시장법에서 공정가치 또는 신주 인수권리 보장 조항도 같이 존재하면 된다”며 “자본시장법 개정은 제안하는 사람들마다 천차만별이어서 TF 차원에서는 상법을 철회할 단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나온 자본시장법 개정 내용은 충분하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이 좀 더 적극적으로 상법과 자본시장법 개정 논의에 임한다면 속도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 의원은 12월 정기국회 안으로 상법개정 시점을 못 박은 것과 관련한 질문에 “많은 분들이 이 문제(상법 개정)는 (정부여당이) 협조안하면 안 될 것이란 인식이 있는 듯해서 말씀드린다”며 “이 주제에 대해 우리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숙성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보다 더 자세하게 고민한건 정부 여당이고 국민의힘도 모르는 내용은 없는데 단지 정무적 판단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바라봤다.
정부는 일반법에 해당되는 상법을 개정했을 때 재계가 받는 충격이 크다는 이유를 들어 자본시장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28일 KBS라디오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에서 “일반주주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지배구조 개선 의지는 확고하다”면서도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넣었을 경우 의무의 충돌 등 부작용 우려가 많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오는 12월4일 정책토론회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산하 법안소위원회의가 개최하는 상법 개정 공청회에 재계의 적극적 참여를 요청하는 등 향후 재계를 설득하는 절차를 계속 밟아나간다는 방침을 정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