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마음] 전성기를 맞이한 우리는, 대체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 우리나라는 정말, 유독 살기 팍팍한 곳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비즈니스포스트] 한국에서만 계속 살아온 사람이 한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몇 년 새 유행어를 넘어 이미 일상어가 되어버린 '헬조선' 같은 자조적인 표현을 볼 때마다, (그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는 현실에 공감을 하면서도) 전세계의 보편적 부조리마저 국내산으로 둔갑(?)한 부분도 존재하는 건 아닐지가 궁금했다. 

우리나라는 정말, 유독 살기 팍팍한 곳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러던 중 미국에서 15년 가까이 살고 있는 지인 A를 얼마 전 한국에서 만났다. 내가 느끼기에 A는 미국에 대한 우월감에도, 한국에 대한 애국심에도 지나치게 취해있지 않은 데다가, 주기적으로 꾸준히 한국을 방문하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객관적인 입장에서 한국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궁금함은 간단했다. 

우리나라가 유독 살기 팍팍한 곳이 되어가고 있다는 징후가 A에게도 관찰될까? 

속내를 일단 감추고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를 요약했으며, 글 게재에는 A의 동의를 얻었다.)
 
나: 1년에 한 두 번씩은 한국에 오잖아. 올때마다 뭔가 변하는 게 느껴질 것 같기도 한데, 어때? 

A: 이번엔 뭐랄까... 사람들이 뭔가 다 화가 나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 가게의 직원들이 특히. 이유없이 차갑고 불친절하다고 해야하나? “감사합니다” 라고 해도 대답도 잘 안하고.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커피를 건네고. 그리고 사람들이 왜 더 뚱뚱해진 것만 같지? 옷차림이 펑퍼짐해진 것 같은데 그래서인가 싶기도 하고. 

나: 스키니진 같은 타이트한 옷을 입던 유행이 지나고, 이제는 펑퍼짐한 옷이 대세가 되었지. 

A: 그렇구나. 사람들이 서로 아주 비슷하게 옷을 입는다는 건 한국에 올 때마다 항상 느끼지. 스키니진이 유행할 땐 다 스키니진, 블랙패딩이 유행할 땐 다 블랙패딩... 
 
나: 맞아. 그리고 어떤 옷이 유행할 땐 다른 스타일의 옷은 거의 팔지를 않아서 구하기도 힘들어. 사람들이 다 화가 많이 나있는 것 같다는 건 흥미로운 감상이네. 동아시아 사람들이 보통 낯선 사람을 굳이 밝은 표정으로 대하지 않는 편이긴 하지. 미국 사람들은 마주치기만 해도 인사를 건네고 꼭 스몰 토크를 하잖아. 나는 사실 우리나라 문화가 더 편하긴 해. 늘 밝은 척 하는 게 더 힘들 것 같기도 하고. 

A: 맞아. 나도 처음에 미국에 갔을 때는 적응이 힘들었어. 그런데 익숙해지고 나니까, 한국에 들를 때 자꾸 모르는 사람한테 웃다가 의아함이 가득한 시선을 받곤 했지. 그건 문화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요즘에는 무표정을 넘어 뭔가 더 화가 나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아. 하나같이 행복하지 않은 표정들이라고 해야 하나. 

나: 음... 

A: 사실 단군 이래 우리나라가 전세계에서 이렇게 잘 나간 적이 없잖아. 미국에서 느끼는 한국의 위상이 해가 갈수록 높아지는 걸 매번 피부로 느낄 정도거든. 완전 전성기같아. 그런데 내가 매년 올 때마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드는 느낌은 왜 그 반대인지 모르겠어. 미국이 좋고 한국이 나쁘다는 뜻은 전혀 아니야. 미국이야말로 문제점이 너무 많은 나라지. 다만 그냥 뭔가 이상하고, 안타깝고 슬퍼.  

나: 자살률과 출생률만 떠올려봐도, 분명 우리나라에 뭔가가 있는 것 같긴 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네 번째로 자살률이 높고, OECD 회원국 중에서는 가장 높다는 것, 그리고 출생률은 세계에서 제일 낮다는 걸 생각하면... 그리고 2022년에는 20대의 절반 이상이 자살로 사망했고. 10세에서 24세 사이 사람들의 자살률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고. 

A: 하... 대체 원인이 뭐야? 네가 정신과 의사잖아! 

나: 우리나라의 항우울제 처방률이 OECD 회원국 중에서 세 번째로 낮다고 해. 정신적 어려움이 있을 때 병원을 찾는 행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이런 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지.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 지나치게 긴 노동 시간, 사회적인 고립 등등... 이런 것들을 추가로 얘기하지.1)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는 분위기도 삶을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대학생들이 1~2년만 취업이 늦어지거나 이력서에서 공백이 생기는 걸 두려워하는데, 그 두려움이 그리 비현실적인 것도 아니야. 실제로 나이가 조금만 많아지면 채용하기를 꺼려하는 곳들이 대부분이거든. 

A: 나는 미국을 전혀 찬양하고 싶지 않고 미국이야말로 부조리한 점이 아주 많은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나이를 가지고 차별하는 일이 굉장히 적은 건 분명한 것 같아. 나이를 이유로 사람을 채용하지 않는 일은 정말 드물고. 

나: 그렇다고 하더라. 그리고 나는 사실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외국 사람들, 특히 백인들이 “한국은 이게 문제고 저게 문제다”라고 하고 그걸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우리나라는 이래서 안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얼마 전 한 미국 작가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유교의 단점인 수치심과, 자본주의의 단점인 물질주의가 결합”되어 악영향을 주었다고 정리했는데2), 연구가 더 필요하겠지만 직관적으로는 여기에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되더라고.  

어쨌든... 지나치게 높은 자살률과 지나치게 낮은 출생률이 동시에 존재하는 나라의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게 분명해. 슬픈 일이야. 네가 다시 한국에 올 때쯤 사람들의 표정이 좀더 밝아지길 바란다면 내가 너무 마음이 급한 거겠지? 그렇다면 한 10년쯤 뒤에는 사람들도 화가 덜 나 있고, 무엇보다 삶을 스스로 마감하는 사람만큼은 많이 줄어들면 좋겠어.  

A: 나도 정말 그러길 바라. 
1) ‘Absolutely Insufficient’: How Data Restrictions and Funding Constraints Hamper South Korea’s Suicide Prevention Efforts TIME 2024.6.12.
2) 美작가 "세계서 가장 우울한 한국, 유교와 자본주의 단점만…희망은" 조선일보 2024.1.28.



A의 의견은 학술적으로 검증된 연구도 무엇도 아닌, 그저 인상비평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줄곧 시치미를 떼며 A에게 질문했던,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 역시 사실은 A와 비슷한 느낌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둘다, 우리나라가 전성기에 걸맞는 대단히 행복한 곳이 되는 것은 둘째치고 그저 삶을 스스로 거두고 싶은 마음만이라도 줄어드는 곳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를 수료했다. 광화문에서 진료하면서, 개인이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언니의 상담실', '출근길 심리학'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