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작품’ 하만 실적 효자로 탈바꿈, 삼성전자 인수합병 움직임 빨라진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인수를 주도한 하만이 실족 효자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인수를 주도했던 하만이 ‘미운 오리’에서 ‘실적 효자’로 탈바꿈하면서 삼성전자가 오랜 침묵을 깨고 인수하게 될 기업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7년 하만 인수를 마지막으로 6년째 대형 인수합병 소식이 없는데 최근 차량용 반도체, 패키징(반도체와 기기를 연결하기 위해 포장하는 후공정), 로봇 분야에서 인수합병할 만한 기업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2023년 상반기 말 기준 현금 보유량이 80조 원에 육박해 실탄도 충분하다.

3일 전기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100% 전장 자회사인 하만이 2023년 들어 기대 이상의 실적을 올리면서 이재용 회장의 선구안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하만은 2023년 3분기 역대 분기 최대인 45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2022년 3분기보다 45.2% 늘어난 수치로 영업이익률도 11%까지 올랐다.

하만은 올해 영업이익이 1조 원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2022년 영업이익은 8800억 원이었다.

하만은 이재용 회장이 2017년 전장사업을 삼성전자의 미래먹거리 가운데 하나로 점찍고 인수를 주도해 품에 안은 기업인데 2020년까지는 저조한 실적을 거두면서 ‘실패한 인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되고 최근 자율주행차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따른 전장사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삼성전자가 하만을 인수하기 위해 쓴 80억 달러(약 9조3천억 원)가 전혀 아깝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3분기 부문별 실적에서 시장의 예상을 상회한 곳은 하만, 삼성디스플레이, MX사업부”이라며 “특히 하만은 카오디오, 포터블 오디오 제품 출하 증가와 인수 비용 반영 완료로 3분기 최대 실적을 달성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하만의 성과가 궤도에 오르면서 이재용 회장의 다음 인수합병 행보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7년 글로벌 전장기업 하만 인수를 마지막으로 6년째 대형 인수합병이 없었다.

올해 상반기 국내 로봇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 14.99%를 868억 원에 매입하기도 했지만 규모가 크지 않으며 아직 완전히 인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재용 회장 체제가 1년이 지나며 안정화된 만큼 대형 인수합병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 겸 대표이사 부회장은 2023년 1월 미국 라스베거스에서 “인수합병(M&A)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조만간 가시적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인수합병 대상으로는 우선 반도체 기업들이 거론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에서 시스템반도체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만큼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단숨에 끌어올려줄 기술을 갖춘 기업이 필요하다.
 
‘이재용 작품’ 하만 실적 효자로 탈바꿈, 삼성전자 인수합병 움직임 빨라진다

▲ 서울 서초구 삼성 서초사옥의 삼성 깃발. <연합뉴스>


이에 따라 차량용 반도체업체인 1~3위 기업인 NXP, 독일 인피니온,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이 꾸준히 매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2022년 대만 언론에서도 삼성전자가 반도체기업을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다만 퀄컴이 2018년 NXP 인수를 시도했다가 중국 정부의 불허로 무산됐던 점을 고려하면 반도체 업체 인수합병이 만만치는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초에는 삼성전자가 세계 2위 차량용 패키징(후공정) 업체인 앰코테크놀로지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경쟁사인 TSMC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후공정 기술을 보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 관계자는 “삼성뿐만 아니라 어떠한 업체와도 인수 관련한 검토가 진행된 바가 없고 삼성으로부터 인수 제의를 받은 사실도 없다”고 해명했고 그 뒤로도 구체적인 소식은 나오지 않고 있다.

로봇도 인수합병이 이뤄질 가능성 있는 분야로 거론된다.

삼성전자의 레인보우로보틱스 인수는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이미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율을 59.94%까지 늘릴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콜옵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해외 로봇기업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과거 현대자동차가 약 1조 원을 들여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도 한때 인수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전장 분야에서 추가 인수합병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전장 기업을 인수한다면 하만뿐만 아니라 계열사인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와도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9월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와 독일 뮌헨에서 열린 유럽 최대 모터쇼 ‘IAA 모빌리티 2023’에 처음으로 참가해 첨단 전장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대형 인수합병을 성사시킬 자금도 충분하다.

삼성전자의 2023년 상반기 말 현금 보유량은 79조9198억 원으로 1년 전 39조5831억 원 대비 101.9%나 증가했다. 네덜란드 반도체장비 기업 ASML 지분을 매각하는 등 단기금융상품을 대거 처분해 현금 유동성을 늘린 것이다.

이는 단기적으로 반도체업황 악화에 대비한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대형 인수합병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다각도로 인수합병을 검토하고 있지만 전 세계의 지정학적 갈등 심화가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올해 9월6일 “삼성전자는 충분한 자본력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이라며 “다만 지정학적인 긴장이 삼성전자의 인수합병 전략의 방향을 바꿨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