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L 완성차업체와 무더기 라이선스 협업 추진, K배터리 설 공간 좁아지나

▲ 4월2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 자동차 전시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CATL의 기린(Qilin)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화면 하단 붉은 표지판에는 미국 타임지가 CATL의 기린 배터리를 2022년 최고의 혁신 상품으로 선정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세계 1위 배터리 기업인 CATL이 10곳이 넘는 완성차 기업들과 라이선스 제공 방식의 협업을 논의하고 있다.

이는 조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제재를 우회해 CATL의 미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할 수 있는 통로로 여겨진다. 북미 시장을 선점하려던 한국 배터리 3사로서는 부담이 커지게 됐다. 

6일(현지시각) 전기차 전문매체 CNEV포스트는 CATL 대변인과 인터뷰를 통해 “현재 약 12곳의 자동차 제조업체와 CATL 사이에 배터리 기술 라이선스 방식(LRS, License Royalty Service)을 통한 협업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라이선스 방식은 CATL이 배터리 제조기술 및 생산 장비를 건설하는 기술을 제공만 하고 설비를 신설하는데 들어가는 자본은 자동차 기업이 직접 투자하는 형태를 말한다. 

현지 기업과 지분을 나눠 투자해 합작법인을 세우는 일반적 협력 형태와 차별화된다.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액공제 시 중국 자본이 일정 비율 이상 투자된 설비에서 생산된 제품은 제외하다 보니 이를 우회하는 시도로 읽힌다.

CNEV포스트는 “CATL이 완성차 업체들과 협력을 통해 미국의 복잡한 규제 환경을 헤쳐 나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포드의 미시간주 마샬 배터리공장이 CATL과 라이선스 형태로 신설되고 있는 대표적 생산 설비다. 

중국 매체인 레이트포스트에 따르면 GM도 CATL과 라이선스 방식으로 북미에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제조 공장 설립을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기차 세계 1위 기업인 테슬라 또한 CATL과 배터리 개발 협력안을 논의한다는 보도가 나온다. 

미국의 대표적 완성차 업체들 다수가 CATL과 라이선스 방식의 협업을 진행하고 있거나 향후 이러한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CATL 완성차업체와 무더기 라이선스 협업 추진, K배터리 설 공간 좁아지나

▲ CATL은 전 세계로 생산 거점을 넓히고 있다. 사진은 5일 헝가리 데브레첸에 위치한 CATL의 배터리 공장 건설 현황. <연합뉴스>


CATL은 현재 세계 배터리 사용량 점유율 기준 1위 업체다. 한국 배터리 3사인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그리고 삼성SDI 점유율을 모두 합쳐도 CATL에 미치지 못한다. 

시장 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1분기에도 한국 배터리 3사의 합산 점유율은 23.5%로 전년 동기 대비 2.8% 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CATL은 같은 기간 2.9% 포인트 상승한 37.9% 점유율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더구나 현재까지 CATL이 확보한 점유율은 북미 지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전에 이뤄낸 결과다. 

이러한 상황에서 CATL을 겨냥한 미국 정부의 빗장이 풀리면 한국 기업들의 점유율 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그동안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완성차 업체들을 고객사로 확보한 뒤 설비 투자를 강화하며 CATL에 맞서왔다. 

그러나 CATL이 ‘라이선스’ 방식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다수 완성차 업체들과 설비 투자를 이뤄내면 한국 배터리 기업들로서는 북미지역에서 고객사를 추가로 유치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CATL이 전기차 주요 시장 가운데 한 곳인 미국 진출을 꾸준히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한국 기업들의 사업 확장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쩡위친 CATL 회장과 인터뷰를 통해 “CATL은 미국 내 사업 확장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미중 갈등 등 정치적 변수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GM이나 포드 모두 전기차 수요 증가세 둔화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중저가형 LFP 배터리 수급을 늘리는 점 또한 CATL과 협력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요소로 꼽힌다.

CATL의 주력 배터리는 LFP 배터리인 반면 한국 배터리 3사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고가인 3원계(NCM) 배터리에 집중해 왔다. 

라이선스 방식이 가진 다른 장점도 부각된다. 한국 배터리 3사가 주로 선택한 합작투자 방식과 비교해 초기 시설투자 비용이 적어 리스크를 덜 수 있다.

완성차 기업들이 라이선스 방식을 활용하면 자체 브랜드 배터리를 개발해 내세울 수 있다는 점도 CATL과 협업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내연기관차에서 엔진에 해당하는 배터리를 자동차 기업이 직접 만든다면 기술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데다 생산 경쟁력도 높일 수 있어서다.

결국 전방산업인 전기차가 캐즘(신기술 제품의 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수익성 악화를 겪는 한국 배터리 3사에게 북미 진출을 본격화하는 CATL이 추가적 경쟁 요소로 자리할 공산이 크다.

CATL 대변인은 CNEV포스트를 통해 “전기차 시장 성장 잠재력은 여전히 크다”라며 “글로벌 파트너 업체들과 다양한 협력 모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