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GPU 대체 위해 뭉친 SK와 KT, 삼성전자에 AI칩 생산 맡기나

▲ 리벨리온과 사피온코리아가 합병하면서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 방향과 공급망 등을 조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SK그룹과 KT가 주요 주주인 인공지능(AI) 반도체설계 기업 리벨리온이 반도체 위탁생산을 삼성전자에 맡기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분석된다.

메모리에서 파운드리, 패키징까지 한 번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삼성전자의 ‘원스톱’ 솔루션을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합병 전 각 회사의 계약관계가 있는 만큼, 당분간 리벨리온과 사피온코리아가 따로 AI 반도체 개발을 진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일 반도체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SK텔레콤이 최대주주인 ‘사피온코리아’와 KT가 2대 주주로 있는 ‘리벨리온’이 11월 합병을 마무리하기 전에 사업 방향이나 AI 칩 공급망을 조율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사피온코리아와 리벨리온은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체할 AI 신경망처리장치(NPU)를 개발하고 있는 반도체설계 기업으로, 각각 다른 공급망을 확보해왔다.

리벨리온은 그동안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를 삼성전자에서 공급받았고, AI 칩 위탁생산도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활용했다. 리벨리온은 박성현 대표이사 등 창업자들이 지분 약 36%를 보유하고 있고, 2대주주인 KT가 지분 13%를 가지고 있있다.

반면 사피온코리아는 SK하이닉스로부터 HBM을 공급받고, AI 반도체 위탁생산은 대만 TSMC에 맡겼다. 사피온코리아는 SK텔레콤이 지분 62.5%, SK하이닉스가 25%, SK스퀘어가 12.5%를 보유했다.

지금까지는 합병되는 리벨리온이 기존 사피온코리아의 공급망을 활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SK그룹의 합병기업 지분율이 상당히 큰 데다, 파운드리에서 경쟁우위에 있는 TSMC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2025년부터는 공급망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엔비디아 GPU 대체 위해 뭉친 SK와 KT, 삼성전자에 AI칩 생산 맡기나

▲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오른쪽)과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이사가 2024년 8월18일 경기 성남시 리벨리온 분당오피스에서 합병 본계약 체결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오진욱 리벨리온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최근 언론사들과 인터뷰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와 협력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오 최고기술책임자는 “삼성전자와 리벨 칩 개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이원화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게 맞다”며 “삼성전자가 메모리부터 파운드리, 패키징에 이르는 다양한 공정을 턴키 서비스로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리벨리온이 2023년에 출시한 AI 반도체 ‘아톰’은 삼성전자 5나노 공정으로 제조됐고, 2025년 상반기에 공개하는 차세대 AI 반도체 ‘리벨’은 삼성전자 4나노 공정으로 생산하기로 했다. 또 리벨에는 삼성전자의 HBM3E가 탑재된다.

반면 사피온코리아가 SK하이닉스, TSMC와 손잡고 개발하고 있는 AI 칩 ‘X430’은 개발 지속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이사가 합병법인의 경영권을 쥔 만큼, 제품 개발을 ‘원트랙’으로 재정비하는 것이 효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력 측면에서 있어서도 리벨리온이 사피온코리아보다 한발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게다가 SK그룹은 사피온코리아 지분 일부를 매각해 박성현 대표 등 리벨리온 경영진의 1대 주주 지위를 보장함으로써, 리벨리온 위주의 제품개발 ‘로드맵’을 사실상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분간은 리벨리온과 사피온코리아 각각 따로 AI 칩을 개발하는 ‘투트랙’ 체제가 유지될 수도 있다.

사피온코리아의 기존 AI칩 개발 계획을 완전히 뒤엎으면 기업 통합과정에 잡읍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사피온코리아의 기존 협력사들과 계약 파기 문제도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리벨리온 관계자는 “리벨리온과 사피온코리아의 미래 제품 개발 방향성은 앞으로 조율해 나가야 할 문제”라며 “향후 파운드리나 HBM 등 협력사를 어떻게 구성할지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