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나영 신세계 VMD 담당은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인증샷 성지로 볼리는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꾸미는 역할을 한다. |
[비즈니스포스트] “우와, 진짜 예쁘지 않아?”
서울시 중구 회현지하쇼핑센터 1번 출구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얼굴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쌀쌀한 날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두 신세계백화점 본점 외벽에 설치된 ‘미디어 파사드’를 보러온 이들이다.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는 건축물 외면의 가장 중심을 가리키는 '파사드'와 '미디어'의 합성어로, 건물 외벽 등에 LED 조명을 설치해 미디어 기능을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인증샷 성지’로 불리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이곳을 미디어 파사드로 꾸민 인물이 바로 유나영 신세계 VMD 담당이다. VMD는 ‘비주얼머천다이저’의 약자로 브랜드 콘셉트에 맞춰 제품을 전시하는 등 매장 전체를 꾸미는 직업이다.
14일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신세계 본사 라운지에서 유 담당을 만났다.
98학번인 유 담당은 건축학을 전공했다. 전공 선택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이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이과형 인간’이었다며 웃었다.
“건축학은 인간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학문이에요. 그 점이 마음에 들어 학창 시절부터 건축학을 배우고 싶었어요. 건축학을 배우면서 항상 사람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들을 배웠는데, 지금도 일할 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유 담당이 신세계 VMD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패션 기업 이랜드에서 4년, 삼성물산 패션부문에서 5년 동안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지속성을 가지는 디자인을 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유 담당은 시대 배경, 실시간으로 변하는 계절 등을 반영한 생동감있는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침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패션 편집숍 ‘분더샵 청담’에서 VMD 경력직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렇게 신세계에 입사한 것이 2013년이다. 2018년부터는 신세계백화점에서 일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 미디어 파사드를 선보이기 위해 매년 2월부터 준비를 시작한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10개월 정도 되는 긴 작업인데 몸과 마음을 긴장시키는 그 오랜 시간을 어떻게 버티는지 궁금했다.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듣는 편이에요.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합니다. 영화를 보는 것도 즐기구요.”
좋아하는 영화 감독으로는 폴 토마스 앤더슨을 들었다. 우리나라 감독 가운데는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을 좋아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감명깊게 봤다고 한다.
▲ 2021년은 신세계백화점 미디어 파사드에 있어 큰 변환점이 된 시기다. 본점 외벽에 붙어있던 광고를 없앴다. 올해 상영 중인 미디어 파사드. <비즈니스포스트> |
2021년은 신세계백화점 미디어 파사드에 있어 큰 변환점이 된 시기다. 본점 외벽에 붙어있던 광고를 없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시즌 광고 가격은 평소의 2배 정도 된다. 광고를 떼고 크리스마스 시즌 내내 장식으로만 꾸민다는 것은 신세계백화점으로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유 담당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지날 때마다 아쉬운 부분이 있어 위에 보고를 올렸다. 외벽 전체를 써보고 싶다고.
“광고가 붙어 있으면 아무래도 광고에 눈길이 가게 되잖아요. 몰입도도 떨어지고. 광고가 없으면 훨씬 더 임팩트가 있고 영상을 보는 집중도가 다를 거라는 생각에 늘 아쉬움이 있었어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임원들의 허락이 떨어졌다.
“광고에서 얻는 당장의 수익보다 더 큰 것을 보신 것이 아닐까해요. 고객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드리면 나중에 더 큰 수익이나 기업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겠냐고 생각하신 것 아닐까요.”
유 담당은 광고를 뗀 2021년을 ‘올해 미디어 파사드 키워드는 이것’이라고 내밀 수 있는 명확한 콘셉트가 생긴 첫 해로 기억했다.
2021년은 유 담당에게도 특별한 해다.
그 해 tvN 예능 ‘유퀴즈온더블록’(유퀴즈)에 출연해 유명세를 탔고 백화점 모든 임직원 가운데 두드러진 성과를 낸 3명을 뽑는 ‘뉴챌린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유퀴즈에 출연했을 당시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선물로 스노우볼을 받았던 추억, 아직 뉴욕에 가보지 못한 얘기 등을 풀어놓은 적이 있다.
올해 8살이 된 아들에게도 스노우볼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줘 본 적이 있는데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은 ‘춤추는 산타인형’을 점찍어 뒀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허기워기’ 인형을 선물해 줬는데 아들이 너무 좋아해서다.
