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총수 '국감 올해만 같아라', 정치권 출석 요구 자제에 해외출장도 많아

▲ 올해 국정감사장에서는 재벌 총수들을 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주요 그룹 총수들이 국회의원들 앞에서 추궁당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이 국감 1차 증인 명단에서 제외됐을 뿐만 아니라 21일부터 사우디·카타르를 방문하는 경제사절단에도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그룹 총수들이 빠진 국감을 두고 일각에서는 ‘맹탕 국감’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관행으로 굳어지던 ‘회장님 길들이기 혹은 망신주기’가 사라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시각도 있다.

16일 국회 14개 상임위원회에서 2주차 국정감사가 시작된 가운데 매년 각종 사회적 논란으로 국회에 불려왔던 10대그룹 총수들의 모습이 예년과 달리 보이지 않으면서 그 이유를 두고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모두 국감 1차 증인 명단에서 제외됐다. 추후 증인 명단에 오를 수도 있지만 총수들의 일정을 감안하면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자 ‘2030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지원 민간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0월 들어 프랑스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강행군을 펼치고 있다.

최 회장은 10월9일 파리에서 열린 ‘2030 부산세계박람회 공식 심포지엄’과 외신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뒤 13일에는 귀국해 서울에서 에스토니아와 카리브공동체(CARICOM, 카리콤) 정상을 만나 부산엑스포 유치 지지를 요청했다.

16일부터는 사흘 동안 파리에서 SK그룹 계열사 경영진과 ‘최고경영자(CEO) 세미나’를 열고 핵심 사업의 글로벌 전략을 논의한다.

구광모 회장도 10월 남미와 아프리카 등에서 부산엑스포 유치전 일정을 소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회장과 정의선 회장은 아직 명단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10월21~24일 사우디 방문하는 경제사절단에 포함돼 ‘네옴시티’ 수주전에 힘을 보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재계 총수 '국감 올해만 같아라', 정치권 출석 요구 자제에 해외출장도 많아

▲ 2023년 3월 한일비즈니스라운드에 참석한 재계 총수들. 오른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연합뉴스>

10대 그룹 총수 가운데는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유일하게 국회 교육위원회의 증인 명단에 포함됐다.

하지만 최 회장도 유럽에서 대형 투자사를 대상으로 한 투자설명회(IR)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8일 출국해 국감에 출석하지 않는다.

재계 순위 28위 HDC그룹의 정몽규 회장이 공정거래위원회 국감에서 하도급업체 ‘갑질 의혹’에 대한 증인으로 채택된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이번 국감에서는 대기업의 그룹 총수들을 볼 수 없게 된 셈이다.

이처럼 재계 총수들의 국회 줄소환이 사라진 것은 경기 둔화로 기업들의 경영 상황이 악화된 만큼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정치적 입지를 높이기 위한 '보여주기식' 소환을 최대한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형성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의원들이 무리하게 재계 총수들을 불러 추궁하는 것이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졌을 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부산엑스포 유치와 경제사절단 일정 등 주요 총수들의 바쁜 글로벌 경영 일정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국감에서 재계 총수 망신주기라는 문화가 수그러든 것을 두고 긍정적인 변화라는 평가도 나온다. 국민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일단 기업 총수부터 부르고 보는 악습으로 그동안 국감의 본래 취지와 목적이 많이 변질되어 왔다는 것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9월26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매년 국정감사 때면 국회가 기업 총수들과 경제인들을 무리하게 출석시켜 망신을 준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경제성장의 엔진이며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에게 국회가 불필요한 부담을 줘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주요 기업의 오너들이 모두 참고인, 증인 명단에 빠지면서 ‘맹탕 국감’으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9월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원회에서 “환경부와 고용노동부 국감 증인을 보면 대기업들은 다 빠져나갔다. 불쌍한 중소기업과 소위 말해서 월급 받는 사장들만 증인으로 채택이 돼 있다”며 “이러려면 국정감사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나병현 기자