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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억불 받고 기후대응 입 씻은 남아공, ‘개도국 기후재무 감시’ 목소리 커져

손영호 기자 widsg@businesspost.co.kr 2024-07-16 13:3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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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억불 받고 기후대응 입 씻은 남아공, ‘개도국 기후재무 감시’ 목소리 커져
▲ 15일(현지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도 프리토리아에서 열린 '2024 기후회복력 심포지엄'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는 크고센쇼 라목코파 남아프리카공화국 전력부 장관.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기후변화 피해를 명목으로 선진국들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개발도상국들이 부정부패에 발목이 잡혀 에너지 전환을 포함한 기후대응이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개도국 가운데 대표적 온실가스 배출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난 몇 년 동안 약 13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지원을 받고도 에너지 전환에 진전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기후피해 복구, 재생에너지 발전소 설치 등과 관련한 국제기금의 기후재무 지원을 받는 개도국들을 대상으로 자금 집행을 감시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15일(현지시각) 로이터는 남아공이 기후대응 자금을 지원해주는 국가들에 2030년 기후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크고센쇼 라목코파 남아공 전력부 장관은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우리 파트너들에 2030년 목표를 지킬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알렸다"며 "그래도 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남아공은 세계 15대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2020년 기준 4억4천만 톤을 배출했다. 같은해 한국 온실가스 배출량은 6억5622만 톤이었다.

다만 한국 국내총생산(GDP)은 1조6440억 달러(약 2273조 원)으로 남아공 3363억 달러(약 469조 원)와 비교하면 5배 가까이 많다. GDP 대비 배출량으로 따지면 남아공은 온실가스 집약도가 한국보다 3배가량 높은 셈이다.

남아공의 2030년 단기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최대 4억2천만 톤 이하로 2020년 대비 약 5% 감축하는데 불과한 수준이나 이번에 이조차도 지키지 못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을 비롯한 '아프리카 국민회의(ANC)'의 일부 정치인들은 자국의 경제적 여건 때문에 에너지 전환이 늦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른 것으로 파악된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남아공 재무부는 올해 자국이 받는 기후재무 지원 규모가 약 24억 달러(약 3조3252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앞서 남아공은 기후재무 프로그램을 통해 수년에 걸쳐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영국, 미국, 유럽연합(EU) 등으로부터 누적 93억 달러(약 12조8888억 원)를 지원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기록에 따르면 남아공의 석탄발전 의존도는 2020년과 비슷한 80% 이상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천문학적 지원을 받아놓고 에너지 전환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은 것이다.

글로벌 지식 기반 언론 더 컨버세이션은 이처럼 남아공이 변하지 않는 이유가 국가 전체에 만연한 부정부패에 있다고 지적했다.
 
93억불 받고 기후대응 입 씻은 남아공, ‘개도국 기후재무 감시’ 목소리 커져
▲ 남아프리카공화국 음푸말랑가 지역에 위치한 코마티 석탄발전소 앞을 걸어가고 있는 노동자들. <연합뉴스>
롤라 잉글레시 롤츠 남아공 프리토리아 대학 경제학 교수는 더 컨버세이션 칼럼을 통해 "남아공이 친환경 에너지 도입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정부 내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해결하고 국가기관들의 추진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에스컴 등 남아공 전력 기업들은 친환경 전력 확보를 위한 사업안을 정부에 제출했지만 몇 년째 허가를 따내지 못하고 있다. 부족 족벌주의, 비효율적인 관료제, 정치적 혼란, 심각한 경제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은 남아공만이 아니라 기후재무 지원을 받는 개도국 전체에 걸쳐 발생하고 있는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유엔(UN) 산하 패널 '재정적 책임 투명성과 진실성(FACTI)'은 지난 4월 보고서를 통해 2030년 지속가능성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도국들이 재정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달리아 그라비우스카이테 FACTI 공동 대표는 유엔 공식 채널을 통해 "부패하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재정 체계는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자원을 실제로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며 "돈세탁, 부패, 탈세 등으로 자금이 빠져나가는 구멍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FACTI 집계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부패와 탈세 등으로 각국 정부에 발생하는 재정 손실 규모는 세계 GDP의 2.7%, 약 6천억 달러(약 831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캐서린 브라운 스웨덴 스톡홀름환경연구소 연구원은 더 컨버세이션을 통해 “세계 주요 부국들은 2015년 파리협정에 따라 연간 50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자금들을 개도국들에 기후적응 명목으로 지급하고 있다”며 “하지만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이들이 지원한 자금은 필요한 곳에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톡홀름환경연구소는 서방권 부국들이 기후재무 지원을 확대할 것을 촉구하는 동시에 개도국들이 재정 집행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반드시 마련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브라운 연구원은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는 한 방법은 기후재무 프로젝트를 현지화해 주민들이 보다 잘 이해하고 자금 집행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실제로 나미비아에서는 정부가 녹색기후펀드에서 받은 자금을 31개 지역에 쪼개서 소규모 커뮤니티별로 현지화해서 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미비아 기후펀드의 성공 여부는 아직 판가름 나지 않았으나 스톡홀름환경연구소에서는 중간 검토한 결과 기존 사용 방식보다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브라운 연구원은 “기후재무를 고치는 일은 쉽지는 않지만 매우 시급히 처리해야 하는 일”이라며 “실패하면 기후변화의 위협이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손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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