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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정부 의료개혁에 '선의' 내세워, 정책은 ‘결과’로 말해야

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 2024-09-05 14: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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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정부 의료개혁에 '선의' 내세워, 정책은 ‘결과’로 말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4일 경기도 한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찾아 응급의료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비즈니스포스트] “헌신하는 의료진에게 늘 죄송한 마음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후 카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을 방문해 응급의료 현장을 점검한 뒤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의 현장 방문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응급의료 위기론에 관해 “비상진료체계가 그래도 원활히 가동되고 있다”고 말한 지 엿새 만의 일이다.

기자회견 뒤 응급실 의사 부족으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피해를 입은 사례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자 대통령의 현실인식이 급박한 현장과 너무나 동떨어졌다는 비판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그러나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들을 보면 정부가 아직도 제대로 응급실의 급박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주무부처인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4일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의료붕괴 상황이 아니라는 보건복지부의 말을 누가 믿겠냐는 지적에 "응급실이 붕괴됐다는 표현을 써서 왜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나"고 반박했다.

KBS 보도를 보면 4일 오후 8시40분쯤 열과 함께 경련 증상을 보였던 2살 아이 A양은 경기 서북권역 병원 6곳에 전화를 했지만 모두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고 일단 급한 상황에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향했으나 진료를 거절당했다. 결국 아이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의대증원으로 전공의 사직이 시작된 2월부터 8월26일까지 "의료인력이 없어 진료가 불가하다"는 응급실 진료제한 메시지가 7만2411 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만3407 건이나 급증했다.

1만3천 명이 넘는 국민들이 정부의 의대증원 발표 전보다 응급실 치료를 받지 못한 것이다. 

‘의사가 부족하면 아픈 국민들을 전세기에 태워서라도 치료를 받게끔 하겠다’던 박 차관은 응급실에 가야할 ‘경증’과 ‘중증’ 구분에 관해서도 “환자 스스로 전화할 수 있으면 열이 많이 나거나 배가 갑자기 아프거나 어디가 찢어져서 피가 많이 나도 경증”이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전공의 때 응급실 근무를 서본 경험이 있다는 서울의 한 개원의는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이 처음에 경증으로 진단받았다가도 나중에 추가 검사를 통해 중증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보건복지부 차관의 발언은 의료개혁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현장과 현실을 모르는 지 증명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기자의눈] 정부 의료개혁에 '선의' 내세워, 정책은 ‘결과’로 말해야
▲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상황실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박 차관의 발언을 두고 “전화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경증을 판단할 수 있다면 의사들은 '레드 플래그 사인'(위험 신호)을 왜 공부하겠는가”라며 “전화로 쉽게 경·중증 판단이 가능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면 현재 국정운영의 상태가 중증인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른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발언들도 정부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해 의료대란을 수습할만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 의심을 갖게 만든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SBS라디오에 출연해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은 있지만 응급진료 유지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형민 대한응급의사회장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빅5 병원에 환자를 보내려고 전화를 해보면 ‘누워 있을 자리가 아니라 서 있을 자리도 없다고 한다”며 “응급실이 그 상황이 되면 응급실 자체로서 의미가 없는 것이고 이미 마비가 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응급실 현장에서 환자를 보고 있는 의사들은 심각성을 강조하는데 정부 관계자들은 ‘수치’나 ‘원활’, ‘유지 가능’ 등의 표현을 써가며 불안감을 줄이려는 데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최근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 토론에서 의정갈등과 관련해 '버티면 이긴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알려졌다가 이긴다는 표현이 의사를 대상으로 한 게 아니라며 해명하기도 했다.

심지어 정부가 의료대란 사태 책임을 의사들 탓으로 미루려는 게 아닌지 의심할 만한 발언도 나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3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의 질의과정에서 의료대란을 두고 "1만 명에 가까운 전공의가 환자 곁을 떠난 데서 출발한다"고 말해 정부가 의료대란의 책임을 전공의들에게 미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 총리의 발언을 두고 "의료대란이 의사 탓? 민생 파탄은 국민 탓이냐"고 꼬집었다.

물론 전공의와 의대생의 대규모 이탈에 관한 국민들의 눈길이 곱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가 20년 넘게 의료계 반발을 불러온 의대증원에 칼을 빼들었다면 당연히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반발을 예상하고 의정갈등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세심한 대비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정부가 응급실 의사 부족 문제를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군의관과 공중보건의 응급실 투입도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의관과 공중보건의가 자리를 비우면 군인과 지역의료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서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안보를 함께 책임지는 군의관과 지역의료를 담당하는 공보의를 빼내는 건 새로운 의료공백을 만드는 전형적인 돌려막기”라며 “군의관·공보의를 데려오더라도 수련이 돼있지 않아 중증환자를 치료할 수 없는데 국민의 생명을 두고 이렇게 날림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여당에서 나오는 지적이라도 새겨들어 전향적 대응 방안을 마련에 나서야 한다. 의료개혁은 정부와 의료계의 ‘승부’가 아니다. 국민의 ‘생명’이 걸린 사안이다.

김종혁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4일 MBC 100분 토론에서 "정책은 결과로 얘기하는 것"이라며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있더라도 결과가 나쁘면 평가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부의 의료개혁이 10년 뒤에 성과를 낼 수 있다 하더라도 당장 내가 죽을 수 있는데 참으라고 하면 참을 국민은 없다"고 강조했다. 김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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