유퀴즈 출연 이후에 뉴욕은 다녀왔을까. 그랬다.
“지난해 6월쯤 마침 뉴욕으로 출장 가는 직원들이 있었어요. 유퀴즈를 보신 임원분들이 ‘유나영씨 아직 뉴욕 못 가봤어? 이번 출장 명단에 넣어. 한 번 다녀와’ 이렇게 돼서 가보게 됐습니다.”
처음 가 본 뉴욕은 어땠냐는 질문에 유 담당은 너무 좋았다고 웃었다.
그가 보는 경쟁사들의 크리스마스 장식은 어떨지 궁금했다. 백화점업계는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각자의 장식으로 고객 끌어모으기 경쟁이 치열하다.
“더현대서울이나 롯데백화점은 좀 더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신세계백화점은 웅장하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면 경쟁사들은 조금 더 고객들의 마음을 터치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느낌이랄까요.”
스토리텔링에 대한 부분은 유 담당이 늘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본점 1층에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가 사용하고 있는 쇼윈도가 있는데 그곳을 활용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요. 신세계백화점 미디어 파사드는 항상 건너편에서 보는 것이 너무 아쉽거든요. 건너편에서 미디어 파사드를 감상하고 본점으로 건너오면 영상과 연계된 연출물들이 쇼윈도에 들어가 있는 거에요. 고객들이 여운을 가지고 더 감동적으로 감상하실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하지만 현재는 쇼윈도를 ‘에루샤’ 매장이 쓰고 있기 때문에 엄두를 낼 수 없다고 한다.
더현대서울에서 준비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려면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신세계백화점은 백화점 밖에서 진행되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다. 어떻게 하면 고객을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다.
많은 고민 끝에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처음으로 본관과 신관을 연결하는 다리에 ‘크리스마스 마켓’을 만들었다. 63㎡(19평) 남짓한 공간에서 오너먼트, 스노우볼, 오르골 등 크리스마스 용품을 판매한다.
유 담당은 꼭 한 번 방문하기를 권했다.
▲ 2023년 11월13일은 신세계백화점 본점 휴점일이었음에도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모여있었다. 인증샷 찍기 좋은 장소로 알려진 본점 건너편 회현지하쇼핑센터 1번 출구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인터뷰 내내 VMD 일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VMD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을 물었다.
“고객분들이 반응해주실 때가 가장 좋아요. 본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실 때나 인스타그램에 많은 사진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너무 좋고 보람을 느껴요. 사실 그것 때문에 일하는 것 같아요.”
유 담당은 고객들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본점에 종종 나간다. 자신의 바로 옆에서 ‘이거 유퀴즈 나왔던 그 사람이 만든거잖아’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재밌기도 하다고. 그렇다고 ‘제가 바로 그 사람이에요’라고 자랑하진 않는다며 웃었다.
신세계에서 VMD 일을 한지 어느덧 11년차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
“2020년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기술도 좋지 않았고 미디어 오류나 오작동도 많던 시절이었습니다. 오후 5시가 점등이었는데 점등날 거의 오후 5시까지 작업을 했어요. 어쨌든 점등은 해야하잖아요. 오후 5시에 점등을 했습니다.”
현장에는 당시 신세계백화점 대표이사였던
차정호 사장이 나와 있었다.
“기차 두 대가 마주치면서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이었는데 기차가 마주치더니 쭉 올라가는게 아니라 덜그럭덜그럭 거리는거에요. 영상 오류가 난 거죠. 차 사장님이 허허 웃으시며 돌아가시는데 손발이 다 떨렸습니다. 그 순간 현장 분위기와 기분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아요.”
유 담당은 지금도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한다. 팀원들에게도 항상 강조하는 얘긴데 ‘신세계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만의 스타일로 구축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자’는 그가 늘상 팀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유 담당은 올해 신세계 인사에서 임원급인 담당으로 승진했다. 신세계그룹이 VMD팀에 걸고 있는 기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신세계 VMD로서의 목표를 물었다.
“제 목표는 결국 ‘고객’인 것 같아요. 고객이 보시면 기분 좋을 수 있고 기쁨을 드릴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고 싶어요. 저도 외국 백화점 VMD들이 디자인해 놓은 것을 보면 기분 좋고 즐거워지는 순간들이 있거든요. 저도 고객들에게 그런 디자인을 선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순수한 의도로 디자인하는 VMD가 되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