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부진에 배터리소재 성장통, 신학철 LG화학과 김교현 롯데케미칼 동병상련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왼쪽)과 김교현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이 석유화학 부진과 배터리 소재 성장통이라는 동병상련에 놓여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지난해 3분기부터 본격화한 석유화학 불황이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가운데 국내 석유화학 메이저들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배터리소재 시장도 가격 하락과 공급 과잉으로 성장통을 겪고 있다.

이에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배터리소재를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과 김교현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은 기존 사업과 신사업 모두에서 어려움에 직면하며 동병상련의 상황에 처했다.

22일 증권업계 의견을 종합하면 최근 업황 부진의 장기화를 근거로 석유화학 시장을 향한 투자 매력이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신 부회장과 김 부회장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두 증권사는 석유화학 산업을 향한 투자의견을 낮춰 잡았다. 18일 NH투자증권은 긍정(Positive)에서 중립(Neutral)으로, 16일 하나증권은 비중확대(Overweight)에서 중립으로 하향했다.

두 증권사뿐 아니라 관련 업계 전반의 의견까지 더해도 석유화학 불황은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하반기 중국의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개선됐지만 공급 증가가 이를 상쇄하고 있고 원가를 결정짓는 유가도 높은 수준으로 유지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중국의 8월 에틸렌 수요량은 420만 톤으로 1년 전보다 26%, 전월보다 10% 증가했고 프로필렌, 폴리에틸렌 등 다른 대부분의 제품 수요 역시 늘었다. 9월에도 수요 증가세가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시장에선 제품 공급 역시 늘고 있다. 중국의 8월 에틸렌 공급량은 399만 톤으로 1년 전보다 27%, 전월보다 9% 증가했다. 다른 제품들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수요량 증가만큼 공급이 늘면서 업황이 회복되지 않는 것이다.

석유화학 제품의 원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유가는 여전히 배럴당 9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게다가 중동의 지정학적 불확실성은 계속 유가 상승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영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요 강세에도 불구하고 저조한 수익구조는 '석유화학 산업이 직면한 문제가 공급 측면'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며 “당장 공급 축소를 기대하기 어려운데 더 큰 폭의 수요 개선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짚었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전까지 유가의 배럴당 100달러 가능성이 제한적이라는 관점에서 석유화학 산업에 긍정적 시각을 제시했다”며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력충돌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유가 상승 리스크가 함께 확대되고 있다”고 바라봤다.

신 부회장과 김 부회장의 고민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각각 양극재와 동박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는데, 배터리소재 시장 상황도 우호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배터리소재 업황은 유럽발 수요 부진과 함께 제품 가격 하락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3분기 양극재 수출 판가는 킬로그램(kg)당 42.5달러, 동박 수출 판가는 14.2달러를 나타냈다. 1년 전보다 각각 14%, 6% 감소한 것이다.

정용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금속 가격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는데 금속 가격에 관한 노출도가 높은 양극재 업체들은 평균판매가격(ASP) 하락으로 부진한 실적이 예상된다”며 “또 국내 동박 업체들은 수요가 부진한 유럽 의존도가 높아서 실적 회복 속도가 매우 더딜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업황 탓에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두 회사는 실적 악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 1, 2위 석유화학 업체를 이끄는 신 부회장과 김 부회장이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인 것이다.

LG화학 석유화학 부문은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3분기 연속 적자를 보고 있다. 일부 증권사들은 LG화학 석유화학 부문이 3분기에 흑자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그 폭은 100억 원대 초반으로 그리 크지 않다.

양극재의 실적 기여도가 높은 첨단소재 사업은 올해 3분기 2019년 이후 처음으로 분기 영업손실을 냈다는 추산도 나온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2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5분기 연속 적자를 볼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다. 3분기에는 6분기 만에 흑자전환했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지만 전반적 상황이 반전을 기대할 만큼 좋지는 못하다.

차가운 석유화학 업황 아래 야심차게 인수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동박 사업 역시 분기별 영업이익이 10억 원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신 부회장과 김 부회장 모두 그룹 오너의 두터운 신임 아래 배터리소재 사업 육성을 흔들림 없이 추진 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에 석유화학은 기업의 뿌리, 배터리소재 사업은 미래 열매라고 볼 수 있다.

신 부회장의 LG화학 대표 취임은 LG그룹의 구광모 체제 아래 첫 번째로 외부에서 영입된 인사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신 부회장은 배터리 사업 안착,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2022년 3월 연임에 성공했다.

현재 LG화학은 석유화학 사업에 이어 배터리 사업을 완전한 하나의 핵심 축으로 완성했다. 신 부회장은 여기에 배터리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양극재 중심 배터리소재 사업 확장에 힘을 싣고 있다. 

LG화학의 배터리소재 사업은 대표이사에 올랐던 2018년 당시 소재·부품 사업의 전문성을 높게 평가받은 신 부회장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2019년부터 롯데그룹 화학군 총괄대표를 겸하고 있는 김 부회장은 롯데그룹 주요 4개 사업군(유통·화학·식품·호텔)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사업군 총괄대표를 맡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신뢰 아래 2017년부터 롯데케미칼 대표이사로도 3번째 임기를 보내고 있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 실적 악화, 롯데건설 지원으로 불거진 재무부담 우려 등에도 2조7천억 원을 들여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를 밀어붙일 정도로 배터리소재 사업의 ‘퀀텀점프’에 의지가 강했다.

석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굳건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신사업 추진에는 흔들림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업황 부진과 맞물려 실적이 눈에 띄게 나아질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