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재건축 시장의 상황이나 금리, 인플레이션 등 거시적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재건축 투자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가 떠오른다. 사진은 서울 양천구 목동 일대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열흘 붉은 꽃이 없다더니 오랜 기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던 서울 재건축 시장에도 황혼이 찾아오고 있다.
집값을 능가하는 재건축 분담금에 아연실색하는 단지가 등장하는가 하면 재건축 시장의 절대강자라 할 압구정에서도 동일 평형대로 분양을 받으려면 조합원 분담금 수억 원을 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는 일이 나타난다.
치솟는 공사비와 고금리 기조 지속 가능성을 고려할 때 재건축 투자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는 셈이다.
집값 보다 조합원 분담금이 더 많은 상계주공 5단지
최근 서울 재건축 시장을 놀라게 한 단지가 있으니 상계주공 5단지가 그 주인공이다. 상계주공 5단지는 최근 호가가 4억500만 원선까지 떨어졌다. 전용 31㎡ 단일 평형으로 이뤄진 840가구 규모의 이 아파트 단지는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한 때 이 아파트는 대세상승의 정점이던 2021년 8억 원에 실거래가 체결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2022년부터는 대세하락의 직격탄을 얻어맞고 4억 원대로 주저앉았다.
설상가상으로 재건축 분담금이 조합원들을 기함하게 만들고 있다. 조합 집행부는 지난해 예상 공사비 등을 근거로 분담금을 추산했는데, 소유주가 전용 84㎡ 새 아파트를 받으려면 가구당 분담금이 5억 원에 달할 것으로 계산됐다.
지금의 집값 보다 오히려 재건축 분담금이 더 높은 것인데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당해 사업장은 시공사 교체 추진, 시공사의 맞불 소송 등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사업기간이 길어질수록 조합원들의 분담금 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 자명하기에 상계 주공 5단지의 앞날에는 난관이 ‘첩첩산중’이다.
재건축 시장의 황제 압구정조차 분담금을 내야 하는 처지
재건축 시장이 봉착한 객관적 조건이 엄혹하기 이를 데 없다는 건 재건축 시장의 절대강자라 할 압구정이 보여준다. 재건축 시장의 황제라 할 압구정에서도 조합원들이 분담금을 내야 하는 처지와 직면하고 있다.
압구정 3구역 조합과 시행사가 제시한 추가 분담금에 따르면 현재 30평형대(평균 34.7평)를 보유한 조합원이 신축 아파트 34평형을 받으려면 3억300만 원을 내야 한다. 40평형은 7억 6천만 원, 54평형은 18억 7천만 원이다.
가장 넓은 101평형의 추가분담금은 무려 55억 원이다. 평수 80평형대(평균 86.88평)를 보유한 소유주이더라도 같은 평형의 아파트를 받으려면 18억3천만 원을 추가 분담금으로 내야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압구정을 필두로 한 강남에서는 재건축 조합원이 동일한 평형을 분양받으면서 분담금을 낸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웠다. 동일 평형을 무상으로 분양받는 건 물론이거니와 조합 청산 후에 현금을 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나간 듯 싶다.
폭등하는 공사비와 장기 지속 가능성이 높은 금리의 협공에 신음하는 재건축 시장
앞에서 재건축 시장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케이스를 살펴봤다. 재건축 시장이 이처럼 곤경에 빠진 건 무엇보다 부동산 시장의 대세하락 탓이 크다. 하지만 그 뿐만은 아니다. 재건축 시장의 숨통을 조이는 복병이 두 개 더 있으니 폭등하는 공사비와 장기 지속 가능성이 높은 금리가 그들이다.
공사비가 폭등하면 당연히 분양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고, 이는 일반 분양을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조합원 분담금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공사비의 폭등은 높아지는 분양가로 대략 가늠할 수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민간 아파트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1736만 원으로 전년에 비해 190만 원 올랐다. 이른바 ‘국민평형(전용면적 84㎡·34평형)’으로 따져봤을 때 1년 새 분양가가 약 6460만 원 오른 셈이다.
특히 서울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3.3㎡당 분양가가 3000만원을 웃돌았다. 민간 아파트의 3.3㎡당 상승 폭을 보면 서울은 2022년 12월 2978만 원에서 지난해 12월 3495만 원으로 517만원 올라 가장 증가 폭이 컸다.
시장참여자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인하도 점점 시점이 뒤로 밀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 매우 신중한데다 미국에서 나오는 물가 관련 거시지표들이 여전히 매우 불안한 탓이다.
미 노동부 통계국은 13일(현지시간)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과 비교해 3.1% 올랐다고 밝혔는데 이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유력 매체와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2.9%보다 높은 수치다. 지난해 12월 3.4%로 시장 예상치(3.2%)를 웃돈 데 이어 1월에도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물가상승이 일어난 것이다.
심지어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을 뺀 근원 CPI도 두 달 연속 시장 예상치를 넘어섰다. 1월 근원 CPI는 전년과 비교해 3.9% 상승해 시장 예상치(3.7%)보다 높았다.
구조적 인플레이션이 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일시적 인플레이션으로 간주하며 금리 인상에 실기한 과오가 있는 연준 입장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는 섣불리 기준금리를 인하했다가 다시 인플레이션이 살아나는 사태다.
따라서 연준으로선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완승했다는 확신을 주는 데이터들이 경향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한 기준금리 인하에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재건축 투자에는 매우 신중해야
부동산 시장의 대세하락에다 공사비의 폭등, 고금리 기조의 장기화 등의 악재들이 쌓인 재건축 시장에 지금 들어가는 건 극히 신중해야 한다. 재건축 조합의 조합원이 된 시점에 따라 수익률이 천차만별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래 전에 조합원이 되어 수익률 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조합원의 입장과 이제 조합원 지위를 양도받으려는 사람의 입장은 같을 수 없다. 어떤 지표로 봐도 현 시점에서 재건축 조합원이 되는 건 투자의 관점에서 현명하지 않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땅을 둘러싼 욕망과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토지정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투기공화국의 풍경’을 썼고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을 함께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