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준 기자 hjkim@businesspost.co.kr2024-08-27 14: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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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가 내년 3월 본계약을 앞둔 가운데 미국 원자력 발전 기업 웨스팅하우스와 지식재산권 분쟁으로 잡음이 일고 있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직접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대화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상대 태도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어 관련 우려를 잠재우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왼쪽)이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체코 신규 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관련한 브리핑에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과 함께 참가했다. <연합뉴스>
27일 한수원에 따르면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의 체코 원전 수주와 관련해 자신들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이날 웨스팅하우스가 내놓은 보도자료와 관련해 “웨스팅하우스의 주장은 현재 소송과 중재가 진행 중인 사항에 대해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라며 “체코 우선협상대상자를 발표할 때 웨스팅하우스는 같은 주장을 한 바 있다”라고 말했다.
웨스팅하우스는 26일(현지시각) 체코 반독점청에 한수원의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관련해 이의 제기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체코에 수출하려는 한국형 원전 ‘APR-1000’과 그 기반이 되는 ‘APR-1400’이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을 활용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의 APR1000과 APR1400 원자로 설계는 웨스팅하우스가 특허권을 보유한 2세대 ‘시스템80’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라며 “한수원은 원천 기술을 소유하고 있지 않고 웨스팅하우스의 허락 없이 그 기술을 제삼자가 사용하게 할 권리는 보유하지 않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지속적으로 웨스팅하우스 지식재산권 분쟁과 관련해 ‘원만한 합의’를 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그러나 황 사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식재산권 리스크는 사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황 사장은 이달 초 미국 워싱턴DC로 출장을 가 7일과 8일 웨스팅하우스 경영진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황 사장은 지재권 분쟁 상황을 놓고 논의를 진행하는 등 분쟁의 골을 대화와 합의로 메꾸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다만 그러한 황 사장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웨스팅하우스가 체코 정부에 직접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것을 보면 만남의 성과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도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 분쟁 해결을 위해 나섰지만 웨스팅하우스의 이의 제기가 나옴에 따라 그간 노력이 무색해졌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역시 황 사장과 같은 시기에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제니퍼 글랜홈 미국 에너지부 장관을 만나 ‘한·미 에너지 장관 회담’을 진행했다.
안 장관은 현지에서 취재진과 만나 “양국이 협의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업 간에 협의해야 하는 문제”라면서도 “그런 부분을 지원할 수 있는 정부 차원에서의 협력체계를 계속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 또한 24일 “체코 원전 수출에 차질이 없도록 굳건한 한미동맹 기조 하에 미국 측과 협의해 나갈 것”이라며 “한미 정부 간에 원전을 포함해 재생·수소 등 에너지 전반에 관한 협력 필요성이 크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양국 원전 기업 사이 분쟁의 원만한 해소를 위해 여러 경로로 미국 정부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나서서 조율에 나서고 있는 만큼 체코 원전 수주 자체가 무산되는 수준까지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체코 원전 계약 체결이 예정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다소 불투명해졌다.
이와 관련해 웨스팅하우스는 지식재산권의 중재 결과가 가까운 시일 안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웨스팅하우스는 “국제 중재와 미국 내 소송을 통해 지식재산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겠다”라며 “중재 결과는 2025년 하반기 이후에나 나올 것”이라고 바라봤다.
체코 현지 방송 ‘텔레비즈니 노비니(Televizni noviny)’는 26일(현지시각) 보도에서 “두 회사는 2025년 3월까지 화해해야 한다”라며 “그렇지 않으면 프로젝트의 제 때 완료되기 힘들 것”이라고 바라봤다.
다만 체코 현지에서는 웨스팅하우스의 이의 제기 자체가 정당성이 없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체코 뉴스 통신(CTK)에 따르면 라디슬라브 크리츠 체코전력공사(CEZ) 대변인은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 입찰에는 보안 규정이 있다”라며 “입찰 참가자는 선정 과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웨스팅하우스와 대한민국의 인연은 지금은 폐쇄된 한국의 첫 상업용 원전인 ‘고리 1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은 원전을 건설할 기술력이 없었기에 원전 핵심기술을 보유한 웨스팅하우스의 노형을 선택해 공사를 진행했다. 당시 고리 1호기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웨스팅하우스는 대한민국에 원전 핵심 기술들을 전수했다.
한국의 원전 기술은 웨스팅하우스와 협력 아래 발전했다. 다만 대한민국은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거듭하며 기술 지원을 넘어 자체적인 원전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2002년 한국형 원자로 ‘APR-1400’의 개발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국가선도기술개발 과제로 선정된 1992년부터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약 2천 명의 고급 인력과 예산 2330억 원이 투입됐다.
웨스팅하우스의 ‘시스템80+’ 기술이 개발 과정에서 참고되긴 했으나 APR-1400의 모든 설계나 기술 문서는 국내 업체가 개발 및 생산했다. 이외에도 원전설계핵심코드, 원자로냉각펌프, 디지털제어계통 등 APR-1400가 관련된 모든 기술이 대한민국에서 자체 개발됐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